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지영 Photography 박원태, 김지태 assitant 김창규
삼성의 간판은 너무나 ‘원색스럽다’. 오로지 흰색과 파란색으로만 이루어진 그 간판의 ‘원색스러움’은 삼성의 단도직입적인 성격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만 같아 영 불편하다. 원색스러움이란 뭔가. 쓰이는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원색스럽다’는 말은 깊고 그윽하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당장 흘러가는 노랫말만 봐도 ‘원색스러워~’라는 가사는 싸이의 ‘인스턴트’라는 제목의 노래에 실렸다. 얼마나 싸고 가벼운 어감이었으면 ‘인스턴트’라는 노래에 실렸을까. 단어가 주는 어감만큼이나 삼성의 커다란 간판은 자극적이고, 단순하고, 지루하다.
그놈의 삼성 간판은 전국 여기저기, 세계 방방곡곡에 자랑스레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 서울 시내만 해도 그 매력 없는 삼성의 얼굴은(간판은) 우리 눈앞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심지어 저 멀리 뉴욕의 타임스퀘어에도 ‘그 얼굴 그대로’ 걸려 있다. 조금이라도 치장했더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삼성이라는 그룹은 ‘원색스러운 간판’을 아주 오랜 시간 창피한 줄도 모른 채 고수하고 있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모습으로, 조금의 매력도 갖추지 않은 채로.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얼굴이 그러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서울의 간판은 다 비슷한 수준으로 못생겼다. 도대체가 얼굴에 생기가 없고, 꾸밀 줄도 모른다. 아니, 꾸민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강하게, 자극적으로 립스틱을 바른다. 온통 빨갛고 노랗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맥도날드 간판처럼 서울의 간판 역시 거의 대부분 정해진 색상의 범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실제로 맥도날드의 CI를 그대로 순순히 따르는 나라는 지극히 드물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간판들은) 참 말도 잘 듣는다. 맥도날드 본사로부터 칭찬받을 일이다.
맥도날드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유럽의 맥도날드는 간판부터가 다르다(물론 실내 디자인 역시 지역 특성에 따라, 건물 외관에 따라 대부분 변형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맥도날드는 온통 은색(스테인리스) 외관이었으며 그에 어울리게 간판 역시 오로지 노란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M’자의 자극적인 빨간색은 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봤던 맥도날드 간판 역시 남달랐다. 철제로 이루어진 화관 문양 안에 ‘M’자가 자연스레 안착되어 있었다(철을 구부려서 만드는 ‘FerForge’ 방식의 간판이다). 도시 분위기를 최대한 고려한 간판인 셈이다.
꼬인 게 전혀 없고, 뭐든 쿨한 걸 좋아하는 민족도 아닐진대, 어쩌면 이리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판에서만큼은 지극히 단순한 걸 선호하는 걸까. 우리나라 간판은 글씨며 디자인이며 뭐든 일괄 동일하다. 마치 한글 교과서처럼, 그림이나 문양이 조금도 없이 정확히 상호명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간판상’으로 꼽는 유럽의 간판을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상징하는 무엇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마치 수수께끼라도 푸는 것처럼 재미있다. 수도 없는 문양과 그림을 보며 글씨를 대신해서 그 가게를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닭이 그려져 있으면 치킨 가게인 거고, 가위와 빗이 그려져 있는 간판은 미용실 간판이다.
때로 이들의 간판은 꽤나 머리를 쓰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치즈 가게의 간판엔 우유와 젖소가 그려져 있다. 와인 가게의 간판에 포도가 그려져 있는 건 예사고, 가끔 주전자와 접시, 포크와 나이프가 그려진 간판만으로 그곳이 레스토랑임을 짐작해야 할 때도 있다.
간판에 글씨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알아서 추측해야 하는 괴로움(?)도 있지만, 진열된 물건을 보고 가게에 들어서면 되므로 그다지 불편할 건 없다. (유럽의 이러한 간판 형태는 글을 모르는 이들도 그곳에서 무얼 파는지 알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생겨났다.)
