집이 유행이다. 집에 관한 책이 나오고, 집에 관한 전시가 열리며, 집을 사던 사람들이 집을 짓는다. 집이 태초이며 근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기 때문일까? 외로울 때 괴로울 때 사람들은 집을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집은 엄마이며 이불이기도 해서. 시인들, 소설가들, 미술가들, 에디터들에게 그들 자신의 즐거운 집에 대해 들려달라고 말했다. 그들의 즐거운 집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봄이 가까이에 와서 누워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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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벽
몇 년 전 잠시 누군가의 작업실을 빌린 적이 있었다. 사방은 책으로 빽빽했는데 유독 책상과 마주한 한 면의 벽은 빈 채였다. 글을 쓰다 가끔 고개를 들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빈 벽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한밤이면 내 그림자가 벽을 서성거렸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벽을 바라보는 동안의 나는 좀 더 분명해지고 한결 여유로워졌다. 마치 이 세계를 떠도는 무수히 많은 사물과 말 사이의 행간에 서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꽃을 바라는 마음과 꽃을 그리는 마음 사이를 오가며 그 여름을 보냈다.
벽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도시의 작은 집에서 그 소망을 이루기란 쉽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버리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지낸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고 중얼거리다가 그 마음이 슬퍼지면 꽃 한 다발을 들고 돌아오며 말이다. _김선재(소설가)
심플, 모던, 에지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지내자, 그렇게 친하게 지내자고 약속한 집에서 나는 절반은 누워 있고 절반은 앉아서 무언가를 쓴다. 가끔 껴안을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숨 쉬지 않는 것을 껴안는다는 건 귀찮지 않은 일이라 썩 편하다. 내가 어항 속에 살고 있다고 느낀 것은 처음 도배를 했을 때.
파랗고 파란 색깔들이 나를 포말로 일으킨다고 여기는 착시 현상 속에서 나만 살아서 움직인다고 느껴질 때, 고마워. 나는 그런 고마움에서 집의 안도감을 느낀다. 어디든 머리를 들이밀면 책들이 펼쳐지고 시간을 보챌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행복.
인테리어라면 ‘심플, 모던, 에지’인데, 그 삼각형 가장자리에서 두서없이 진열해놓은 나의 무국적 가구들이 나를 보살피고 있는 이곳이 나의 집. 방이라고 부를까 집이라고 부를까 민망해질 때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밥이 나오니, 떡이 나오니?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_서윤후(시인)
복층 오피스텔
나는 장롱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지금도 상자 같은 걸 보면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좁은 공간에 있을 때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어릴 때, 옆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왔고, 옆집 대문 앞에 이웃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어른들 다리 틈으로 내가 본 것은 내 키보다 큰 쇠꼬챙이였다. (도둑이 두고 간!)
그날 이후로 안전에 대한 강박이 생겼고,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현관문이 잘 잠겼는지, 집 안의 모든 창문이 잘 잠겼는지 몇 번이고 되새기다 잠들곤 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작업실 겸 집은 나에게 최적화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창가에서 현관쪽을 바라보면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복층 오피스텔.
2층은 침실로 사용하는데, 만일 도둑이 들어온다 해도 2층에 있는 내가 유리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은 불면증에도 꽤 도움이 된다. 안락하면서도 집중이 잘되는 이 공간을, 나는 사랑한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작은 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_조수경(소설가)
엄마와 개와 나
너에게 어떤 흠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결함이 있고, 어떤 실패를 겪었다고 하더라도.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너를 사랑해. 그래도 네가 소중해. 우린 가족이니까. 개를 키우다 보면 개에게서 가끔 이런 말을 듣는 기분이 든다.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개를 키워왔다. 엄마가 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잔정이 많고 따뜻하지만, 상처받기 쉽고, 무엇보다 외로운 사람이다. 엄마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정말로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오랫동안 개를 키워왔다. 그리고 나를 키웠다. 덕분에 나도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_안미옥(시인)
유목, 목가적인 행복
저는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영상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주 집을 비우는 생활을 영위하면서 제 나름대로의 ‘집’ 을 각각의 숙소나 생활 방식에서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집’을 옮기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집들은 때로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클라이언트 등 ‘사람’ 모양을 하고 있을 때도 있고, 제가 묵는 ‘숙소’ 그 자체일 때도 있습니다.
