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무늬 코트는 뮌 by 커드, 남색 차이니스칼라 셔츠는 레이 by 커드, 빨간색 터틀넥 니트는 유니클로, 검은색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더비 슈즈는 율이에 제품.
무대를 꿈꾸던 10대 소년 기광은 2009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비스트(비스트 데뷔 이전에 AJ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했다)로서 한길을 곧게 걸어오는 동안 20대 중반을 질주하는 청년이 되었다. 이미 보통 사람들보다 몇시간 이른 아침을 보낸 기광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촬영 전날도 남보다 몇 시간은 더 늦은 밤을 보낸 듯했다. 지난 6월 발표한 비스트의 6번째 미니 앨범
탈색을 반복한 탓에 심하게 손상된 그의 머리카락을 보고 “죽었네요” 했더니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휘둥그레져 “네? 저 죽었다고요?” 이런다. 장난인데. 평소 익숙한 스튜디오 촬영장도 아닌 데다 그동안 함께했던 스태프들도 아니다. 언제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장에서 모니터로 바로 확인하던 환경에 익숙했던 기광을 이번엔 필름으로 담아보기로 했으니 그에겐 설상가상인 환경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엔 다들 이렇게 사진을 찍었단 말이죠.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기다리는 설렘, 이런 재미가 없어졌어요.” 나는 이렇게 그를 안심시켰다.
강한 음영으로 얼굴에 힘을 준 방송용 메이크업이 아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만 스물넷 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얼굴에서 힘을 뺐으니 이제 몸에서도 힘을 빼보자 했다. 셔터 소리 몇 번에 금세 감을 잡고 집중하는 모습은 데뷔 6년 차 프로의 모습이다. 촬영장에 샘 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이 흐르자 노래도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퍼렐 윌리엄스의 ‘Happy’가 나올 땐 포토그래퍼의 셔터 소리가 멈춘 사이, 귀엽게 춤도 춘다. 포토그래퍼가 “계속 해보세요!” 했더니 또다시 눈이 휘둥그레져서 “네? 정말요?” 한다. 장난인데. 낯가림이 심해 상대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기광과 비로소 눈을 맞추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회색 터틀넥 니트는 아미 제품.
화보 촬영, 인터뷰를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좀 식상하겠지? 질문도 매번 똑같고?(웃음)
아니다. 비스트로 한 적은 많은데 혼자 이렇게 화보를 찍은 건 처음이다.
‘혼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AJ로 활동했을 때부터 봤다.
(기광은 한숨을 쉬며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인가?
아니다. 경험이지, 좋은 경험.
개인적으로 비스트를 ‘아이돌 2.5세대’ 정도로 구분한다. H.O.T나 G.O.D, 핑클 등의 1세대에 이어 다음 세대, 그리고 반 세대 정도 뒤에 데뷔했으니.
그렇지. 2PM, 샤이니가 나온 다음 엠블랙을 비롯한 여러 팀들과 우리가 데뷔했다.
여기서 말한 아이돌 1세대를 어렸을 때부터 보며 자란 세대네. 6년 동안 비스트는 잘해온 것 같다.
잘 ‘살아남은’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우리 이름을 잘 가지고 왔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연습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6년 정도 연습 생활을 했다.
6년 연습하고 데뷔해서 6년 활동했다. 모두 합하면 10년이 넘네. 인생의 반을 이 바닥에 쏟았다.
‘외길 인생’을 걸었다고 할 수 있지(이때부터 기광은 간간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통 또래들이 누리는 일상은 포기해야 했겠다.
그렇지. 당연하다. 세상 모든 게 다 그렇지 않나. 뭔가를 얻기 위해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 또래에 비해 명성이나 인지도, 부(富)를 얻을 수 있지만 사생활을 자유롭게 누릴 순 없다.
아무래도 팬덤 문화에서 큰 힘을 얻는 만큼 불가피한 게 아닐까 싶다.
팬덤 하면 또 ‘뷰티’지!
아우, 당연하지. 우리는 팬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게 눈 깜짝할 순간에 사라질 거란 생각은 하나?
그럼. 늘 하고 있다.