간판 센세이션
얘기가 이쯤 되면 자연스레 서울의 간판에 시선이 쏠린다. 지금 서울의 화두인 ‘간판 바꾸기 운동’은 이즈음 생겨난 서울시의 꽤나 자연스런 야심이기도 하다. “도시의 얼굴이 되는 좋은 간판 사례를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좋은 간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것입니다.” 때마침 지난 1월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간판전’을 개최했다. ‘좋은 간판’ 60여 점을 전시해 좋은 간판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
오 시장의 열의와 함께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곳이 또 있다. ‘간판문화연구소’와 ‘디자인 서울총괄본부’다. 이들은 ‘간판은 곧 도시의 얼굴’임을 강조하며 ‘이미 늦었지만 어쩌면 빠를지도 모를’ 간판 문화 개선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는 또한 ‘간판으로 흉한 도시, 간판으로 멋진 도시’라는 이원복의 만화 브로슈어를 제작, 곳곳에 배부했다. 우리나라엔 행정 광고물(‘00구 마라톤 대회 개최’와 같은)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 불법 유동 광고물(현수막, 벽보, 전단) 또한 엄청난 공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일깨우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러한 설렘과는 달리 정작 상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은 서울시의 간판 개선안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옥외 광고물 가이드라인’이야말로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라며 혀를 끌끌 찬다.
“아니, 세상에 이런 탁상공론이 어디 있습니까. 세 평짜리 분식집과 몇백 평짜리 전시장의 간판이 어떻게 똑같은 크기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게 말이 되는 행정입니까. 나 참….” 강남대로변에서 꽤나 큰 전시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간판 정비에 질색하며 나선다. 그 커다란 매장에 걸릴 45cm 크기의 ‘앙증맞은’ 간판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눈치다. 그는 3년마다 치러야 하는 ‘간판 갱신제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몇천만원 주고 단 간판을 3년 후에 법이 바뀌었다고 다시 달라고 하면 그 누가 떼어내겠습니까. 안 그래요? 결국은 불법 간판만 양산할 뿐이에요. 당장 저희 집만 해도 저게 얼마짜리 간판인데 또 바꾸겠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김씨의 흥분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1년 전 간판에 투자한 몇백만원의 돈이 이내 헛돈이 될까 두려운 눈치다.
상인들만 억울한 건 아니다. 광고물 디자인 업체 쪽의 반응 역시 의외로(?) 좋지만은 않다. 간판 교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제 장사 좀 되겠는데요?”라고 말을 붙여보아도 영 썰렁하기만 하다. 그 어느 광고주도 서울시에서 제시하는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고주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요. 물론 법대로 하면 깔끔하고 예쁜 건 알지만, 당장 영업에 지장이 온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45cm라는 게 말이 됩니까? 건너편에서 45cm짜리 간판이 눈에 보이겠냐는 말이죠. 아니, 시력이 2.0이 아니고서야….”
간판은 광고가 아니다
하지만 왁자지껄 들썩이는 상인들과는 달리, 서울시 도시경관 측의 입장은 꽤나 단호하다. 이들은 딱 잘라 말한다. “간판은 광고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판을 광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간판 문화 개선’의 취지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광고와 간판은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간판을 광고로 인식하는 건 커다란 문제죠. 하긴 간판 관련 법조차도 ‘옥외광고물관리법’으로 되어 있으니, 그게 참 문제죠. 하지만 전단지와 간판이 같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시 도시경관 담당 조운기 주임)
하지만 당장 간판을 광고 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인들의 입장 역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들은 45cm 간판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길 건너에서 보이지 않는 간판은 간판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45cm는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다. “학술 영역을 통해서, 그러니까 대학교에 연구 영역을 줘서 데이터를 구축한 결과입니다. 시범 사업으로 40cm도 해봤고, 50cm 이상도 해봤는데 적정한 크기가 45cm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물론 간판을 광고물로 접근하는 시각에서 봤을 땐, 45cm가 작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 왔기 때문에 지금 서울 시내가 간판으로 뒤덮이게 됐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서울시 도시경관 담당 조운기 주임)
애초에 간판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45cm’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인들은 간판을 광고물로 인식하기 때문에 차량 중심의 시각으로 여기고 있는 반면, 서울시는 이제 보행자 중심의 간판을 만들고자 하기에 충돌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어째서 ‘1업소당 1간판’이어야 하는지 아직도 납득되지 않는다. 당장 영업에 지장이 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는 건 그대로 가되, 신축 건물이나 업소가 변경이 돼서 새로 다는 간판에 한해서만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겁니다. 모든 간판을 다 떼어내라는 게 아니죠.” (서울시 도시경관 담당 조운기 주임)
실제로 지난 3월 서울시가 제시한 ‘서울시 옥외 광고물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기존의 간판을 다 떼어낼 필요는 없다. 또한 모든 간판을 45cm로 바꿔 달아야 할 의무 역시 없다. 단지 ‘1업소 1간판, 45cm 규격’은 새로 가게를 낼 때, 그리고 새로 건축물 허가를 받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간판의 크기 역시 세로 기준 입체형 45cm, 판류형 80cm(1층과 2층 공간이 1m 이내이기 때문)이며, 가로 사이즈는 건물 점유 너비의 80% 비율이다. 즉, 간판의 세로 사이즈는 가게 규모와 관계 없이 최대 45cm이지만 가로 사이즈는 너비와 비례하는 것이다.
