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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로이킴은 사상 최고의 지원자가 몰린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로서 뜨거움과 한기를 동시에 맛봤다. 우리는 서로 그토록 열정적이었다가도 한순간 차갑게 식어 돌아서버린다. 냉정과 열정의 시간을 보내고 그가 다시 기타를 들고 나타났다.

UpdatedOn September 30, 2014

검은색 오버사이즈 집업 아우터와 십자가가 프린트된 티셔츠 모두 반달리스트 제품.

스물의 얼굴을 하고는 서른의 감성으로 노래하는 로이킴은 2012년 <슈퍼스타K> 시즌 4에서 끊임없는 화제를 일으키며 최종 우승자로 호명됐다. 심사위원들이 간간이 밝히는 말처럼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뿐 아니라 ‘스타’로서의 매력과 호감도를 갖춰야 하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슈퍼스타K>가 배출한 인물들 중 로이킴은 유독 눈과 마음에 남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수천 수백 가지로 해석되어 독버섯처럼 퍼지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로이킴은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과 열정의 대상이기도 혹은 그 반대이기도 했다.

그해 오디션이 막을 내리고 이듬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솔로 앨범 활동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산 너머 산인가 싶을 정도로 그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의 기사들이 줄을 이었던, 유독 덥고 뜨겁고 힘든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끝날 무렵, 로이킴이 학업을 잇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또한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누군가에겐 그의 태도가 못마땅해 보이기에 최적의 상황이었으니까.

그 즈음,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서 The XX 인터뷰를 준비하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로이킴을 봤다. 스물을 갓 넘긴 그의 얼굴은 평소 고개만 돌려도 옆을 스치는 평범한 스물들의 얼굴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그에겐 너무 가혹하고 무겁고 두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2백만과의 혹독한 서바이벌 경쟁을 치르고도 여전히 대중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오디션을 치르고 있는, ‘슈퍼스타’로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부합해야 하는 청년. 그때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돌아오면 아마 그의 노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고.

◀ 민트색 바탕에 버건디색이 들어간 코트는 줄리앙 데이비드 by 쿤위드어뷰, 꽃무늬가 들어간 버건디색 셔츠는 클럽 모나코, 모직 소재의 반소매 스웨트 셔츠는 우영미, 남색 핀턱 팬츠는 노앙, 와인색과 검은색이 그러데이션된 윙팁 슈즈는 프레드 페리,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이킴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은 건 작년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었던 tvN <응답하라 1994>에서였다. 드라마 OST로 삽입된 ‘서울 이곳은’이라는 곡이었는데 특히 가사가 로이킴을 위해 새로 쓰였다 해도 믿을 만큼 그와 완벽하게 어울렸다. 미국에서의 시간을, 그리고 수많은 감정을 잘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그가 서울에 돌아오면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이끌린 힘은 그의 노래, 그러니까 음악으로부터 나왔다.

늦은 여름 볕과 이른 가을볕이, 아쉬움과 쓸쓸함이,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는 서울 어딘가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낯설고도 오묘한 동네 분위기가 그와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사람 혼을 쏙 빼놓을 만큼 화려하고 정신없는 서울에서도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런 곳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이킴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머리를 넘기며 왼쪽 얼굴만 카메라에 보여줬다.

해가 넘어갈 듯 말 듯 몇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는 헝클어졌다. 일부러 머리 매무새를 고치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에 포착된 오른쪽 얼굴이 훨씬 멋졌다. 보이지 않으려 꽁꽁 숨긴 그의 속내처럼.

로이킴. 이 이름이 주는 어감이 얼마나 낯설면서도 이상적이고 또 이방인처럼 느껴지는지 이름의 주인에게 물었다. 외국 물 먹고 호위호식하며 유학 생활을 할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로이킴’이라는 이름 뒤에 실은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쳤고 고등학교 진학을 ‘나 홀로 미국’으로 선택한 김상우라는 보통 청년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낯선 땅에서 생활하며 공부하는 걸 호위호식했다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공부를 했고 진학 준비를 했다. 가지고 놀던 기타로 노래를 하거나 곡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전공 선택에 대한 뚜렷한 뜻도 없어 갈피를 못 잡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학문인 경영학을 골랐다. 유학파 로이킴은 그때까지만 해도 또래의 한국 청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오렌지색 줄무늬에 벨벳 칼라가 장식된 가운은 스니저 퍼레이드, 빈티지한 티셔츠는 시에로 제품.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 내내 한 거라곤 공부밖에 없다는 게 후회스러워 마침 방학도 했으니 ‘나가볼까’ 해서
<슈퍼스타K> 예선을 치른 게 재작년이란다. 그런데 일이 점점 커졌다. 현실에 한숨 쉬고 진로를 고민하는 보통의 스물 즈음 청년이 거대한 유명세만큼이나 비대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됐다. “<슈퍼스타K> 나갔을 땐 그저 그 순간이 재미있었어요. 유명한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서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걸 열심히 하니 더 좋더라고요.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음악이라는 세계가 나랑 잘 맞는구나’ 느끼게 되면서 조금씩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가까운 목표를 충실히 이뤄내면 다음 것이 온다는 건 그가 유학 생활을 하면서 혼자 깨우친 방법인 듯했다.

