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3번이나 다닌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학업열이 불타서인가?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호기심이 많아서, 해보고 싶은 건 어찌됐든 직접 해봐야 한다. 그림을 좋아해서 경원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공부를 좀 더 해서 경원대학교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사실 경제학보다는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점수가 모자랐다. 마지막으로 연기 때문에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연기 전공으로 입학했다. 학비 대시느라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한정수라는 배우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2인조 아이돌 그룹 데믹스의 멤버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나도 놀랐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거든. 대학 시절 아마추어 록 밴드를 했고, 기획사와도 록 밴드로 계약을 했던 거다.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친구가 사장님에게 밉보여, 밴드가 해체됐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였는데 회사에서 제안을 해왔다. 난 로커라고, 록 스피릿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댄스 음악을 하냐며 싸우기도 했다. 결국은 하게 됐고, 후회는 없다. 왜냐면 그때 음악 장르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록 뮤직만이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배우지만 뮤지션이 되고픈 열망은 아직도 남아 있다.
배우의 꿈이 전무하던 사람이 어떻게 연기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나?
데믹스 1집이 망하고 1~2년 정도 방황했다. 음악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러던 중 친구가 아르바이트할 거냐고 물었다. 주말에 대학로에 갔더니 그 친구가 극단에서 표를 팔더라. 그렇게 우연하게 연극을 접하게 됐다.
연극 무대를 보니 심장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했던 건가?
내 인생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경험이 두 번 있다. 첫 번째가 경제학과에 다니던 시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을 때다. 사회에 대한 인식 없이 정말 내가 바보처럼 살아왔다고 느꼈다. 두 번째가 연극을 보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전집을 사서 읽었을 때였다. <연기 수업> <나의 예술 생애> 등이었는데, 굉장한 충격과 함께 참 괜찮은 세상이구나라는 감흥을 받았다.
그럼에도 대학로에 뼈를 묻지 않고,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당시 함께 다니던 친한 형이 있었다. 같이 포스터도 붙이고, 표도 팔던 형이었다. 그는 사실 주연 배우였다. 지금 뭐하고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바로 내 앞길을 걸어가고 있던 멘토 같은 인물이었다. 항상 보라색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던 미남이었다.
그전 해 한 해 동안 3백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더욱이 1년 내내 끼던 선글라스가 아트박스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재미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럼 학교에 가서 연기 공부를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었고, 서울예술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1973년생인데 2003년 서른 살에 영화 <튜브>의 조연으로 정식 데뷔했다. 아주 늦은 편이다. 그리고 2010년 드라마 <추노>에 이르기까지, 한정수라는 배우는 활동은 꾸준히 했으나 그리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다. 아마 대학로보다 더 힘들었을 거다.
사실 대학로에서 놀 때는 오히려 수입이 좋았다. 광고 모델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일을 시작하고서는 수입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바로 <얼굴없는 미녀> <해바라기> 등의 작품에 출연했으니, 인생이 조금씩 풀리는구나라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아니,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 작은 역할들이 가끔 하나씩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소속사가 없어서 혼자 오디션을 보러 많이 다녔다. 알다시피 예전에는 많은 영화사들이 충무로에 모여 있지 않았나. 당시 영화 주간지 <씨네 21>의 맨 뒤에는 한국 영화 진행 상황표가 있었다. 영화사 주소도 있고, 어디에서 어떤 영화가 오디션 중인지, 촬영 중인지 등을 알려줬다. 그거 보면서 가방에 프로필 넣고 홀로 뛰어다녔다.
2007년 <마왕>부터 드라마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왕과 나> <추노>에 이르러 한정수는 대중에게 배우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데뷔부터 이 시기까지 연기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은 없었나?
없다. 이거 말고는 따로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에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성격이 쉽게 호기심을 가지고, 또 쉬이 싫증 내는 스타일이다. 간간이 하나에 꾸준하게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연기였다.
얼굴이 팔리면서 사람들이 알아보니 뿌듯했겠다. 거의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성공한 기분이 들었으니 오죽했을까?
잠깐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는 오히려 부담이 되고 불편하기도 했다. 혼자 여기저기 잘 다니는 편이라서 그렇다.
