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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입사견문록

일본 자동차 회사는 유럽이나 미국의 회사와 확실히 다른 정서와 룰, 그리고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제품이 꼭 그러하듯이. 혼다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임범석이 말하는 일본 자동차 회사 노크하기. <br><br>[2006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0, 2006

Words 임범석(카 디자이너,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교수) Photography 우정훈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정석헌

내가 혼다에서 일하기 위해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1990년대 초반 어느 여름의 덥고 습한 토요일 오후였다. 도쿄의 전형적인 여름날이었다. 그때까지, 난 내가 일본에서 일하게 된 최초의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일본에서 일하는 최초의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일본에 간 건 아니다. 다만 그때까지 내 앞에 아무것도 없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그냥 미국에 머무르는 대신에 일본에서 일하게 된 게 아주 큰 기회를 잡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막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를 졸업했고, 여러 미국 회사들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자동차들은 비로소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해,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디자인을 베끼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그 시기에도 일본 자동차들의 품질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져갔지만. 피닌파리나와 주지아로가 설립한 이탈 디자인 같은 최고의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 회사들이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도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만의 디자인 역량을 키워나갔다. 닛산의 인피니티와 혼다의 아큐라에 이어 곧 토요타는 렉서스 라인을 시작했다. 도쿄 모터쇼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모터쇼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수단과 방법으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디자인을 준비했고,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영입하려고 애썼다.
그랬다. 나는 일본 회사에서 채용하기 시작한 수많은 비일본계 자동차 디자이너(대부분 유럽인과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혼다는 도쿄의 긴자 근처에 아주 진보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도심 한복판에 그런 진보적인 스튜디오를 열고 외부 디자이너들을 영입한다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혼다는 그들의 혁명적인 스튜디오를 위해 몇 명의 외국인 디자이너들을 영입했고, 나는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혼다에서 일하는 최초의 외국인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였다. 내가 일본에 처음 갈 무렵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과 한국 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적어도 디자인에서만큼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어느 정도 일한 뒤 나는 미국이 아닌 세상의 다른 곳을 보고자 갈망했다. 운 좋게도 그때는,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하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렉서스, 인피니티, 아큐라 등이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일본 기업들은 디자인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혼다에서 9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고,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나는 도쿄 모터쇼에 선보인 최초의 혼다 독자 디자인 콘셉트 카인 ‘EP-X’ 개발팀의 일원이었다. 이제 닛산이나 마쯔다·혼다·다이하츠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을 보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일이거나 ‘희귀 현상’이 아니다. 선구자로서, 나는 내가 가르친 학생 중 몇 명이 일본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
그렇다면 일본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일본 회사는 마치 기름이 알맞게 칠해진 거대한 기계와 같다. ‘효율성’이라는 단어야말로 일본 기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내 생각에 일본 기업들은 각각 다른 부서 간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으로 그런 고도의 효율성을 성취한다. 마지막으로, 일본 자동차 회사 입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디자이너는 물론, 다른 부서를 염두에 둔 지원자들도 알아두면 이로울 것이다. 행운을 빈다.

Be yourself!
왜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당신을 뽑으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아마도 그들은 당신에게서 다른 일본인 지원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당신만의 독특한 재질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고용인들로부터 통일된 사고를 요구하는 만큼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찾는 데 무척 예민하다. 따라서 당신은 먼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Pay attention to details
일본 기업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쓴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일본 자동차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품이 되게 했다. 다양한 사이즈의 컵을 받칠 수 있는 컵받침 같은 작은 것들이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마련. 혼다 스튜디오에는 항상 미국 세븐일레븐의 ‘빅걸프’ 컵이 있다. 빅걸프 컵은 미국에서 애용되는, 사이즈가 가장 큰 컵 중 하나다. 혼다의 자동차 내부 디자이너들은 혼다 어코드를 디자인할 때 항상 책상 위에 그 컵을 놓아둔다. 일본에서는 그런 엄청난 크기의 세븐일레븐 컵을 보기란 쉽지 않다.

Speak another language
이 말은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의 언어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일본 기업에서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부품 담당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 간에 수많은 회의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일본 자동차 회사가 짧은 시간 안에 제품 퀄리티를 정상급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는 모두가 초기부터 참여한 채로 제품의 개발과 생산이 이루어진다. 디자이너는 엔지니어나 마케팅 담당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들을 이끌기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언어 - 예를 들어 마케팅 용어라든가 기술적인 용어들 - 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Improve yourself!
때때로, 당신이 훌륭하기 때문에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영원히 훌륭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여러 가지가 변하게 마련이고 당신은 발전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확인해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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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임범석(카 디자이너,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교수)
Photography 우정훈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정석헌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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