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스눅스 Daniel Snoeks
‘질풍노도’의 대명사. 호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반항 어린 눈빛, 목과 손목을 넘어선 타투만으로도 방송 분량을 충분히 확보한다.
본격적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여전히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한국에선 낯설다. 이는 바꿔 말하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다니엘은 10대에 학교를 뛰쳐나왔고, 타투로 자신의 온몸을 덮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감출 수 없는 목선과 손목까지 타투를 한다는 건 ‘앞으로 죽을 때까지 타투이스트로서, 내 몸의 타투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며 살겠다’는 결심과 확신이 있는 거라는 어느 타투이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10년 후를 알뜰히 계획하고 보험 들며 살아가는 타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태권도 국가대표였다고?
4세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12세에 호주 국가대표가 됐다. 2008년 주니어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를 이겨 2위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태권도는 무조건 한국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선수들이 많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긴 하지. 그래서 우린 머리로 싸우는 법을 배웠다. 우리 선생님이 항상 “체스를 두듯 태권도를 하라”고 했다. 머리를 잘 써야 이기는 스포츠라고. 시합할 때 선생님들이 선수한테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막 소리를 치는데, 우리 선생님은 나에게 반대로 말했다. 상대 선수도 선생님 말을 들으니까. 이런 식으로 많이 이겼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지금까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뭔가?
성형수술. 강남 가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수술한 사람이더라. 처음엔 몰랐는데 이제 보면 딱 안다. 한국 여자들은 코가 그렇게 생길 수가 없다. 호주에선 못생기면 옷을 잘 입든가 살을 빼고 몸매를 가꾸든가 머리를 멋지게 만들지 성형은 안 한다.
◀ 수트 재킷·셔츠·팬츠는 모두 휴고 보스, 슈즈는 시에카 마스케라, 목걸이는 모두 지고르 by 커드, 지팡이는 란스미어 제품.
한국에선 예쁘고 잘생겨야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크다. 호주는 그렇지 않고 마음을 보나?(웃음)
외모에 크게 신경 안 쓴다. 나도 호주에서 잘생겼단 소리는 거의 안 들어봤다. 한국 들어와서 잘생겼다는 소릴 처음 들어봤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어땠나?
4년 전, 태권도 호주 대표로 시합하러 한국에 잠깐 왔다. 그러다 작년 4월쯤 사귀던 한국인 여자친구를 따라 무작정 들어왔다. 와본 적이 있어서 한국말도 배울 수 있겠다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온 거지. 한국에 입국한 날, 딱 5만원 있었다. 당장 잘 곳도 없었고. 그런데 어떻게 다 되더라.
사람들 대부분이 1개월, 1년, 10년 후를 걱정하고 준비하며 오늘을 산다.
나는 하루.(웃음)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호주에서부터 고수하던 라이프스타일인가?
호주에서 유명 패션 브랜드 회사에서 일했다. 돈을 적지 않게 벌었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때도 돈을 모으진 않았는데, 좋게 살았다. 근데 너무 쉽게 사는 거 같았다. 아직 나는 어리고 젊은데 그런 게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차라리 힘들게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앞으로 나에겐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안정이나 돈, 내 나이에 그런 건 생각 안 해도 된다. 잘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다.
잘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벌고 살 수 있는 거. 지금도 모델 일 하면서 매일 그림 공부도 하고 타투 공부도 하고 있다. 준비를 하는 거지. 처음부터 모델이나 유명인이 되고 싶었다면 이렇게 목까지 타투를 새기지 않았을 거다. 물론 모델 일을 하면서 관심 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에네스는 다니엘을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른다”고 타박한다.(웃음)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14세 때 처음 타투에 빠졌다. 잉크가 피부에 들어가고 죽을 때까지 못 지우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으면 어려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나이 들어도 나쁜 짓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등을 제외한 온몸에 타투가 있다.
어차피 한 번만 사는 인생이라면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관심 갖고 열심히 해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 다 됐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나?
어떤 사람이든 일단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를 어느 정도 배우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이 좋지만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한국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한국 문화를 배우고 존중해야지. 한국 사람들도 호주에 오면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그런 말 많이 한다. “다니엘, 너 이제 완전 한국 사람 다 됐어.” 그럼 내가 그런다. “나 한국 사람 아니야. 그냥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야.” 나는 ‘호주 사람’ 다니엘도 아니고, 그냥 다니엘이다. 다니엘이 다니엘이지, 나는 나를 어쩔 수가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각자 다 다르게 태어났으니까.
