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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색일기(四色日記)

누구는 그녀와의 짜릿했던 섹스 횟수를 적고, 다른 누군가는 구상 중인 SF 소설의 시놉시스를 그려 넣기도 한다. 아, 물론 가계부로 활용하는 이도 있다. `일기(日記)`란 그날그날 떠오른 단상을 끄적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다. 남에게 말하기 힘든 내밀한 이야기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심사가 복잡한 요즈음, 문득 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아니, 한 달에 한 번씩일 테니 `월기(月記)`라 해야 할까?<br><br>[2008년 6월호]

UpdatedOn May 23, 2008

illustration 차민수

어린 시절, 눈물이 많았던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 탓이다. 한국전쟁 즈음에 태어난 그 세대가 다 그랬듯 스산한 현대사를 맨몸으로 관통해온 어머니는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직 머리가 채 굵어지기 전이었는데도 나는 어머니에게 배울 ‘학문적 지식’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감성이 풍부했던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다, 영화를 보다가, 가끔은 애니메이션을 보다가도 눈물을 펑펑 쏟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TV를 보다가 종종 어머니를 따라 눈물을 머금곤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이루 말 못할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허구한 날 “사내 녀석이 눈물이나 질질 짠다”며 혀를 끌끌 차곤 하셨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서정주식 표현을 훔치자면 ‘애비는 가난했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사실상 고아로 자란 아버지는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구른’ 끝에 기적처럼 성공을 쟁취했다. 그야말로 세상 험한 꼴 모두 보며 이 자리까지 올라온 당신에게, 나는 ‘물질적 풍요에 치여 유약하기 이를 데 없는 못난 자식’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춘기 무렵, 아버지와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대화가 거의 실종된 것은 물론이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나약한 자식’이라는 지적을 받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아버지 앞에서는 ‘눈물’은커녕 TV로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조차 실없는 웃음 한 조각 흘리지 않을 정도였다.
대학 입학식을 며칠 앞둔 저녁, 느닷없이 아버지가 소주잔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의아해하는 나를 두고 말없이 잔을 비워 나갔다. 아버지의 얼굴이 검붉게 변해갔다. 취기가 꽤 오른 아버지는 느닷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아버지의 과거사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좌익이었다. 고향 마을 일대 땅을 모두 소유한 지주 집안의 막내였던 할아버지는 가장 절친한 친구의 밀고로 한국전쟁 때 우익 청년단체에 의해 죽창에 찔려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는 할머니의 뱃속에 있었다.
아버지도 무언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와 난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대화를 한 번도 나눠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서로의 감정을 전혀 나누지 못한 채 머쓱하게 술자리를 정리하고 말았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서른 중반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아버지가 왜 그렇게 눈물을 참고 살아야 했는지, 왜 당신의 자식에게 눈물을 금기시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막 군에 입대했을 때, 2년간 사귀었던 그녀가 편지로 결별을 통보했다. 이등병 나부랭이에 불과했던 나는 고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위치가 아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샤워가 허락되는 딱 5분 동안 나는 격렬하게 눈물을 흘렸다. 샤워기에서 물이 끊기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걸어 나왔음은 물론이다.
제대하자마자 IMF 사태가 터졌다.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복잡한 머릿속도 비울 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브래스트 오프>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이미 취업한 지 오래인 동갑내기 그녀는 사회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나에게 은근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주곤 했다. 그날도 한창 말싸움을 벌이다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갔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이완 맥그리거의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채 허공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피에로 분장을 한 남자 조연 배우 하나가 분장이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펑펑 울고 있는 장면이 시선에 잡혔다. 대처 수상 시절, 영국 탄광 폐쇄와 함께 직장을 잃은 그는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에로 복장을 하고 부잣집 파티장에서 쇼를 한다. 몇 푼의 돈을 쥐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건만 아내와 자식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순간 울컥,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참지 못했다. “너, 구질구질하게 왜 이러니? 정말 실망이다. 남자답지 못하게 이게 무슨 꼴이야!”
결별을 통보받는 순간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앞으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특히 여자 앞에서는.
어느덧 가장 오래된 기억 속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아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여전히 삶은 쉽지 않고, 밥벌이 또한 만만치 않다. 하루하루 버둥거리며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훌쩍 넘었건만 “그 나이 되도록 아파트 전세 값도 모으지 못하고 뭘 한 거냐”라는 타박에 뭐라 할 말도 없다. 이젠 울 수도 없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이런, 젠장.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땐 조용히 집에 가서 양파나 까자. 내일엔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뭐.

