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ally l London
최근 발리가 보여준 변화의 움직임들은 아주 긍정적이다. 아미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마티우시와 진행했던 캡슐 컬렉션을 거쳐 새롭게 임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블로 코볼라의 컬렉션 역시 간명하고 고급스러웠으니까. 더 이상 발리를 ‘정형돈 가방’쯤으로 인식하는 건 마땅치 않다. 가열한 변화의 일부로서 발리의 매장들도 변신하는 중이다. 상당히 공을 들인 콘셉트는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의 매장에 맨 처음 적용됐다.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작품이다. 그는 발리가 간직한 오랜 전통에 집중해 1백60여 년의 아카이브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설계한 스위스 스피츠의 한 매장 사진이었다. 스위스 모더니즘이 곳곳에 투영된 매장은 재고 선반이 벽을 감싸고 있으며, 자전거 핸들 바 타입의 가구들이 질서정연하게 존재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이 콘셉트를 재료로 발리의 새로운 매장을 설계했다. 분명 훨씬 매끄러워지긴 했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옛것의 핵심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고를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아주 훌륭한 장식이기도 한 벽면, 튜블러 메탈 구조로 현대적인 느낌을 부여한 가구들 역시 예전 가구들의 분위기에서 엇나가지 않는다. 모든 가구들은 이 매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 아메리칸 월넛의 농도 짙은 색감과 알루미늄, 블랙 가죽을 재료로 만든 매장은 아주 단호하게 모던하다.
2 Valentino l New York
뉴욕 5번가에 위치한 발렌티노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몇 년 전까지 일본계 백화점인 다카시야마 백화점의 건물이었다. 발렌티노는 이 거대한 건물을 온전히 플래그십 스토어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고,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를 도맡았다. 이 혁신적인 매장의 주제는 ‘궁전’이다. 외관은 굉장히 날렵하고 투명한 8층 높이의 파사드로 되어 있는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이 파사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그램 빌딩 같은 현대 건축의 상징에서 영향을 받아 검은색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내부는 더욱 경이롭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기획한 것은 단순히 쇼룸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8.2m 높이로 탁 트인 입구는 조각으로 만든 듯한 팔라디아나 계단이 전 층 연결되어 있어 정말 ‘궁전’ 같은 효과를 낸다. 압도적인 공간 모두는 테라조 소재로 만들었다. 여기에 황동과 오크나무 소재 선반, 대리석 등의 조합은 상품을 부각시키면서 공간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렸다.
3 Louis Vuitton l Paris
파리 심장부 몽테뉴가에 위치한 루이 비통의 메종이 리뉴얼 오픈했다. 루이 비통은 럭셔리한 부티크가 몰려 있는 그 동네에서도 럭셔리의 상징이 되고 싶었던 걸까. 웅장한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골드와 베이지 톤의 최고급 소재로 일괄된 공간들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진다. 이 부티크는 루이 비통의 대표적인 메종을 도맡았던 피터 마리노의 작품이다. 내부를 살펴보면 하나 도드라지는 점이 있다.
다른 메종과는 달리 값진 가구들과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도처에 놓여 있다는 것. 이는 파리의 고급 아파트를 재현하고자 하는 콘셉트를 따른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매장 위쪽에 ‘아파트먼트’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점이다. 고급 아파트의 응접실을 떼어다 옮겨놓은 듯한 안락하고 우아한 공간인데 이곳에선 특별한 고객이 요청하면 저녁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이러한 메종의 성격답게 좀 더 개인적인 맞춤 서비스인 ‘오트 마로퀴네리’가 특화된 곳이기도 하다.
4 Loewe l Milano
로에베의 리뉴얼은 지난 반년간 위대한 이슈였다. 조너선 앤더슨이 재구성하는 콘텐츠마다 흥미로웠고 ‘카사 로에베’라 명명된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이전의 고리타분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보는 이 매장은 도쿄 오모테산도에 이어 두 번째로 공개된 밀라노 비아 몬테나폴레오네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프레스코 천장과 웅장한 17세기 풍의 계단이 있는 역사적인 건물은 조너선 앤더슨에 의해 아주 새로워졌다.
핵심은 건물 본연의 기질과 로에베의 새로운 정체성을 접목한 것인데, 이를테면 나무 천장과 세라믹 타일 바닥, 화강암 기둥 등 기존의 것들이 로에베 컬렉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구 구성 역시 그러하다. 윌리엄 모리스의 레어 벤치, 암브로스 힐의 올빼미 캐비닛 같은 앤티크 가구와 매끈한 새 가구들을 예민하게 조화시킨 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다섯 개의 도자기 작품을 쌓아올린 2m 높이의 작품. 아티스트 우고 라 피에트라와 협업한 ‘인피니트 콜럼스’라는 작품으로 이 역시 공간을 구성하는 개체로서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3.1 Phillip Lim l New York
3.1 필립 림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는 뉴욕 노호의 그레이트 존스 스트리트에 위치한다. 그는 플래그십 스토어 특유의 으리으리함 대신 조금 더 개인적인 공간을 원했다. 실제로 이곳은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의 확장 버전이라 여겨도 좋을 정도다. 런던에 기반을 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캠페인’과 함께 꾸린 매장은 클래식과 현대적인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데 마치 갤러리처럼 여백투성이다.
대리석 타일이 깔린 바닥과 황동 소재의 집기, 이질적인 성질의 것들을 겹겹이 쌓은 장치, 그가 직접 고른 빈티지 가구 등이 만드는 공간 속에 예민하게 놓인 3.1 필립 림의 컬렉션들은 어느 것 하나 서로 방해받지 않는다. 개별적이다가도 완연한 일체로 작용하는 공간은 독보적으로 미니멀하다. “현실적인 제약과 한낱 백일몽이 로맨스로 실현되는 그런 공간을 원했죠. 그게 럭셔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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