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아홉 살이다. 고3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10대의 마지막이다. 설레기도, 아쉽기도 하다. 올해가 지나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이상 학교에 안 간다는 게 이상하다. 남는 시간이 생길 것 같은데 그때 무엇을 할지 고민도 된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학교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생길 것 같다.
아침 일찍 등교했을 때 교실 안에 떠 있는 먼지 같은 것들?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의 그런 부분이 좋았다고들 얘기한다. 그런 것들에 공감 못했었는데, 이제야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학창 시절이 끝나가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학원 다닐 때, 여진구는 촬영장을 다녔다. 친구들과 괴리감이 들 때가 있었나?
친구들과 다르다고 느끼진 않았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그렇다. 초등학교부터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많다. 워낙 돈독해서 걱정은 없다. 촬영할 때를 제외하면, 내 일상은 여느 열아홉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역 출신 연기자들 중에는 성인이 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성인 역할을 맡는 데 어려움도 겪고, 유년기에 충족되지 못한 점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우도 보았다.
친구들과 관계가 좋다. 장난을 좋아하고, 함께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축구를 자주 하다 보면 어색함도 없다. 어려서부터 함께 뛰놀던 사이니까, 친구들의 시선도 별나지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고맙다.
이제 청춘이 시작된다. 곧 다가올 20대에는 무엇이 기대되나?
드디어 청춘이구나, 이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무엇을 하게 될지 예측도 안 된다. 때가 되면, 무엇인가 하겠지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다. 내 성격에 맞는 것들을 할 텐데 확신은 없다.
20대 하면 군 입대가 떠오르지 않나? 난 어렸을 때, 내가 입대할 나이가 되면 통일되어서 군대 안 갈 줄 알았다.
군대는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남자라서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다. 전역한 형님들이 많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싶다. 물론 가야 하는 곳이고.
군대 가면 재미있기는 한데….
다녀온 형님들이 일부러 가지 않을 생각은 하지 말고, 가능하면 다녀오라고들 말한다. 나도 워낙 건강한 편이라 입대를 못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대학에 대한 목표는 구체적일까?
대학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 한다. 학과나 대학은 조금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대학에 가고 싶지만, 아직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이제 고3이 되었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구체적인 목표가 생길 것 같다.
입시라는 단어만 봐도 숨 막힐 때다.
예전에는 무조건 무슨 대학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과연 내가 갈 수 있을까? 의문도 든다.
나도 스무 살 되면 서울대 가는 줄 알았다.
하하. 맞다. 나는 서울대에서 집도 가깝다. 초·중·고, 대학교 전부 가까운 곳에서 다닐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전국에 많은 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20대 중반의 전형을 보이는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그저 계속 병원에서만 지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세상에 홀로 있는 느낌을 찾으려고 했다.”
영화 얘기를 해보자. <내 심장을 쏴라>는 청춘 영화라고 해야 할까?
청춘을 위한 영화다. 내 또래에게 좋은 영화고, 형, 누나에게도 충분히 좋은 영화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내가 맡은 이수명은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오랫동안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모범 환자인데, 승민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배경은 정신병원인데, 청춘의 삶에 비유하면 정말 좋은 영화다.
미성년자다. 정신질환자 연기에 앞서, 테스트 같은 것은 없었나?
테스트는 없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수명에 대한 묘사가 원작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원작 소설을 읽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관계자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과 병동에 근무했던 간호사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구체적으로 연구했다.
극중에서 수명은 스물다섯 살이다. 20대 중반을 연기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지만, 굉장히 순수한 인물이다. 수명은 사회를 직접 접해본 적이 없다. 병원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 20대 중반의 전형을 보이는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그저 계속 병원에서만 지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세상에 홀로 있는 느낌을 찾으려고 했다.
수명처럼 현실의 여진구도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지금 여진구의 화두는 무엇일까?
내 또래는 대부분 진학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친구 중에는 학과를 정한 경우도 있지만, 나처럼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보다 정말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깊다. 대학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하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진로가 안정적이라 운이 좋은 것 같다.