그의 말을 받고 한참을 망설이다 이야기를 꺼냈다. “근 1~2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굉장한 경험을 했겠어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차갑고 뜨거운 맛을….” 말끝을 흐렸더니 걱정과 달리 그가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네. 불태웠죠.(웃음)” 그리고 그는 학교로 돌아간 동안 음악에 대한, 노래에 대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공연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하게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봐야 제대로 보일 때가 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잘 안 보인다. “가끔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어딜 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내 음악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또 대학 생활 그 자체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요. 이런 생활이 지금의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줘요.”

  • 캠퍼릭 오웬스
  • 릭 오웬스

▲ (왼쪽) 빈티지 아우터는 준야 와타나베, 회색과 검은색의 격자무늬 셔츠는 알레그리, 회색 그러데이션 티셔츠는 H&M, 팬츠는 그레이하운드, 검은색 패치워크 윙팁 슈즈는 프레드 페리 제품. (오른쪽) 송치 소재의 회색 코트는 반달리스트, 얼굴 프린트가 들어간 셔츠는 그레이하운드, 빈티지한 회색 워싱 팬츠는 랙앤본 by 비이커 맨, 버클 장식의 가죽 부츠는 H&M 제품.

“작년 여름 끝 무렵 미국으로 갈 때 분위기가….” 또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더니 그가 시원하게 문장을 마무리한다.
“도망갔다고요?” 조금 용기를 얻어 대화를 이었다. 오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빌미일 수도 있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로이킴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니 그걸 몰랐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 알아요.” 그가 대답했다. “더 이상 휴학 상태를 유지하면 제적될 상황이었어요.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일정이었어요. 사람이 그래요. 안 좋은 일이 생길 땐 계속 생기더라고요” 하며 허허 웃는다. 대학 생활 새 학기에 대한 설렘만으로 산뜻한 기분으로 출국 비행기엔 오르지 못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애정과 상처를 동시에 품고 ‘세상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때도 있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의 대가를 달게 치른 탓인지 내 앞에 앉은 로이킴은 영락없는 애어른이었다. 울컥 하는 감정의 걸림 없이 이토록 부드럽고 초연하게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이 있기까지 그는 시꺼먼 마음속 골방을 몇 번이고 혼자서 들락날락거렸을 것이다. 그곳의 한기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른다. 그 시린 골방을 나오게 만든 것 역시 음악의 힘으로 귀결된다.
“음악을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은 전혀… 그러면 정말 제 인생이 불행해지는 거예요. 유일한 낙이 없어져버리는 거죠.”
그리고 그가 알아챈 ‘공연의 맛’을 이야기하며 눈빛을 반짝인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2집 이야기를 하면서 1집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감성이나 표현적으로), 훨씬 더 풍성하다(사운드적으로) 팔불출처럼 자랑하는 걸 보니 안도 섞인 웃음이 났다. “어떤 뮤지션이든 최근 앨범이 전작보다 낫다고 말하더라” 농을 치며 2집에 대한 힌트를 물었더니 ‘통기타’와 ‘드럼’이라는 키워드를 내놓는다. 앞으로도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의 뒤를 끝까지 쫓을 것이다. 한국 대중의 ‘내가 직접 뽑고 키운 스타’라는 마음에 기반한 달콤한 애착으로, 한편으론 비뚤어진 집착으로 그의 곁에 머물 것이다. 그 안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로이킴은 2집 앨범 발매 이후 연말까지 이어지는 전국 투어 콘서트 이야기에 들뜬 목소리로 마지막 문장을 맺었다. “그것만 보고 있어요. 제 인생에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참
STYLIST: 이한욱
HAIR: 하민(차홍아르더)
MAKE-UP: 천혜린(차홍아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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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참
Stylist 이한욱
Hair 하민
Make-up 천혜린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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