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조선희 Styling 구정란 Editor 이민정 HAIR 선오 MAKE-UP 박정민(컬처앤네이처) ASSISTANT 이윤주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획사 생활을 한 지가 벌써 7년인걸요.” 다크 초콜릿을 문 입이 오물거린다. 이제 고작 스무 살, 지난겨울 생애 첫 투표를 했다며 방방 뛰는 그녀는 어쩌다 작품이 대박 나는 바람에 몸값이 뛰어오른 배우도 아니고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끼로 완전 무장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좌회전 우회전을 번갈아 해가며 여기까지 왔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친언니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1학년 때 연예인 오디션에 응모했다가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배우가 됐다. 친구들이 대학 입시로 골치 아파하고 있을 때 그녀는 춤, 노래, 연기, 발성 등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훈련을 톡톡히 받았을 뿐 또래 소녀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엎드려 배우는 데는 타고났다. 많지도 않은 인맥을 동원해서 묻고 지우고 고치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안 되는 연기가 있으면 잠이 안 와서요.” 이명세 감독이 “바로 저거다!” 했던, 첫사랑의 판타지로 가득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다시 속삭인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는 그녀 앞에 이연희를 담보로 한 시나리오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녀가 맑은 대학생으로 출연한 옴니버스 영화 <내 사랑>은 여전히 순항 중이고.
많은 이들은 당신이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으로 데뷔한 걸로 알고 있다.
4년 전 드라마 <해신>에서 수애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예인으로 살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다. 첫 연기가 사극이라 몇 장면 안 나오는데도 6개월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호랑이 같은 감독님에게 늘 깨지기만 했다. 다들 식사하러 간 사이 감독님이랑 둘이 남아서 밥도 못 먹고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움켜잡고 연습 또 연습했다. 아, 그때 정말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런데 왜 계속했나?) 남들이 알아줬다. 너 되게 잘하더라, 칭찬 듣고 나니 다 까먹고 배시시 웃게 되더라.
<내 사랑>이 1백만 관객 동원을 웃돌았다. 축하한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나.
다행이다. 개봉한 지 3주가 되어가는데 아직까지 전국의 영화관을 돌며 무대 인사하면서 홍보하러 다닌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잘돼서 기분 좋지만 한편으론 아쉽다. 지금 당장 멀티플렉스 상영관 가봐라. 한국 영화는 한 편밖에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쟁이 뜨거운데 나도 이제 영화인이니까 스크린쿼터를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장에서 영화는 봤나. 자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만족스럽다. 완벽한 연기를 했다는 게 아니라 이전까지 감독의 연출법대로 연기했다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내 스스로 캐릭터를 구상해서 연기했으니까.
첫 장면부터 제대로 망가졌단 얘기를 들었다.
하필이면 첫 촬영부터 술집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일 게 뭐람. 스태프 얼굴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이라 다들 긴장 상태인 데다 엑스트라는 많지, 분위기는 어색하지, ‘어디 한번 해봐라’ 하는 눈빛으로 모두 쳐다보지, 차라리 술 마시고 취하는 게 낫겠다 싶어 취중 촬영(?)을 택했다. 정신을 놓지 않을 정도로만 마셨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사랑>의 흥행에 이연희의 힘은 몇 퍼센트 였다고 생각하나.
어휴, 무슨.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영화가 개봉했고 옴니버스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어서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기보다 사랑을 하고 있고 사랑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제공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돋보이는 이유를 굳이 든다면 하나밖에 없다. 슬프고 상처를 안고 있는 커플들 사이에서 나와 상대 배우만이 해피엔딩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
영화 세 편에 모두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백만장자의 첫사랑>
카메라가 돌아가면 긴장이 풀리나.
신기하다. 밤새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여기저기 카메라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면 풀린다. 분위기를 타야 한다고 하나.
이연희의 연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은 누군가.
아버지. 처음엔 연예인이 되는 걸 반대하셨다. 강력하게 어필했더니, 소속사에 들어간다고 연예인이 되는 게 아니니까 일단은 즐겨봐라 하시더라. 지금은 가장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나의 모니터 요원이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참 정확하게 짚어주신다.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은 친구들도 선배들도 아닌 식구들인 것 같다. 나에게는 특히 아버지다.
당신이 잘돼서 그런 거다. 어린 나이에 돈도 많이 벌고 부럽다.
옷도 사고 모자도 사고 DVD도 맘껏 모을 수 있어 좋다.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 예쁘다.
예뻐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다.
… 참 말랐다.
화면은 1.5배로 확대돼서 보이니까 아무래도 음식 조절을 안 할 수가 없다. 여배우라면 연기는 물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게을리한 적도 없다.
원래 그렇게 수줍음을 타나.
연예인 되려고 오디션까지 봤는데 뭘 부끄러워하겠나.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서 전날 본 만화에 살 붙여 얘기하고 장기 자랑하는 게 취미였다. 그런데 오히려 연예인이 되고 나서 수줍음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분들하고 생활하다 보니 나설 때 안 나설 때를 가리다가 이렇게 된 것 같다.
눈이 슬퍼 보인다. 최근에 가장 슬펐던 일은 뭐였나.
<인간극장>을 볼 때면 늘 슬프다.
성격은 어떤가.
B형이라 그런가 변덕이 심하다. 내가 좋을 때는 주위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하다가 우울해지면 말 한마디 안 해서 주위에서 걱정한다. 이유 없이 그런다. 날씨에 따라서도 그렇고, 몸 상태에 따라서도 그렇고. 평소에는 말을 아낀다. 아니, 수다 떠는 게 힘들다. 에너자이저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애와 늦게까지 전화 통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깨가 뻐근해지면서 맥이 확 풀리는데 친구는 끊을 듯하다가 “야 근데 말야~” 하면서 또 다른 얘기를 쏟아놓는다.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달 <아레나>에서 소녀시대를 인터뷰했다. 어쩌면 당신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
기획사에 들어와서 보컬, 연기, 춤, 발성 기초부터 언어 등 많은 걸 배웠다. 가수가 될 뻔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대에 서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게 낯설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것보다 나의 연기를 보고 누군가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다행히 기획사에서 오케이 해줬다.
이제 곧 들어가는 영화도 멜로물이더라. 좋아하나 보다.
강풀의 <순정만화>를 각색한 영화인데 거기서 연우라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학생 역이다. 아직 크랭크인은 안 했는데 상대 배우가 유지태 선배다. 멜로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지금까지 첫사랑, 풋풋한 사랑을 했다면 이젠 좀 아프고 애절하고 성숙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트렌디한 작품도 좋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 같은 역할이라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최고의 배우가 되는 게 꿈이고 목표일 텐데 이연희가 생각하는 최고의 배우는 뭘까.
남이 인정해주는 것. 그게 더 빠를 것 같다. 스스로 내가 최고의 배우야 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남들이 이연희가 최고지 하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음… 스물일곱?
그럼 그때 다시 만나 인터뷰하자, 오늘을 기억하면서.
좋다. 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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