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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레오의 법칙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강레오를 만났다. 영국과 한국의 주방 문화에 대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강레오의 독설이 쏟아졌다.

UpdatedOn December 01, 2014

▲ 검은색 수트는 김서룡 옴므, 행커치프는 란스미어, 가죽 시계는 해리메이슨, 은색 식기들은 모두 휘슬러 코리아 제품.

19세에 요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요리 공부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17세 때부터였다. 19세에 직장을 잡았고, 그다음부터 학교를 거의 안 나갔다. 요리하는 데 학교에서 도움받을 게 없었거든.

꽤 오래된 것 아닌가?
10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근로기준법에 맞춰 일을 한 건 아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을 하면 안 되지만, 나는 하루 한 18시간 정도, 일주일에 96시간 일했다.

하루 18시간 일하면 남는 시간이 6시간밖에 없다.
어쩔 땐 안 씻었다. 그래야 요리사가 되니까.

막내 생활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건가?
영국은 전 직원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우리나라는 위로 올라갈수록 편하게 일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레스토랑 운영할 때도 가장 먼저 출근하고, 퇴근도 새벽 1시에 했다. 영국은 더 힘들다.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은 노동법을 우리보다 더 착실히 지키는 나라 아니었나?
맞다. 하지만 요리사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대로 요리할 거면 호텔에 취직하는 게 맞다. 호텔 요리에는 기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준이 없다. 무조건 완벽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음식을 만들려면 하루 18시간씩 일해야 한다. 남들이 당근 한 번 씻을 때 우리는 더 깨끗하고 예쁘게 당근의 모습을 살려서 정리하는 식이다. 셰프가 손질부터 요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다 한다. 농사만 빼고 다 하지.

한국의 레스토랑도 영국과 같은 시스템이었나?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때는 다들 그렇게 했다. 재료 배달은 새벽에 오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다들 출근한다. 자기 재료는 직접 받아야 무엇을 받았고, 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재료만 전담하는 직원은 없다. 그건 직장인이지 요리사가 아니다. 하루 18시간을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호텔로 돌아갔다.

하루 몇 시간 일했느냐가,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나는 일주일에 1백 시간까지 일해봤다. 적어도 주 90시간 이상씩 10년은 일해야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체력의 한계도 올 테고, 스트레스로 인해 회의도 느낄 텐데?
그런 걸 느낄 시간이 어디 있나? 잘 시간도 없다. 종종 퇴근 후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한 잔 마시려고 소파에 앉아서 캔을 따고는 바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에 한 모금도 못 마신 맥주 캔이 들려 있었다. 그걸 아침에 마시고 출근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나?
버티는 게 아니다. 좋아서 하는 거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 정확히 말하면 즐겼던 시간인 거지.

왜 하필 런던으로 갔을까?
처음에는 파리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1997년도에 프랑스 청년 실업이 절정에 달해서 비자 받기가 힘들었다. 반면 런던은 비자 받기 쉬웠고, 런던에서 일하다 보니 굳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갈 필요가 없었다. 영국은 내세울 음식이 없는 대신 세계의 좋은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또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자다. 런던에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 요리사가 유럽에서 성공하는 정석이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런던 레스토랑은 <엑스맨2> 오프닝 오픈 파티로 6시간 장사하고 매출 10억을 올렸다.

음식으로 반나절에 10억이라니 상상이 안 간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좋은 레스토랑을 경험하지 못한 거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과 음식들이 많은 도시다. 단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울 뿐이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는데, 어떻게 영어 사용하는 나라에 덜컥 간 건가?
공부 못한다고 영어 못하는 건 아니지. 데이비드 베컴도 빅토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 이름밖에 못 썼다. 대신 축구를 엄청 잘하지 않나? 듣고 보고, 감각이 뛰어나면 다 할 수 있다. 다만 공부가 싫었을 뿐이다.