대한민국이 우주로 나갔다며 호들갑이었다. 남의 배를 타고 지구 밖을 유영한 게 그렇게도 자랑스러웠을까. 조만간 돈만 주면 사설 우주여행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그 많은 세금을 써야 했던 걸까. 난 비판적이었다.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렇지 않았다. 최초의 대한민국 우주인을 보며 야심찬 계획이 떠올랐으니까. 무중력 상태에서의 섹스를 위한 <우주 카마수트라>라는 체위 교양서를 출간하면, 우주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날 사로잡았다. 막연하게 우주에서의 섹스를 떠올렸을 땐, 마냥 즐겁겠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 작가 배너 본타는 남편과 무중력 공간 체험 후 섹스는커녕 키스조차도 쉽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무중력 섹스를 미리 체험하고 가능한 체위들을 정리해 묘사한다면, 절판은 따놓은 당상일 거다.
언젠가 해외여행처럼 우주여행을 즐기게 될 거고 아니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가정 하에 우주를 개척할 수도 있을 거다. 쾌감을 떠나 종족 보존을 위해서도 우주 섹스는 필수불가결하다. 무중력 상태의 임신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섹스를 하고 임신 과정을 실험한다는 건 부도덕한 일이겠다. 로스웰 사건의 외계인이 어쩌면 무중력 실험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하는 나만의 음모론은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나사(NASA)가 유독 우주 공간에서 태아 발달을 실험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다. 어쨌든 우주에서 아이를 낳는 건 우주에 살면서 적응을 하고, 신인류로 진화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일 것 같다. 난 그냥 즐기는 섹스를 위해 체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사에서 10년 넘게 무중력 상태에서의 섹스를 조사했다고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가능한 섹스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몸을 마주 대고 하는 정상위는 불가능한 자세라고 한다. 선택된 20종의 체위 중 컴퓨터는 베스트 체위 10선을 엄선해냈다. 그중 4종의 체위만이 기계의 도움 없이 한 쌍의 나신만으로 가능한 체위라 한다. 나머지 6종의 체위는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히 체위를 밝히지 않아 추론을 해보자면, 도구 없이 가능한 4종의 체위 중 하나는 후배위일 가능성이 높다. 여자의 허리를 뒤에서 잡고 섹스를 하기에 피스톤 운동 시 속도를 높이는 일이 가능할 테니까. 나머지 체위들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고민하고 독자 엽서에 써 보내도 좋다. 이것 이외엔 대부분 벨트나 슬리핑백 같은 도구가 있어야 섹스가 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독일의 우주과학자 무트케 박사는 우주선에서의 섹스를 위해선 남녀 중 한 명을 고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남자는 전철 손잡이 같은 물체에 매달리고 여자는 기둥에 묶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섹스할 경우 인터벌이 긴 투수처럼 여자는 남자의 느린 운동 능력에 섹스의 여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둥둥 떠다닐 애액과 땀, 그리고 정액, 이소연 씨가 경험했던 우주멀미가 섹스 중 구토를 끌어낼 수도 있다. 사방엔 엽기적인 액체들이 떠다닐 거다. 하지만 이런 것도 역시 특별히 신경 쓰지 않겠다. 교합이 가능한 체위를 발견해내는 게 무엇보다 책을 쓰는 데 더 중요하니까. 교합만 된다면, 질내 사정만 가능하다면 정자가 난자를 향해 이동하는 건 문제없고, 즉 임신도 가능하다는 게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올랜도 근처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에 가면 우주의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책을 위해 제대로 조사를 하려면 이곳을 찾아가는 방법밖엔 없을 듯. 하루 동안 빌려 가능한 체위를 찾아내는 거다. 만약 이것이 재정적으로나 규정상 불가능하다면, 변수가 있겠지만, 물속 섹스를 통해 체위를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계획은 세워졌고, 실제 체험을 해보고 책을 쓰기만 하면 된다. 우주시대의 바츠야야나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근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무중력 상태에서 발기가 가능할까? 피가 몰려야 하는데 무중력 상태에선 혈압이 낮아지고, 하체로 유입되는 혈액이 감소하기에 발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우주 체위를 연구하기 전에 우주 발기법부터 연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사에선 무중력 상태에서 기니 피그에게 교미를 시켰다고 한다. 기니 피그도 발기했는데, 하물며 인간이 불가능할까? 만약 발기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1편 <우주 발기>, 2편 <우주 체위>로 나눠 책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른 살을 넘어서면서는 여기저기 만나야 할 사람, 가야 할 곳들이 많아졌다. 그건 뜻하지 않게 가야 할 곳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처럼 고향 친구들이 모였던 어느 날, 정신없이 들이부었던 첫 술자리가 끝나고서는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룸살롱’이나 한 번 가자고. 거기서 몇 달째 잠잠했던 섹스 라이프를 일깨울 생각은 아니었지만, 비틀거리며 한적한 거리를 지나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룸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들이 그물에 걸린 오징어처럼 룸 안으로 일렬로 들어섰다. 그런데 탤런트 뺨치게 예쁜 여자애들 사이에서 급격히 클로즈업되는 얼굴이 있었다. ‘내가 취했나?’ ‘설마, 아닐 거야’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10년 아니 1백 년이 지나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그 얼굴은 분명 초등학생 시절 내 첫사랑이었다. 어떻게 이 넓은 서울 바닥에서,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 여자를 만난 건가. 아무리 팔자 사나웠던 인생이라지만, 기구해도 이렇게 기구할 수 있는가.
