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자는 예술적이고 혁신적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한 것을 꿈꿨나?
내가 모자를 처음 디자인하기 시작했을 땐, 굉장히 전통적인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도 만드는 것을 내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 내 고객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쉽게 살 수 있는 모자를 내게 주문하지 않는다. 물론, 화려한 것들에 가려 눈에 띄지 않지만, 평범한 모자들도 항상 만들고 있다.
당신의 고객들은 진짜 괴짜일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괴짜는 없나?
패션쇼를 위한 모자들은 항상 특이하다. 높은 톱 해트에 드라이 아이스를 넣어 연기가 뿜어져 나오도록 한 적도 있었다. 아, 월터 반 베이렌동크 쇼에선 남자의 성기 모양 모자를 만든 적도 있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모두 여자라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날 비웃더라. 디자인실 벽면이 남자 성기 이미지 맵으로 가득 찼었다.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모자를 의뢰하는 것은 많이 비싸겠지? 이런 질문은 실례인가?
아니다. 아주 흥미롭다. 물론 비싼 건 사실이다. 가장 적게는 2백 파운드 정도다. 주문 제작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디자인의 모자가 많은데, 굳이 내게 모자를 의뢰할 정도면, 모자에 열정이 대단한 마니아일 것이다. 여행에 돈을 쏟아붓고, 비싼 옷을 사고, 차에 투자하는 것처럼 모자에 집중하는 특정 계층이 있다.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금액은 아닌 것 같다.
보통 내 고객들은 1천~2천 파운드 정도 가격대의 모자를 의뢰한다. 완벽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들은 함께 만들고 참여하는 과정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기꺼이 높은 금액을 지불한다.
창의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쇼엔 항상 당신의 모자가 등장했다. 그들이 당신에게 손을 내민 것과 반대로 스티븐 존스의 모자 쇼를 한다면, 어떤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싶나?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다. 남성복에 포커스를 맞춰서 얘기하자면, 톰 베이커와 하고 싶다. 그는 기본에 충실한 수트와 펑크적인 요소를 적절히 조합할 줄 안다. 남자의 옷은 자고로 너무 패셔너블하지 않아야 한다. 톰 브라운이 훌륭한 디자이너인 이유도 그의 쇼는 괴기스럽지만 항상 전통적인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당신에게 있어 모자는 무엇인가?
어쨌든 머리에 쓰는 것 아닌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게 모자다. 자유롭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모자가 될 수 있다. 정의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주변의 모든 것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관심을 갖는다. 남의 얘길 경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주위의 환경을 최대한 흡수하고 내 것으로 변환시킨다. 예를 들어 흰 컵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 녹색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이 컵이 녹색이라면 저 여자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연상하는 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거다. 뭐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안나 피아지는 이탈리아 <보그>의 패션 저널리스트로 패션계의 큰 별이었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스티븐 존스의 예술적인 모자들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다.
10 꼬르소 꼬모는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 펜디의 프린트 모자 등 안나 피아지의 화려했던 삶이 담긴 모자 컬렉션을 전시로 구성했다. 10월
11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실제 디자이너인 스티븐 존스가 직접 큐레이팅에 참여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안나 피아지 이후 당신의 뮤즈가 있나?
글쎄, 안나 피아지 말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아, 요즘은 우리 사무실의 22세 소녀에게 모자를 씌워보는 작업이 흥미롭다. 너무 어리고 모자를 써본 경험도 많지 않아서 선입견이라는 게 없다. 어떤 모자가 됐든 첫 경험이자 도전이라 항상 새로운 반응을 보인다. 또 여자는 아니지만 톰 브라운도 내 뮤즈와 같은 존재다. 몇 시즌째 함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모자를 잘 쓰지 않지만, 클래식한 현실과 쇼에서 보여주는 괴기함을 아주 절묘하게 매치하는 그의 재능은 항상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당신이 실제로 가장 자주 쓰는 모자는 무엇인가?
난 항상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잘 구겨지지 않고 다루기 쉬운 헌팅캡을 자주 쓴다. 또 내게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한다.
오, 의외로 평범하다.
물론 지극히 일상적인 경우에 그렇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자는 둘레에 작고 길쭉한 비즈를 아주 촘촘히 배열한 베레모다. 턱시도 차림에 항상 애용한다. 또 금사로 자수를 놓은 일본 실크 소재의 납작한 모자도 드레스업 차림에 자주 매치한다.
당신의 평범한 일상은 어떤가?
내게 평범한 날은 없다. 항상 다르다. 만약 런던의 집에 있다면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 잠도 덜 깬 상태로 드로잉을 한다. 그때가 가장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떠오르고, 집중력도 좋다. 저녁엔 행사나 파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항상 여행을 다닌다. 지금 내가 한국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지에서도 항상 드로잉을 하고, 사무실 사람들과 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캐드 같은 프로그램을 다루지는 않는다. 노트에 스케치를 하고, 휴대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전송한다. 가끔 인터넷이나 통신이 안 되는 지역에 가면 친구들은 “여긴 천국이야”라고 표현하지만, 내겐 지옥과 같다.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당신과 같은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내 장점, 재능을 정확히 파악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 행운을 이뤄야 한다. 운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절대로 혼자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It is not what you know, It is who you know’란 영국 속담이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은 이미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럼에도 목표가 있나?
패션업계는 6개월마다 새로운 시즌이 찾아온다. 매번 새로운 것을 이뤄내기를 반복하며 내가 최종적으로 이뤄야 하는 걸 찾아내는 게 목표다. 더 먼 미래엔 바닷가 언덕의 노을이 잘 보이는 낡은 집에 살고 싶다. 내 어린 시절 고향인 리버풀의 집이 그랬다.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최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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