10대의 끝에 선 여진구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차게 일을 할 수 있다. 정말 큰 행운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하자. 수명과 여진구는 어떤 점이 닮았나?
수명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원작이나 시나리오에서도 실제 내 모습과 겹치는 부분은 찾기 힘들다. 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타입이다. 흔히 외향적이라고 하는데, 수명은 혼자 꽁꽁 싸매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며 지내는 사람의 감정과 진정 홀로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싶었다. 고독에 빠졌을 때 나타난 조력자에 대한 반가움, 또 절실하게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감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나와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그래서 어려웠고, 내가 잘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원작자인 정유정 작가는 어떤 조언을 해줬나?
어떻게 수명을 표현해야 할지 물어봤다. 정유정 작가는 수명이 정말 똑똑한 친구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병원에 홀로 있어서 무뎌지는 게 아니라, 현명하게 살아왔음을 알아달라고 말이다. 수명은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방법을 깨달은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면 어른이라는 소리가 있더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삶을 즐기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수명이 정신질환자지만 현명한 어른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수명은 어른인 것 같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보았으면 한다. 그럼 소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독서는 많이 하는 편인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럼,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노래 듣고, 영화 본다. 친구들 만나서 놀기도 한다. 혼자서는 잘 못 노는 편이다.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답답하다. 시간 나면 무조건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12세 차이의 이민기와 동갑내기 연기를 했다.
민기 형을 처음 봤을 때, 어색하긴 하지만 정이 갔다. 친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친해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편한 분위기였다. 고마운 것은 형이 먼저 내게 다가와주었다는 것. 먼저 반말하라고 장난치고, 농담도 해줬다. 그래서 더 편하게 촬영하고, 호흡도 맞출 수 있었다.
아직도 반말하고 있나?
하하. 촬영 때도 완벽하게 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면서 했는데, 말을 놓는 게 쉽지 않더라고. 또 극중에서 내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기도 해서, 반말을 할 만큼 가벼운 상대는 아니었다.
이민기와 여진구는 닮았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하나씩 따져보면 닮은 건 없는데,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다.
연기자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나?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운동선수를 해보고 싶었다. 악기도 좋고, 요리도 좋아한다. 자격증을 따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그냥 좋아할 뿐이다.
요리는 의외다.
사실 엄마가 해주는 게 맛있기는 한데, 그래도 요리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지난번보다 더 맛있으면 기분도 좋다.
나는 요리해 먹으면서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한다.
축구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보는 편이다. 해외 축구 경기가 대체로 새벽에 열리는데, 나는 잠을 못 이기는 편이라서 보다가 잔다. 근데 맨유 팬인가?
때마다 다르다.
그게 진정한 축구 팬인 것 같다. 좋아하는 클럽을 하나만 두는 것보다 여러 팀에 호감을 가지고 경기를 보는 것 말이다. 각 팀의 성향을 분석하는 게 재미있다.
그럼 좋아하는 팀은 없어도 선수는 있겠지?
호날두다. 멋지다.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인터뷰도 잘한다. 멋있고, 잘생긴 데다가 운동도 잘한다. 그리고 돈도 많다. 하하.
축구 이야기를 하니까 눈에서 빛이 난다. 최근에 본 인상 깊은 작품은 무엇이었나?
<보이후드>를 아직 못 봤는데, 꼭 봐야겠다. 주인공이 그 역할을 위해 어려서부터 십몇 년 동안 촬영을 했다. 마지막 촬영날 기분이 오묘했을 것 같다. 나는 3개월, 6개월 정도 촬영해도 마지막 날 기분이 이상한데…. 그래서 오랫동안 캐릭터에 몰입하면, 정말 그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장르에서 만나게 될까?
아직 못해본 역할은 너무 많다. 나이에 맞는 하이틴 장르를 찍어보고 싶고, 다시 누아르를 찍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다.
누아르에 적합한 목소리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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