초등학교 시절, 또래 사내 아이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이성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촌스러운 녀석이었다. 호감은 있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꽤나 예쁜 얼굴에 성격도 좋았던 그녀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비만아 주제에 커다란 금테 안경까지 쓰고 다니던, ‘비호감’이었을 내게 그런 인기녀를 좋아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멀리서 지켜보기를 1년. 눈이 드문드문 내리던 졸업식, 어떻게든 마음은 표현해야겠고, 방법은 몰랐던 나는 다른 아이들의 눈을 피해 불쑥 선물을 내밀었다. 몇 달치 용돈을 모아 샀던 파카의 만년필 세트였다. ‘앞으로는 친하게 지내자’ 따위의 내용이 담긴 쪽지와 함께 나는 선물을 주고 도망치듯 달려갔다. 대낮의 기억은 흉터처럼 생생해서, 그 기억을 반복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내게 받았던 선물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건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였다.
20년이 훌쩍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났다. ‘반갑다 친구야’ 소리치던 오락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우스꽝스러운 추억이라도 되살리며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어둑한 냄새가 풍기는 지하에서 손님과 접대부의 관계로 만났다. 한 편은 모자를 눌러 쓴 구질구질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다른 한 편은 짙은 메이크업과 함께 금빛 원피스를 입은 채였다.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가시방석에 앉은 것같이 안절부절한데 묘하게 들뜨는 다음은 어쩔 수 없었다. 따라주는 폭탄주를 한 잔 두 잔 마시면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기를 좋아했던 남자 동창이 접대부로 일하는 자신을 본다면, 얼마나 모멸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히던 그때, 그녀가 몸을 내 쪽으로 기대었다. 왼쪽 팔뚝으로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그 원피스는 차치하고라도 향수와 담배 냄새, 술 냄새가 뒤섞인 체취를 느끼던 순간 마음속에서 더러운 욕망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는 그 밀폐된 룸 안에서 알몸으로 추잡스런 댄스를 출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함께 ‘2차’를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거짓말 같겠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나는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질퍽한 파티를 즐기는 대신 마이크를 붙잡고 끝까지 노래만 불렀다. 주위에서는 뭐하는 짓이냐며 나를 비난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렇게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적어도 첫사랑이라는 유치한 낭만을 이렇게 훼손하고 싶지는 않았던 마지막 오기였다.
지하를 빠져나와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는 알 수 없는 웃음이 났다. 유통기한이 지난 감상에 빠져 있는 자신이 우스워서. 어쩌자고 이런 꼴을 본 걸까, 너무 한심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지하 주점을 찾아가게 될까?’라고 자문했다.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매년 찾아오는 가뭄, 홍수 같은 자연재해면 차라리 낫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겠거니 하고 받아들일 텐데, 이건 분명 인재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나의 나태함과 무사안일주의로 빚어낸 결과다. 28년을 살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어릴 적 3.2kg의 아주 건강한 아이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은 물론 할머니의 무궁무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이 결혼한 지 5년 만에 얻은 ‘독자’였던 탓이다. 결국 나는 소싯적부터 ‘녹용과 인삼’을 쉽게 접했고 그 결과 초등학교 내내 신체검사 날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날이 됐다. 그렇게 건강한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대학 시절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간신히 되돌려놓은 두 자릿수 몸무게가 붕괴된 거다(남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대학교 입학 당시 킬로그램급이 아니었다. 톤급으로 놀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자가 된 지난 2년 동안 나의 생활은 불규칙함의 연속이었다. 다달이 찾아오는 마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잦은 야식과 마감 후 친구들, 직장 선후배들과의 릴레이 술자리. 행사장에서 가득 차려내는 산해진미들. 먹고 또 먹고, 눕고 또 누웠다. 그렇게 두 해가 흘렀다.
