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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의 옥상 창고

김찬중 소장의 사무실은 건축가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을 듯한 동네, 그리고 건축가의 사무실이 가장 들어가지 않을 법한 건물인 슈퍼마켓 건물 옥상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감각적인 건축가의 사무실 더시스템랩은 차분했다.

UpdatedOn November 13, 2014

▲ 건축가 김찬중에게 ‘로망’인 공간은 창고나 공장처럼 층고가 높은 건물. 그러나 서울에선 불가능해 성남 분당의 한 슈퍼마켓 옥상을 선택해 자신만의 사무실로 꾸몄다.

구본준의 ‘건축소 습격기’
구본준은 <한겨레>의 문화부 기자다. 그는 오랫동안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써왔다. 앞으로 그는 매월 건축가의 사무실을 습격할 계획이다. 건축가의 개성이 가장 두드러진 공간을 <아레나>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여기가 사무실 건물 맞아요?” 건축가들의 특별한 사무실을 함께 다녀본 포토그래퍼 린도 이런 곳에 건축가 사무실이 있다는 게 의아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문화 관련 사무실이 있을 법한 동네는 아니니 말이다. 유명 건축가라는데 서울도 아닌 분당, 분당에서도 오피스타운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동네 좁은 길에 사무실을? 전화로 확인한 뒤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슈퍼마켓 건물로 들어온 사진가는 내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정말 사무실에 대한 남자들의 로망을 구현한 곳이네요.”

독특하고 개성적인, 때론 이상할 정도로 희한한 사무실들을 익히 보아온 사진가의 눈에도 이 사무실은 멋져 보인 모양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야외 마당이 있는 옥상, 층고가 높아 눈이 시원한 내부, 하나로 트여 더 넓어 보이는 공간, 그리고 구석구석 유명한 디자인 제품들까지. 모임 하기 좋아 보이는 철제 아일랜드 식탁, 앉으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 같은 토머스 헤더윅의 ‘스펀(Spun)’ 체어 같은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나면 어딘가 구조가 익숙한 듯 색다른 내부 풍경을 둘러보게 된다. 분명 특별한데, 뭐가 특별한 거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뜯어볼수록 아주 기능적인 것들뿐이다.

한국의 40대 건축가들 중 선두 주자로 불리는 김찬중(더시스템랩 대표) 건축가가 주로 작업해온 건축을 떠올린다면 이 사무실은 의외일 수도, 또는 역시 김찬중다울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마시멜로’ 또는 ‘이빨’이라고도 부르는 패션 브랜드 폴 스미스의 플래그십 스토어, 냉장고를 연상케 하는 새하얗고 동그란 연희동 갤러리 건물, 한남동의 명물이 된 올록볼록 묘한 사무용 건물까지, 김찬중은 늘 특이한 형태를 특이한 재료를 써서 특이한 방법으로 설계해왔다. 지금 한국에서 상업 건축에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로 꼽히는 건축가의 사무실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지게 특이할 것을 예상하게 되지만, 그의 사무실은 요란하기는커녕 차분하다. 그리고도 역동적이다.

  •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 장기인 김찬중의 최신작 한남동
    빌딩.벽면이물결치는 곡선디자인으로 화제가됐다.
  • 개념적 설계 작업이었던 ‘수직의 묘지’.

건물은 삼각 지붕을 얹은 집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그대로이고, 철제 파이프로 골조를 지은 가건물 같다. 사무실 안팎은 오로지 검은 골강판만으로 덮었을 뿐이다. 아주 흔한 재료로 마감했고, 괜찮은 물건들을 군데군데 놓아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특별한 분위기, 무언가를 만드는 ‘꿈의 공장’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김찬중 디자인의 중요한 특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사무실을 이런 곳에 낸 것 자체가 그다운 선택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 건축가들이 사무실을 내는 동네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교통이 좋은 곳. 전국 각지의 시공 현장을 오가기 편한 서울 양재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교통 못잖게 건축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는 ‘문화적인 지역’이다. 너무 번화한 업무 지역이나 상업 지역보다는 오래된 동네의 느낌이 살아 있는 곳. 그래서 작고 개성적인 가게나 독특한 동네 분위기가 형성된 지역에 남들보다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건축가들이 1980~1990년대 사무실을 얻을 때 가장 선호했던 동네는 서울 대학로였다. 그다음 세대인 30~40대 건축가들이 주로 찾아간 동네는 지금 서울의 대표적 문화 중심지,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들이었다. 강북에서는 홍대 앞을 비롯해 옥인동·창성동 등 ‘서촌’ 일대와 이태원, 그리고 강남에서는 신사동 가로수길과 서래마을 부근이었다.

창의성에 도움을 주는 높은 층고에 대한 김찬중 건축가의 선호는 대단하다. 작업 중인 모형물.

반면 김찬중 소장의 사무실은 아마도 건축가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을 듯한 동네, 그리고 건축가의 사무실이 가장 들어가지 않을 법한 건물인 슈퍼마켓 건물 옥상이다. 건축사무소같이 창의성을 중시하는 회사가 입주해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곳이다.

그가 이 묘한 곳에 들어온 것은 건축가로서 홀로 서기에 나선 2년 전이었다. 이름은 알려졌어도 아직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에게 새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은 큰 고민이었다. 그의 로망인 건물 형태는 창고나 공장 같은 것이었다. 천장이 높고 실내가 넓어 그때그때 공간을 자유롭게 꾸미고 이용할 수 있는 건물, 가장 정직한 기본 형태에 충실한 건물이어서였다.