그럼 처음 런던 가서 겪은 난관은 뭐였나?
언어다. 초반에는 언어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 대답 못해서 맞은 적도 있다. 그런데 주방에서는 사용하는 말이 정해져 있다.

다행이다. 주방 용어들은 익숙했을 테니까.
한국에서 서양 요리 하다 해외 나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주방에서 사용하는 영어 이름들이 절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면 그 나라에서 직접 들어온 게 아니라 제3국을 거쳐서 왔기 때문이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재료들이 특히 그렇다.

왜 주방은 군기가 엄격한 걸까?
주방에 있는 건 전부 위험하다. 우선 칼이 있다. 칼도 종류별로 많다. 그리고 끓는 기름, 불, 전기도 엄청나다. 모든 게 무기다. 군기가 약하면 꼭 사고가 나서 누군가 병원에 가게 된다.

그럼 주방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보는 건 무엇인가?
청결이다. 바닥에 물방울 떨어진 것도 못 본다. 매일 비눗물로 닦고, 젖은 수건으로 닦고,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그렇게 청소를 시켜봤더니 결국에는 다들 도망가더라. 요즘 친구들은 힘든 걸 싫어한다. 요리 배우려고 왔는데 청소만 시킨다고 불평한다. 청소하고 요리하라는 뜻인데. 시간이 지난다고 무작정 레벨이 오르는 건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된다.

그럼 후배가 선배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는 건가?
주방은 모두가 경쟁자다. 자리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주방은 치열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나이로 서열을 정하고, 나이에 따른 호칭에도 민감하다.
천재적인 막내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 위로 형, 누나들이 많으면 자리를 올려줄 수가 없다. 어린 친구 밑에 있는 걸 다들 못 참더라고.

한국만의 문화다.
서로 경쟁을 안 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음식이 더 좋아질 수 없다. 열심히 하면 누군가 더 뛰어나게 발전할 거 아닌가? 그걸 바라고, 기회를 주는 거다. 하지만 다들 자기 포지션에서 막연히 진급되기만을 기다린다. 그게 한국만의 문화인 것 같다.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곳이 주방이라면, 정치적인 관계도 복잡할 것 같다.
원래 주방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어느 주방이나 라인이 있다. 굉장히 열심히 해서 그 라인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이 없는 한국이 오히려 널널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국은 더 치열한가?
엄청나다.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하려면, 그만큼 시간을 들여야 한다. 7시 출근이면 6시에 다들 나온다. 주방에는 컨테이너라고 하는 재료 담는 그릇이 있다. 이걸 90여 개는 확보하기 위해 먼저 나온다. 늦게 나오면 없다.

컨테이너를 많이 사두면 되지 않나?
레스토랑은 필요한 양만 준비한다. 많이 사두면 쌓이게 되고 결국 더러워진다. 적으면 깨끗하게 보관한다. 귀한 줄 아니까. 런던의 주방에서는 옷도 자기 옷을 입어야 한다. 바지, 재킷, 칼, 신발도 전부 자기 것만 사용한다. 성실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 요리사의 유니폼을 보면 알 수 있다.

흰색 재킷은 hsh, 회색 넥타이는 란스미어, 시계는 보메 메르시에, 이너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루에 5시간 자고, 다리미질까지 해야 되나?
쉬는 날 몰아서 빨래를 하고, 매일 갈아입는 거지. 그리고 셰프 옷을 입고 출근한다. 아침에 옷 갈아입는 시간도 없거든, 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잘사는 나라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산다. 결과적으로 나라도 잘되는 것 같다.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크고 비싼 시장이라면 입맛도 더 까다롭다고 봐야 할까?
너무 맛있는 게 많다. 식문화의 수준이 높다. 런던에서 잘된다는 레스토랑의 매출과 한국에서 잘된다는 식당의 매출 차이가 정말 크다.

물가 차이가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와인 가격 똑같고, 술은 런던이 더 싸다. 식재료 값은 비슷하다. 한국 물가가 매우 비싼 축이다. 고급 식문화는 부의 정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먹고 즐기는 고급 식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 룸살롱에서 원가 얼마 안 되는 위스키를 몇백만원 주고 마실 정도니까.