한 달 전이었다. 여름을 준비하면서 꺼내놓은 폴로의 피케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어라? L 사이즈의 피케 티셔츠에 공간이 없다. 조그많게 뚫어놓은 구멍 사이사이까지 살이 촘촘히 박힌 느낌이다. 거울을 보니 가슴도 볼록, 배도 볼록 옆으로 서서 뒤를 보니 엉덩이까지 볼록. 마치 제니퍼 로페즈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의 모양새다. 턱선이 날렵(?)하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결국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바로 단식. 그것도 열흘간이나! 물론 현명한 에디터답게 죽을 정도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물만 먹는 완벽한 단식은 아니다. 하루 3끼로 200ml의 식이섬유를 마시고, 사이사이 물을 4ℓ정도 마시는 프로그램이다. 중간에 허기가 지면 토마토나 오이를 먹어도 된단다. 단식 전날,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란 말에 돈가스와 묵은 김치찜, 떡볶이,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다이어트 회사에서 챙겨준 구충제와 효소 알약을 몇 알 먹었다. 다음날 아침 시원하게 쏟아낼 거라 했다.

첫날이다. 그럭저럭 맛이 괜찮다. 그런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한다. 저녁이 되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첫날이니까 그렇겠지. 집에 들어와 먹어도 된다는 오이와 토마토를 우적우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건 뭐 풀 뜯는 황소다. 기운이 없던 탓에 10시가 되기 전에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틀째. 거울을 봤다. 부어 있던 얼굴이 조금은 핼쑥해진 느낌이다. 턱선은 여전히 없다. 배도 그대로다. 그렇게 사무실에 출근했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선배들이 괜찮냐고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말을 더 시켰다가는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다. 옆자리 선배가 말하길, “탄수화물을 안 먹으면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된다더라.” 맞는 말이다. 어깨를 치면서 힘내라는 응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러다 관두겠지’ 하는 비아냥거림처럼 들렸다. 집에 돌아와 변기 앞에 섰는데 하마터면 변기에 머리를 박고 죽을 뻔했다. 일시적인 빈혈이었다.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났다. 놀라울 정도로 얼굴이 핼쑥해지고, 좀처럼 들어가지 않던 배와 등살이 빠진 걸 느꼈다. 기운은 여전히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해 사람들에게 나의 자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선배, 저 어때요? 살 좀 빠진 것 같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젠장. 저렇게밖에 말해주지 않다니. 선의의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자들 같으니라고. 4일이 지나니 식욕은 최대한 떨어졌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 앞에 앉아도 맛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먹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물을 고래만큼 먹으니 헛배는 항상 불러 있을 수밖에. 5일째, 화장실에 갔다.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좌변기 앞에 섰는데, 힘이 안 들어가는 거다. 문득 간담이 서늘해졌다. 겨우 돌아와 자리에 앉아 비타민을 우적우적 씹었다. 6일째다. 바지의 벨트 고리를 덥던 뱃살이 사라졌다. 피케 티셔츠는 공간이 남아돌기 시작했고, 그럭저럭 기운도 차렸다. 턱을 돌리니 턱선도 은근슬쩍 생겼다. 용기가 생겼다. 카메라를 들어 셀카를 찍어봤다.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7일째. 계속되는 단식. 출근해 동료들에게 다시 한 번 묻기 시작했다. 같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만현 선배가 “상아, 너 좀 효과 있나 보다.” “그쵸, 선배? 선배도 장난 아니에요. 구찌 쫄티 다시 입으셔야죠.” 심기일전한 우리 둘은 옥상에 올라가 오이 한 개를 우적우적 씹었다. 꿀맛이다. 마치 마니산 정상에 올라가서 먹는 것처럼 달고도 달았다. 8일째. 식이섬유도 딱 9끼니가 남았다. 슬슬 그나마 고소하던 맛도 역하기 시작했다. 술 생각이 간절하고, 마감이라 바쁜 나머지 사무실에서 끼니를 때우는 선배들이 야속했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다. 집에 돌아가 옷들을 하나하나 꺼내 입어봤다. 뱃살을 타고 주름이 지던 Y-3의 집업 재킷 지퍼가 올곧아졌고, 임기응변으로 구입한 갭의 파란색 집업 재킷은 헐렁해졌다. 다시 유니클로와 한국 브랜드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건가? 기대에 잔뜩 부풀기 시작했다. 9일째다. 몸이 한층 가벼워졌다. 내일이면 다이어트가 끝난다는 생각에 하루가 더디다. 마감이 끝나지 않는 것보다 이게 더 지겹다. 살쪘다고 속상해하시던 부모님께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졌다. 원고를 쓰는 지금, 10일째 아침이다. 퇴근하고 사우나에 들러볼 생각이다. 열흘 전 몰래 올라갔다 내려온 몸무게를 기억하고 있는 지금 최소한 8kg은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심장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날렵해진 육체로 러닝머신 위를 지르밟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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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차민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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