‘한 번 달린 간판은 그대로 인정해주자’라고 방향을 잡은 서울시와, ‘한 번 단 간판을 왜 떼어내라는 거냐’는 상인들의 반응은 이렇듯 배치되고 있다. 아직 ‘옥외 광고물 가이드라인’에 대한 적확한 설명과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좋은 간판의 조건
하지만 굳이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지금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대로 두기에는 지금 서울의 간판은 흉측하기까지 하다. 최대한 본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지금 서울의 간판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크게, 눈에 띄게, 그래서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은 욕망이 상징화된 게 대한민국 간판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단 1초라도 카메라 세례를 받고 싶어 안달 난, 그러나 그다지 예쁘지 않은 3류 여배우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더 크고 튀는 간판을 달면 손님이 많아질까요?” 이쯤에서 ‘간판문화연구소’는 가장 근본적인 화두를 던진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분명 ‘예’를 외칠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이들 역시 늘고 있다. ‘간판이 곧 문화’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들이다.
“우리나라에선 옛날부터 무조건 큰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그게 광고주를 설득하는 데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광고주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건물에 맞는 특성 있는 디자인을 유도하면, 그들도 받아들이는 편이죠.”(디자인 그룹 ‘예진’ 전훈구 대표) 서울시 도시경관 측에서 밝힌 반응 역시 낙관적이다. “서울시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나서, 90% 이상이 찬성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광고가 적어지고 거리가 깨끗해진다는 점, 그리고 지금의 간판에 대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서울시 도시경관 담당 조운기 주임)
실제로 강남구, 성동구, 강동구는 앞장서서 간판 교체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압구정동, 왕십리, 천호동 등 시범 건물의 경우, 업소주들도 꽤나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나 혼자만 작은 간판은 내키지 않지만, 다 같이 간판 크기를 줄인다면, 그건 윈윈(너도 좋고 나도 좋고)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통일성만 강조된 교체라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광고가 적어지고 거리가 깨끗해진다는 점만큼은 모두 동의한다. (서울시는 옥외 광고물 가이드라인의 기준은 맞추지 못해도 디자인이 우수한 간판에 대해 자체 심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간판의 기준은 무엇일까. 수많은 이들이 많은 부분에서 합일점을 찾는다. 주변 경관을 해칠 정도로 너무 큰 간판은 곤란하다는 것. 작게 만들면서도 정보 전달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 간판과 간판, 간판과 건물, 간판과 거리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며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품격 있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인식이 변한다면, 진짜 달라진 거리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도시의 선물이자 자산인 거죠.” (서울시 도시 경관 담당 조운기 주임)
너무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긁으면 1cm는 족히 나올 법한 두꺼운 파운데이션은 사실 바라보기 거북하다. 감출 게 많아 보여서인 것 같기도 하고,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먼저 보여서이기도 하다.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건물을 볼 때 역시 같은 생각이 든다. 정작 건물 원형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든 상태(간판이 건물을 뒤덮고 있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흉측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가운데 번쩍이는 사인 간판은 ‘제발 나를 좀 바라봐달라’고 외치는 화냥년의 손짓처럼 느껴질 정도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간판은 곧 문화’라는 인식은 사실 지금 우리에게 꽤나 시급한 안건이다. 간판이 너무 크면 한눈에 보기 어려울뿐더러 너무 많은 간판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오히려 분산된다는 것. 그리고 그 흉물스런 간판들은 우리의 눈을 피로하게 할뿐더러 수준이 떨어지는 건물로까지 인식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건물로 가득 찬 도시는 절대로 다시 찾고 싶지 않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서울의 얼굴은 화장을 두텁게 해 가부키 배우를 연상케 한다. 그러니 서울의 간판은 바뀌어야 한다. 맨 얼굴이 예쁜 여자가 진짜 미인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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