에네스 카야 Enes Kaya
‘터키 유생’ 에네스와 광장시장 깊숙이 들어가 전집에 앉았다. 어쩌면 그는 ‘터키인을 연기하는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20세에 유학 온 한국에서 터키인 에네스가 자리 잡은 지도 어언 12년.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으며, 한국을 사랑한다. 강동원과 고수가 주연한 영화 <초능력자>에서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와 비중을 차지했고, FC 서울 감독이었던 기네스의 통역관으로도 지냈다. 그리고 얼마 전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그는 케밥 자원봉사에 나섰다.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인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의 면모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사람 대부분은 ‘진보’는 곧 ‘쿨’해 보인다 믿는다. 하여 보수적인 면을 어떻게든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에네스는 대리만족의 대상이다.
그가 완강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속으로 쾌재를 외치는 우리를 발견한다.
방송에서 에네스의 단골 자막은 ‘강경 보수파’다.
‘보수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한국에선 좀 다른 것 같다. 꽉 막히고, 말 안 통하고… 이런 의미? ‘보수적’이라는 말이 ‘개방적’이라는 단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런 의미를 갖게 된 건데, 보수적이라는 게 사실 나쁜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아, 저거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주변 눈치 보며 ‘나는 개방적인 사람이야’ 하거든. 유교 문화가 강했던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 이걸 달가워하지 않던 사람들은 내가 ‘변하면 안 된다’고 말할 때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수트 재킷·팬츠·넥타이는 모두 타임 옴므, 셔츠는
브룩스 브라더스 제품.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게 우리의 문화였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그걸 단어로 따지자면 ‘보수적’이라고 표현하는 거지.
‘보수적’이란 내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다.
<비정상회담>에서 에네스는?
다른 사람 이야기는 듣는다. 듣긴 듣지. 근데 다 똑같다.
내가 ‘결혼 전 동거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을 때 줄리앙이 ‘에네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40년 동안 동거만 하고 결혼은 안 한 상태에서 애 낳고 가족처럼 산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거고. 우리는 프로그램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납득시키자’라기보다는 그냥 서로의 생각을 꺼내놓는 것에 가깝다.
한국에 유학 온 게 12년 전 가을이니까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바로였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해외 생활을 많이 했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처음엔 한국에서 대학 마치고 바로 터키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계속 있게 되더라.(웃음)
한국말을 정말 정말 잘한다.
먹고살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웃음) 어학당 다니면서 한국어를 빨리 배우려고 길 가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다녔다. 처음 1년은 정말 재밌게 놀았다.
그땐 나이도 어렸으니까… 지금의 다니엘 나이지.
<비정상회담>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2007년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방송국 상황을 좀 알고, 제작진이 외국인에게 바라는 캐릭터나 이미지도 잘 안다. 예전엔 ‘외국인 출연시켜 시선 좀 끌어볼까?’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한시적으로 출연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비정상회담>도 처음엔 ‘에이, 해봐야 한 두세 번 나오고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서 제작진에게 “이 프로그램, 얼마나 갈 거 같아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날 뽑은 것 같다. 솔직하게 말을 막 해서.(웃음)
그런 사람이 더 정이 많더라.
내가 첫인상은 좀 차갑고 싸가지 없어 보여도 사람은 괜찮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잖나, 일단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근데 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쉽지가 않지.
<초능력자>에 이어 얼마 전 영화도 찍었다. 차기작 텀이 길었네.
맞다. 4년 됐다. 4년에 한 편씩 영화 찍으면 우리 집 망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연예계 생활을 하는 데는 굉장히 제한이 많다. 어찌 됐든 ‘너는 우리나라에서 살긴 하지만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라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게 한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게 사실이고. 그래도 뭐, 지금 한국 사람들만으로도 모자랄 밥상에 ‘내가 어떻게든 끼어서 밥 먹겠다’라고 욕심을 내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욕심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는 걸 욕심 내서 힘들어하기보다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기로 했다.
한순간 타국에 있다는 현실이 피부로 와 닿을 때가 있을 텐데, 외롭진 않나?
‘내가 지금 남의 나라 와서 12년째 뭐하는 짓이냐. 왜 내가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이 되어서는… 나 자신을 잃은 것 같다…’
이런 생각, 가끔씩 한다. 근데 그건 터키에 살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온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뒤돌아보면 물론 나쁜 일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한국에서 행복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이 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말이 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먹고사는 곳이 고향이다.’ 이미 나는 터키에서 살았던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다.
장위안 張玉安
‘대륙의 남자’ 장위안은 프로그램의 반 이상은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 이따금씩 꺼내놓는 묵직한 발언들은 순결하고 위험하다.