빨간색 니트는 프라다 제품.
스트레스 엄청 받겠다.
그치(한숨을 크게 내쉬며). 근데 어렸을 때보단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생각이 많이 유해졌다. 일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하지만 요즘은 내 자신이 행복한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좀 써보려고 한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을 찾았나?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에 좋은 차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재미있게 노는 거, 이게 행복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조금, 아주 살짝 깨우친 게 있다.
처음이었다고?
매니저나 멤버들과 해외에 공연차 휴가차 간 적은 있어도 매니저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형들이랑 직접 티케팅하고 짐 싸고 준비하고… 그런 게 너무 재밌는 거다.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누리는 일상이 정작 기광에겐 행복이구나.
맞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좋더라.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이게 힘든 게 아닌데, 행복이 별것 아닌데…. <스타일 로그>를 찍으면서도 이곳저곳 좋은 곳, 맛있는 곳을 돌아다니는데 국내에 그렇게 예쁘고 좋은 데가 많은 줄 몰랐다. 평소엔 잘 돌아다니질 않으니까. 경리단길이라는 곳도 어제 녹화하면서 처음 가봤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웃음)
가장 이상적인 건 음악을 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사생활을 존중받는 거지만 현실에선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겠지. 그리고 일단 이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어느 정도 희생하겠다는 암묵적인 다짐이 있었을 거다.
(기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점점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른 비스트 멤버들도 그렇지만 기광도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한다. 연기, MC, 예능은 물론 스포츠까지…(웃음) 이제 이 정도 데뷔 연차면 본인들이 더 잘 알겠다. 어느 정도의 예능 활동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걸.
맞다. 이제 그런 걸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활동은 멤버들 각자가 매니저와 상의해 결정하는 편이다.
◀ 검은색 싱글 롱 재킷과 안에 입은 흰색 톱은 모두 아크로매틱, 검은색 팬츠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검은색 더비 슈즈는 줄리아노 후지와라,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멤버들과 10대부터 함께했다.
그럼. 특히 동운이와는 거의 처음부터 함께였다.
남자 여섯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오며 서로의 성장을 모두 봐왔을 거다. 아무리 앨범이 잘돼도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있으면 버텨내질 못할 텐데 비스트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잘하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니까.
그 변화가 상호작용이 잘되어야겠지.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여섯은 서로 잘 잡아준 것 같다. 우린 ‘세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다. 왜냐면 모두 자존감이 있으니까.
(웃음) 애들이 외향적으론 강해 보이는데 실제론 직설적인 표현 대신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다. 항상 카메라는 돌고 있고 누군가는 보고 있는데 팀이 사이가 안 좋으면 당연히 티가 나게 되어 있다.
데뷔 6년차다. 신인 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 시점엔 잠시 숨도 고르고 뒤도 돌아보게 될 텐데. 앞으로 더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있나? 지금 음악, 춤, 예능, 패션, 축구까지 다 하고 있다.(웃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인정받고 싶은 부분은 당연히 춤이나 노래다. 곡 쓰는 걸로도 인정받고 싶고.
내가 쓴 곡을 누군가 불렀을 때 얼마나 좋았겠나.
그것도 나를 좋아해주고, 비스트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수만 명 모인 자리였으니 가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울컥한다.
용준형이 그 맛에 빠져서 지금 그렇게 곡을 쓰나 보다.(웃음)
맞다! 나도 준형이가 이 재미에 계속 하는가 보다 했다.
같은 소속사 동생들이 비스트를 롤모델로 꼽더라.
우리가 아직 누구의 롤모델이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비스트는 앞으로 더 자랄 수 있고 더 보여줄 수 있는 팀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스트 6명을 뜯어보면 사실 꽃미남처럼 잘생긴 애들 하나 없다, 진짜로. 그런데 6명이 저마다 잘하는 게 다르고 바이브가 달라서 그걸 잘 뭉칠 때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나온다. 그래서 우린 앞으로 더 올라갈 수 있다.
‘더 올라간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앨범 차트나 순위 같은 수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팬들뿐만 아니라 ‘비스트’ 하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팀이 되는 거겠지.
Editor: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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