학생 때는 주로 ‘홀로 다니는 여행’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만 배웠던 것들을(저는 미술 이론을 전공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는 즐거움이 집을 떠나온 감정들을 잊고 저만의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곤 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활동하면서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각별한 몇몇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과 떠난 여정들은 홀로 여행하던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더 큰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렇듯 저에게 ‘집에서 느끼는 행복’을 묻는다면, 그 대답으로 ‘여행의 경험’을 들려드릴 수밖에 없는 시간을 요즘 보내고 있습니다.
작업이 인도하는 대로, 운명처럼 흘러가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배를 타듯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 요즘 제가 ‘집’에 대해 갖는 안도감입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요. 만약 제가 한 장소에 안착한다면, 그것은 사람이든, 도시든, 마을의 분위기든 간에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은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_정진수(영상 작가, 스튜디오 VISUALS FROM. 디렉터)
요상한 디자인의 의자
최근 들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곳이다. 명백한 기능이 있는 공간이지만 가끔은 그 기능과는 상관없이 이곳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이런저런 책이나 잡지를 읽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남의 일상을 흘끗흘끗 훔쳐보기도 하며 간밤에 쌓인 이메일과 생각들을 버리기도 한다.
여기에 10분 이상 앉아 있으면 허벅지와 종아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후에 어김없이 쥐가 난다. 의자로서의 기능은 확실히 약하다. 다리에 쥐가 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이 요상한 디자인의 의자에 자주 앉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의 행동이 생각난다.
그 녀석은 집에서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을 찾아 똬리를 틀고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핥으며 실눈을 뜨고 주변을 응시하곤 했다. 아마도 난 그 고양이와 비슷한 이유로 코끝에 침을 발라가며 이곳에 앉아 있는 게 아닐까? 가족과 함께 사는 좁은 집에선 나만의 비밀 기지를 갖는게 쉽지 않다.
그나마 하나 남은 방은 내가 미술을 하는 탓에 잡다한 짐과 작품들로 가득 차 있어 내가 똬리를 틀고 웅크리고 있을 만한 자그마한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조도가 낮고 습하며 가끔 묘한 냄새를 풍기는… 또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잘생긴 중년 남성의 멋진 서재는 아니지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현재 나에게는 한 평짜리 천국이며 전열을 가다듬는 비밀 기지이다. _장종완(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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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프린트와 네크라인이 포인트인 아트 컬래버레이션 화이트 셔츠 14만8천원 질 바이 질스튜어트 제품.
작은 친구와 사는 집
작년 여름, 작은 친구와 살게 되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녀석은 다섯 집을 거쳐 내 집에 왔다. 데려와보니 알 것 같았다. 문제가 많은 아이. 녀석은 사고치길 멈추지 않았다. 호통을 치고 궁둥짝을 세게 때리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더 씩씩하고 당당했다. 다섯집을 다니며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어떤 어른들은 나를 버렸던 것 같다. 그에게 ‘즐거운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좋아할 만한 것을 사주고, 맛있는 걸 먹이며 시간을 보냈다. 노력하진 않았고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녀석은 어느새 내 옆에 있었다. 소파에 앉으면 그 언저리에서 졸고 있고, 화장실에선 세면대 옆에 앉아 거울과 나를 번갈아본다.
침대에 누우면 팔 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데, 애인과 있을 때도 눈치 없이 침대로 올라와 우릴 난감하게 하기도 한다. 혼자 울고 있는데, 옆에 와서 손을 핥아주던 날은 마음이 놓여 어린애처럼 자빠져 엉엉 울기도 했다. 이제 내 집은 없다. 함께 산 지 8개월, 집 문을 열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눈을 다 못 뜬 채로 급하게 달려 나오는 녀석. 볼을 다리에 비비며 “야옹” 하고 우는 내 작은 친구 덕분에 ‘우리’ 집은 즐겁다. _박선아(<어라운드 매거진> 에디터)
차고 넘치는 풍요
바퀴벌레가 많은 집과 귀신이 보이는 집은 싫다. 잠자려고 누웠는데 벽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발견하면 잠이 달아난다.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귀신은, 어릴 때 종종 가위 눌리면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몸 위에 올라타서 권투선수마냥 포즈를 잡고 머리를 때리는 귀신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 다행히 지금 사는 집에는 바퀴벌레도 귀신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집이라기보다는 작업실에 집이 얹힌 공간이다. 그렇다고 혼자 살고 있진 않다. 가족이 배려해 집에 작업 공간이 주어진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엄마가 시키는 가사 일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다 지쳐 붓을 놓을 때까지 많은 걸 보고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집 안에 있어서 좋다. 빨래하고, 밥을 짓고, 물수건으로 바닥을 닦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감 묻은 화장실을 수세미로 긁어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지상낙원일 테지만. 나에게 ‘즐거운 집’은 꿈을 위한 공간이며, 그 꿈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식구들이 같이 사는 장소다.