하지만 경제력도 부족했을뿐더러 서울에서 창고 건물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들렀다가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슈퍼마켓 옥상에서 창고 같은 건물을 발견했다. 제법 큰 단층 슈퍼마켓 건물 위, 임대가 안 되어 방치 상태로 비어 있던 공간이었다. 올라가보니 폐허 수준이었지만, 싸고 넓은 공간을 찾던 그에게는 ‘이곳이다’란 직감이 왔다.

넓이는 무려 약 462.8㎡, 게다가 앞쪽엔 옥외 공간이 있었다. 장기 임대를 한 그는 옥상을 더시스템랩의 첫 사무실로 꾸미기 시작했다. 공간은 묘한 영향을 미친다.

층고가 낮은 공간은 집중도를 높여주고, 층고가 높으면 창의성을 자극한다. 천장 높은 실내를 유독 중시하는 그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그가 새 사무실에서 꼭 두기로 결심한 것은 마당이었다. 그는 사무용 건물을 설계할 때 의도적으로 실외 공간을 잘게 쪼개서라도 최대한 많이 집어넣을 것을 고집한다. 사무실은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그 안에 옥외 공간이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중요하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테라스나 발코니가 흡연용 공간보다 전화 통화를 하는 곳으로 더 사용돼요.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개인 통화를 하기는 좀 부담스럽잖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옥외 공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예요. 하루 종일 한 장소에만 있는 건 고통스럽죠. 잠깐이라도 바람을 쐴 수 있는 게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오피스 디자인 원칙이에요. 자주 나가지는 못해도, 1층까지 가지 않아도 바람 쐬러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고 생각해요.”

  •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 장기인 김찬중의 최신작 한남동
    빌딩.벽면이물결치는 곡선디자인으로 화제가됐다.
  • 개념적 설계 작업이었던 ‘수직의 묘지’.

▲ 더시스템랩 사무실은 요철 표면 철판인 ‘골강판’으로 마감했다. 흔한 재료여도 과감하게 안팎 모두 마감재로 쓰면서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김찬중
고려대 건축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졸업했다. 200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큐브릭’이란 야외 조형물을 발표하는 등 미술 전시도 활발하게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2012년 더시스템랩(www.thesystemlab.com)을 설립했고, 최근작으로 안동 고택 스테이 ‘구름에’ 인테리어, 곡선 덩어리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오피스 건물 ‘한남동1’ 등이 있다.

그래서 입구 쪽 공간은 시원하게 비운 마당이 되었고, 실내는 디자인 공장 또는 ‘더시스템랩’이란 사무실 이름처럼 실험실 같은 곳으로 변했다. 실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은 천장 아래 직사각형 파이프 구조물을 설치해 조명을 한 점이다. 그런데 조명만이 아니라 그 위에는 전선이 돌돌 말려 필요할 때 잡아당겨 쓰는 이동용 전선말이가 곳곳에 달려 있다. “카센터에서 우연히 착안한 겁니다. 설계사무소는 모형을 많이 만드는데, 이동용 전선 설비를 카센터처럼 위에 달아놓으면 전선을 잡아당겨 일하기 좋을 것 같았습니다. 또는 병원의 수술대와도 비슷하죠.”

이 네모꼴 조명 구조체이자 전선 거치대 아래에는 넓은 작업대가 놓였다. 일도 하고 회의도 하는 사무실의 중심이다. 구성원들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그 가장자리에 배치됐다. 대표부터 인턴까지 모두 똑같은 책상이어서 위계를 강조하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다. 직원들에게 “언젠가 건축가로 꼭 독립하기를 바란다”며 늘 후배들의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원하는 그의 사무실답다고 느껴졌다.

▶ 손잡이를 당기면 책장이 열릴까?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앞쪽 마당 공간.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사무실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 김찬중 건축가의 지론이다. 테라스 공간이 심리적 안정을 준다고 믿는다.

사무실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골강판은 아주 흔한 것인데도 사무실에 쓰니 새롭게 다가온다. 대량생산되는 자재를 활용해 싸지만 공예적 느낌이 나는 건축이 김찬중 소장의 특기다. 그의 장기는 골강판 하나가 공간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골강판을 빼면 사무실에선 눈길을 확 잡아당기는 독특한 가구나 재미를 추구한 장난스러운 요소, 화끈한 인테리어 포인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과감한 단순함’ 또는 ‘공간을 꾸미는 핵심은 보여주기용 인테리어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하고 있는 일 그 자체여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일 것이다. 그의 사무실은 멋진 작품이 아니라 편안함이 가미된 ‘사무용 기계’ 같은 분위기다.

“사진가께서 여기가 좋다고 하신 이유는 아마 높고 넓고, 가구 이동이나 공간 구획을 쉽게 할 수 있게 유동적으로 설계하고, 파티션을 최소화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가 일반 사무실에서 답답해하는 것들을 살짝 없앤 것뿐입니다.” 아름답게 덧붙여 꾸미기보다는 덜어내고, 여는 것, 하루 최소 8시간을 보내는 곳에선 숨 돌릴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인테리어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쓰임새를 더 좋게 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이 옥상 창고 사무실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WORDS: 구본준(건축 칼럼니스트)
photography: 린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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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구본준
Photography
Editor 조진혁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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