장위안의 수식어는 ‘대륙의 남자’이지만 사실 그는 수줍음이 많다. 촬영 당일 약속 장소에 10여 분 일찍 도착해놓고 정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똑똑똑’ 노트 3번을 하고는 왁자지껄한 인기척에도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밖에서 서성인다. 어학당을 다니긴 했지만 자신의 한국어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배운 거라는, 그래서 ‘혀 꼬인 듯’한 발음이 되었다는 설명마저도 나지막이 부드럽게 읊조린다. 에디터에게 조심스레 한가인을 만나봤냐며, 실물이 어떻냐 묻기도 하고, 몇 년 전 결혼했단 말을 듣고는 낯빛이 잿빛이 되어버리는 사람. 인피니트 멤버 엘의 10년 후 모습이라며 여성팬이 많아져 좋겠다는 에디터의 농담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사람. 그리고 일본의 역사 의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반전의 남자.
어쩌다 중국 베이징TV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지내게 됐나? 한국에선 아나운서 못해서 난리다.
중국도 똑같다. 2007년에 대학 졸업 후 입사해서 2년간 하루 15시간 정도를 일했다. 스포츠 뉴스 아나운서였는데 그때가 올림픽 때여서 더 그랬다. 신입 사원이고 제일 어리니까 아무 일이든 다 시켰다. 편집, 인터뷰, 아나운서, 기자 일까지. 회사 다니는 동안 체중이 55kg까지 빠졌다.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고. 올림픽 끝나고 나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겠다 싶어 그만뒀다.
오래 준비해 이룬 꿈일 텐데 결정하기 힘들었겠다.
그런데 그때 일을 계속했으면 지금 내가 여기 없었을 거다. 좀 쉬면서 여행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중국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거든. 잠깐 놀러 온 건데 너무 재밌어서 어학당에 바로 등록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나?
술 문화. 중국은 1차, 2차, 3차 이런 게 없다.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술 마시고 헤어진다. 그런데 한국은 저녁에 시작해 새벽 2시, 3시가 기본이다. 그런데 처음엔 좋았는데 지금은 싫다. 힘들다.(웃음)
◀ 수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로드 앤 테일러, 셔츠는 김서룡 옴므 by 커드, 행커치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실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좀 서먹한 느낌이다.
문화도 다르고, 특히 국가 제도가 달라서 더 그렇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비정상회담>에서 나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나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생겨서인 것 같다.
첫 회에서 이탈리아 ‘알차장’이 “베네치아 식당 주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많이 웃었다.
중국 인구가 많아서… 14억….
중국 여행은 많이 다녔나?
한국 사람보다 중국 여행을 더 못 다녔을 거다.(웃음) 시간도 없었고, 워낙 땅이 넓어서….
일본인 타쿠야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타쿠야는 여기 안 나오나? 왜?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웃음)
중·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선 긴장감이 느껴지더라.
현장 분위기는 사실 더 심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타쿠야와 친하기 때문이다. 어학당 다닐 때부터 일본인 친구들도 많았다. 일본 정부에 문제가 있는 거지 일본 친구들이 문제라는 건 아니었다.
오해받을 수 있는 예민한 부분이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이든 대놓고 말하는 화법 자체를 낯설어 하니까.
맞다. 사실 그런 반응은 생각도 못했다. 내 친구도 방송 보고 나에게 ‘미쳤다’고 했다. 내 생각에 이건 문화 차이인 것 같은데,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좀 더 솔직하게 툭 터놓고 말하는 편이다. 중국도 한국처럼 유교 사상이 깊은 나라였지만 1960~1970년대 이후 많이 바뀌었다.
타쿠야가 장위안과 마찬가지 논리로 받아친다면?
오히려 그럼 더 좋다. 오해라는 건 서로 대화를 안 해서 생기는 거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니 환영할 일이다.
한국에서 가장 신기한 장면은 뭔가?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화장하는 거. 아침 수업이 있어 일찍 출근하는데 매일 본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잘못된 게 없더라.
싫다는 게 아니고 대단하다 싶다.
지하철만큼 한국 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없지.(웃음)
내가 한국 사람들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문화 차이는 좀 느낀다. 나는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할 순 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안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던데, 이건 중국과 한국의 분명한 문화 차이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바뀌지 않을까?
만약 내가 10대에 한국에 왔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유명세를 치를 거다. 전보다 사생활도 없어질 거고.
그건 이 프로그램 참여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아나운서 일을 했기 때문인지 그런 건 괜찮다.
중국 사람, 한국 사람,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참
STYLIST: 김예진
HAIR&MAKE-UP: 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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