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칼(나오스 노바 대표)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매우 많다. 패션의 카이저, 스타일의 제왕, 코코 샤넬의 분신, 현존하는 유일한 쿠튀리에,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가장 문화적이고 지적인 디자이너, 다작의 관음증(Prolific Voyeurism)이 낳은 자아의 완성…. 다이앤 본 퍼스텐버거는 그를 지칭해서 “칼은 가장 미학적인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러나 가장 영리한 디자이너다”라는 평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지적에 대하여 칼은 “그런데 그녀의 프린트를 보세요(And look at her prints!)”라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지만 다이앤의 분석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는 고희가 넘은 나이에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고 스타일 아이콘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 25년 동안 샤넬을 명실 공히 가장 모던한 쿠튀르 하우스로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발망이나 지방시, 이브 생 로랑 같은 전통적인 드레스 메이커와 달리 아트 디렉터, 혹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 옷이 어떻게 보여야 되는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가장 이상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전형이 아닐런지.
아! 그런 그를 만났다. 살아 있는 전설을 만난 것이다.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편집매장 콜레트 오프닝 행사장에서 혹은 샤넬의 오트 쿠튀르 쇼에서 마주친 적은 있어도 감히 ‘무슈 라거펠트’에게 말을 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말이다. 레이 카와구보 앞에서도 그랬지만 존경하는 아이콘 앞에선 몸과 혀가 굳어지는 ‘아이콘 공포증’이 심한 나로서는 칼은 다가가기엔 너무나 먼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건네게 된 역사적인 장소는 샤넬이 2년 동안 기획한 움직이는 전시, <모바일 아트>전의 홍콩 오프닝을 축하하는 파티장이었다. 칼은 걸어다니는 밀랍 인형 같았고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미묘한 움직임을 둘러싸고 디올 옴므를 입은 섹시한 보디가드들과 집사들이 진을 쳤고 전 세계에서 온 프레스, 다이앤 크루거, 안나 무글라리스 등의 셀러브리티가 웅성대며 뒤를 쫓았다. 이건 다름 아닌 장 콕토가 기획한 초현실적인 무대의 한 장면 같았다.
에디 슬리먼의 뒤를 이은 크리스 반 아쉐의 디올 옴므 수트와 언제나 그렇듯이 Hilditch & Key의 풀을 잔뜩 먹인 하얀 칼라의 드레스 셔츠 - 깃이 10cm 넘게 올라온 - 와 금속이 박혀 있는 샤넬의 바이커 글러브(손가락 부분이 없는)를 낀 라거펠트. 이번에는 그를 상징하는 수많은 반지(크롬 하츠의) 없이 그러나 넓은 블랙 넥타이에 커다란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었다.
7년 전 디올 옴므를 입으려 무려 40kg을 감량하고 (나 역시 항상 몸을 옷에 맞추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때 팬이었던 요지 야마모토의 오버사이즈 재킷들을 모두 처분한 그는 현재 생선 이외의 모든 육류를 끊는 다이어트로 모델 못지않은 실루엣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끔 미네랄 워터나 다이어트 콜라를 한두 모금씩 들이켠다. 실제로 만난 칼은 물과 다이어트 콜라를 한 모금씩만(딱 한 모금씩만 말이다) 간간이 마셨다.
사실 이 파티에선 전시 건축물을 담당한 자하 하디드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칼이 등장한 이후 Arte 같은 문화 채널까지 그에게 이 전시의 의미를 묻기에 급급했다. 이 움직이는 미학의 신은 독일어를 하듯 명확한 발음과 딱 부러지는 어투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건축과 패션과 아트의 역학을 역설했다. 카리스마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하고, 생각보다 더 마르고 창백한 그. 재미있는 건 그를 둘러싼 관계자들이 그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끌려’다니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는 잘 다듬은 매너로 모바일 아트 홍보대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늦은 시간까지 온 파티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이 전시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기까지 했다.
누가 말했던가… 스타일은 인격이라고. 당신도 그를 만난다면 그렇게 느낄 거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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