집안일 때문에 식구들과 푸닥거리하는 것이 성가시지만 혼자 사는 집이 주는 적막보다는 차고 넘치는 풍요가 나를 편안하게 한다.
_전채강(미술가)
우리 집 마당의 역사
고향집이 완공되던 1980년 나는 그 집 작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철나무를 심어 담을 만들었고 이전 집에서 씨를 받아온 모과나무와 목련을 앞마당에 심으셨다고 한다. 우리 집과 모과나무, 목련나무, 그리고 나는 나이가 같다. 대문 위에는 등나무가 있어서 5월이면 대문 안에 포도송이 같은 꽃을 주렁주렁 피웠다.
나는 등나무 꽃의 고급스러움이 좋았다. 왼쪽 모퉁이에는 배나무가 있어서 봄에 황금빛을 내는 배꽃을 볼 수 있었고 가을에는 별 맛은 없었지만 배도 먹을 수 있었다. 언제인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등나무와 배나무는 아빠에 의해서 베어졌고, 더 이상 등나무의 고급스러움이나 배나무 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형과 내가 어른이 되고 난 뒤 옆 마당의 창고로 쓰던 땅을 형이 조금씩 개간하여 정원을 만들었다. 너저분한 삶의 가재도구들이나 농기구들이 창고로 들어가고 그 공간은 천천히 정원이 되었다. 형은 긴 시간 정원 만드는 일에 몰두했고 그 에너지는 매우 꾸준하고 열정적이었다. 형의 정원이 만들어진 후 우리 식구는 꽤나 체계적으로 설계된 소박한 정원에서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을 즐길 수 있었다.
정원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것이었다. 종종 내려간 고향의 앞마당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정원을 보고 있으면 나무 하나 돌 하나, 구석구석 추억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_문성식(미술가)
회색 벽
나는 이 집에 적응하는 중이다. 우리 집은 신혼부부들을 위한 평범한 신축빌라다. 사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아본 일이 거의 없다. 결혼전까지 웃풍이 심한 반지하에서
가족이 함께 살았다.
세탁기와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 겨울이면 뜨거운 물을 끓여야 했다. 세탁기와 변기가 늘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흔하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살던 집 옆에 몇 년 동안 집을 짓는다. 벽돌 한 장씩 천천히 짓는다. 그 집에서 손자가 태어난다.
남편과 구글 뷰어를 통해 이 집이 있기 전 이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찾아본 일이 있다. 이 텅 빈 커다란 건물의 이전을. 여기서도 생명은 태어날 것이다. 나는 우리 집 회색 벽이 좋다. 부른 배를 끌어안고 내가 직접 칠했다.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난다. 평범한 집에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_백은선(시인)
내 마음의 집
저의 작업실은 ‘내 마음의 집’입니다. 일하러 오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저는 여기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과 두 아이를 깨워 바쁘게 학교와 일터로 보내고 바로 여기, 작업실로 출근하여 그날 할 일을 체크하고 이메일 확인도 하고 자료도 보내고….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깊은 자유의 숨을 내뱉곤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진정 쉬고 숨 쉬고, 저의 이름이 되어 작업이라는 것을 합니다. 제 작업의 주제도 그렇지만 제가 있는 공간은 저에게 자아와 나라는 본질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이곳에서 상상하고 호흡하는 나로부터 시작해 공간이 움직이고 변형하는 비디오 영상이 탄생하는 것이죠. 숨통 트이는 공간이면서 더불어 작업의 영감과 소재를 환기시켜주는 공간, 제 작업실은 바로 살아 있는 내 마음의 집입니다. _금민정(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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