한국 식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싶은 건가?
나는 준비됐다. 당장이라도 즐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다. 예전에 1인당 88만원짜리 요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한 호텔의 회원들을 상대로 한 행사였는데, 5백 명의 회원 중 겨우 30명이 왔다. 그 부자들은 회원권을 되팔기 위해 샀을 뿐이다. 무언가를 살 때 보존 가치를 따지거나 자랑할 수 있는가만 고려한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돈을 쓰는 수준은 아직 안 된 것 같다. 경제는 성장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문화는 아직 미흡하다. 세대가 바뀌면 달라지겠지만.

고든 램지와 함께 일했다고 들었다. 그는 <마스터셰프 US>에서 심사위원 하고, 강레오는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심사위원 하고 있다. 무슨 인연일까?
고든은 언변이 뛰어나고, 스타일리시하다. 여자들에게 고든은 섹시한 사람이다.

실제로도 주방에서 욕을 하나?
장난 아니다. 귀가 더러워지는 느낌이다. 고든과 나는 같은 선생님에게서 요리를 배웠다. 내가 고든 밑에 있었던 건 아니니, 정말 다행이다. 고든한테서 욕을 듣지 않았거든. 대신 고든은 경영 능력과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오히려 그의 경영 능력을 더 배운 것 같다.

한식도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한복녀 선생님한테서 어떤 수업을 듣고 있나?
테크닉보다는 한식의 이야기를 주로 배운다. 역사와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형태가 어떻고,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같이 익힌다. 그걸 토대로 새로운 메뉴도 구상한다. 요리에 쓸 만한 우리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선생님도 한꺼번에 보여주시는 게 아니라, 하나씩 알려주신다. 선생님 활동하실 때까지 계속 배우겠다고 말씀드리니 천천히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라.

식문화 세대가 바뀔 때까지는 해야 하니까.
요리는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해야 한다. 요리는 배운 만큼 할 수 있다. 10년 배우면 10년 하지만, 50년 배우면 50년 동안 써먹을 수 있다. 사는 것도 그렇지만, 요리도 항상 난관에 부딪힌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끔 주변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면 발전을 못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한계를 느낄 테니까.
맞다. 그래서 선생님을 모시는 게 좋다. 그래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 요리를 시도해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중심을 자신에게 두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된다. 중심을 제대로 잡고, 요리의 기본기를 잊어선 안 된다. 흔들리더라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강레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피에르 코프만이라는 셰프를 만난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천재다. 그가 하는 말은 다 맞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에게서 모든 기본을 배웠다. 내게는 그가 교본이다. 전 세계 어딜 가서 일을 해도 나한테 뭐라 그럴 사람이 없다. 피에르 코프만한테 배웠기 때문이다. 천재 밑에서 수재라도 되고 싶었다.

좋아하는 걸 빨리 찾아서 전심전력해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는 데 인생을 허비하는 것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좋아하는 걸 찾으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잘해서 하는 거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다. 나는 잘하는 걸 하면서 산다. 내가 좋아하는 건 돈이 안 된다.

무엇을 좋아하나?
검도나 유도. 지금은 일본 무형문화재 검술을 배우고 있다. 그건 돈이 안 된다.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누구 책임일까?

성인이라면 본인 책임이겠지.
자신에게 기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본인이 잘하는 걸 찾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야 한다. ‘나에게 기대를 갖자’가 좌우명이다. 남을 바라보며, 남에게 기댄다고 인생이 살아지는 게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라는 뜻인가?
잘하는 걸 빨리 인정하고, 스스로 기대를 갖고, 기회를 줘야 한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밑받침도 열심히 쌓아야 하는 거고. 기회는 이유 없이 생기는 게 아니다.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진혁
HAIR&MAKE-UP: 채현석
STYLIST: 이준미
COOPERATION: 휘슬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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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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