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가장 갖고 싶었던 건 변신 로봇이나 자전거 따위가 아니었다.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야구단에 가입하면 주던 선물. 그러니까 팀 로고가 박힌 야구 점퍼와 모자가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의 로망이었다. 조르고 졸라 마침내 그 야구 점퍼를 입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유년의 기억 속에 또렷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런 감흥이 시들해졌다. 뉴욕 양키스를 알게 됐고, 보스턴 레드삭스를 알게 됐다. 그네들의 모자와 유니폼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 폼을 사랑했고, 박정태의 우스꽝스러운 타격 자세도 좋아했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 모자를 제공하는 뉴에라(New Era)사가 한국야구위원회의 마케팅 자회사인 KBOP와 공식 라이선스를 체결하면서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미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는 4월 중순부터 실제 시합에서 뉴에라의 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다른 팀들도 순차적으로 새 모자를 쓸 예정이다.
반응은 뜨겁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작년 한 해 모자의 판매 개수가 1천2백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뉴에라의 삼성 라이온즈 모자는 아직 출시 전임에도 불구하고 1주일 만에 8백50개가 예약 판매되는 성과를 올렸다. 롯데 자이언츠는 모자뿐만 아니라 로이스터 감독의 등번호가 새겨진 점퍼 1천 장이 3일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스포츠 마케팅의 불모지였던 한국 프로야구 시장에도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뉴에라와 모자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한 KBOP의 김재형 과장은 “이미 팬들이 MLB 제품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더 수준 높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행히 뉴에라 역시 한국 시장에 관심이 있었다. 서로의 관심이 맞아떨어진 셈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뉴에라의 모자는 가격이 비싼 만큼 MLB에 비해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로고의 자수 부분은 고급스러우면서 촘촘해졌고, 재질이나 마감도 훌륭해 내구성도 뛰어나다. 여기에 뉴에라 특유의 디자인을 적용해
각 팀당 최소 10가지, 롯데 자이언츠는 30여 가지 디자인의 모자를 발매할 예정이다. 롯데만 유독 모자 종류가 많은 이유는 롯데 구단이 마케팅에 열성적이기 때문이다. 뉴에라의 모자를 독점 공급하는 (주)스포팅21 관계자는 현재 MLB 유니폼을 제작하는 미국 러셀(RUSSEL)사와 KBO 유니폼의 공급에 대해서도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메이저리그를 비롯해 일본의 프로야구단들이 관련 상품 마케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경우는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
스포츠 자체는 경건하지만, 프로 스포츠는 결국 비즈니스다. 구단이 좀 더 많은 이익과 홍보 효과를 낼 수 있을 때, 투자는 과감해지고 선수들의 처우도 개선된다. 더 수준 높은 승부가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얼마 전 현대 유니콘스 사태는 프로야구 각 구단의 수익 구조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제2, 제3의 현대 유니콘스가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 히어로즈처럼 선수들의 연봉 삭감으로 구단의 재정을 충당할 것이 아니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수익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마도 이번 뉴에라 모자의 발매는 그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돌 스타들이 두산 베어스나 기아 타이거즈의 모자를 쓰고 흥겹게 춤추는 모습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얘기하면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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