이목을 끈다는 건 인지도가 상승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에 목말라온 인생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인지도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작품을 하는 건 좋은데, 유명해지는 것에는 욕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리 원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게 더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 욕심은 또 있다. 좋은 작품을 하려면 또 인지도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하다.
참, 최근 ‘브로짐’이라는 체육관을 열었다고 들었다.
‘형제체육관’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 김포에 지난 7월 정식 오픈했다. 사실 강남에 내려 했는데 너무 포화 상태이기도 했고,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 체육관에 나가고 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니까.
줄무늬 니트·울 와이드 팬츠는 모두 마르니 by 쿤위드어뷰 제품.
연기 이외의 직업은 처음 아닌가?
맞다. 사실 이전에도 많은 유혹들이 있긴 했다. 그런데 내가 아주 단순한 성격이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참, 케이블 채널의 리얼 프로그램 <아드레날린>에 출연해서 캠핑에 대해 굉장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금도 캠핑을 다니는지 궁금하다.
출연 전부터 캠핑이라는 문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말이다. 프로그램 하고 나서 캠핑이 좀 싫어졌다. 원래 모든 취미 생활이란 게 그렇지 않나. 좋아하는 무언가를 직업적으로 하면 흥미가 떨어져버린다는 사실. 캠핑이 그랬다. 재미가 없어진 거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이렇듯 한정수는 골프, 야구, 아이스하키 등 굉장히 외향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배우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스타니슬랍스키 같은 인문학을 논하니 더 매력적인 듯하다. 책을 많이 읽는 배우를 근래 만나보기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좀 못 읽었다. 책 읽는 배우가 좋다는 것보다는 당연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연기도 대중 예술의 한 축이며, 예술가다. 예술이란 건 표현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예술가의 어떤 사유나 의식이 있어야만 표현이 가능하다.
어떤 책들을 많이 보나?
책 욕심이 좀 있다. 그래서 다 읽지 못해도 사는 습관이 있다. 이게 나쁜 습관이란 건 안다. 하하. 아무튼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주로 인문학, 사회과학 쪽 책을 많이 사서 읽는다.
이래저래 바쁠 텐데 언제 책을 읽나?
스스로도 내가 외향적인지 내성적인지를 잘 모르겠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운동하는 게 참 좋다. 그런데 1주일에 2~3일은 꼭 혼자서 책 읽고 음악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는 전화도 잘 안 받는다.
한정수는 배우다. 제일 잘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니 영화에 좀 목이 마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데뷔 초기에만 영화를 좀 했다. 이후 드라마에 쭉 출연해왔는데, 그래서 차기작은 영화 쪽으로 눈을 다시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음악에 대한 열정도 잘 말해준 바 있다. 책도 많이 보겠지만, 음악적 지식 또한 상당해 보인다.
책보다 음악이 더 먼저였다. 20대 시절에는 용돈의 70%를 앨범 사는 데 소비했다. 1천여 장까지 모았던 것 같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할거냐고 어머니에게 하도 욕을 먹어서, 근래 소속사 사무실에 음악 좋아하는 친구에게 절반 가까이를 줘버렸다. 품 속의 자식을 떠나 보내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소장품을 어쩔 수 없이 처분해야 할 때의 슬픔,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인지 뮤지션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당신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쯤이면 다시 음악 한번 해볼 때 되지 않았나?
그냥 마음 한쪽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다.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매직아이>에서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들과 함께 출연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회가 되면 내게 곡을 달라고 조용히 이야기하긴 했다.
지금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집이 경제적으로 꽤 유복했나 보다. 학교도 그렇고 취미 생활도 그렇다. 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투성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평범한 중산층이었고, 그 후 상당히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최고의 불효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도 어머니께 그리 잘해드리는 편은 아니다.
빨리 가정을 이루어서 손주를 안겨드리면 되지 않나?
몇 년 전까지는 결혼하라고 구박도 하시고, 걱정도 많이 하셨다. 이제 말씀이 없으신
걸로 보아서는 포기하신 듯하다.
물론, 나도 가족의 필요성은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준비가 많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준비랄까?
photography: 김태선
CONTRIBUTING editor: 이주영
STYLIST: 이진규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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