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로 두 달째 지방에서 생활 중인 김관은 순천의 한 숙소에서
이 글을 보내왔다.
2007년 개봉한 영화 <바벨> 이야기로 시작해보죠. 북아프리카 지역 모로코에서 염소 목장을 운영하는 한 남성이 친구로부터 중고 윈체스터 장총을 삽니다. 염소 떼를 노리는 자칼을 물리치기 위한 것입니다. 남성은 두 아들에게 장총을 넘기며 목장 경계를 맡깁니다. 아이들은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사막을 지나는 버스를 향해 총을 쏴봅니다. 그런데 총알은 버스 안에 있던 미국인 관광객 수잔(케이트 블란쳇)의 가슴을 관통합니다. 그녀는 응급처치를 위해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에게 안긴 채 주변 마을로 들어갑니다.
부부의 귀국 일정은 이렇게 엉켜버리고, 미국 샌디에이고의 가정집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리처드 부부의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멕시코인 보모는 사고 때문에 부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아들의 결혼식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모는 두 꼬마를 데리고 샌디에이고를 떠나 멕시코 고향 마을로 향합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마치고 미국 국경을 넘던 도중 보모 일행은 밀입국 혐의로 체포됩니다. 운전을 해주던 조카 산티아고(가엘 가르시엘 베르날)가 경찰의 의심을 산 겁니다. 보모는 자신 때문에 아이들까지 위험에 처하자 괴로워합니다. 이따금 영화는 일본으로 갑니다. 도쿄의 청각장애인 소녀 치에코가 지나치는 TV 화면에는 모로코의 총격 사건이 뉴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로코 목장 아이들이 사용했던 장총은 치에코의 아버지가 모로코에 사냥 여행을 갔다가 현지 가이드에게 선물로 줬던 바로 그 총이었습니다. 물론 치에코도, 아버지도 이런 인과 관계를 알지 못하지요.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 지을 수 없는 비극의 테두리는 이렇게 나비 효과로 이어집니다. 모로코에서 미국, 미국에서 멕시코, 일본에서 모로코처럼 말이죠. 동시에 이건 무관할 것만 같은 4개국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우연 같은 인과이기도 합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이 영화는 감독의 이름만큼이나 난해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국내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 영화를 끄집어낸 것은 지난 두 달간 취재한 세월호 참사 때문입니다. 영화 <바벨> 속 총격 사건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다고 봐야 할까요. 총을 쏜 아이들이거나 총을 준 아버지, 아니면 애당초 장총을 친구에게 준 일본인이 시작일까요. 그리고 이 사건은 누구의 삶을 어디까지 바꿔놓게 될까요.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면서도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꽃놀이와 안산 단원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진도 VTS(해상교통관제센터). 2014년 4월 16일 이전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 같은 이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영화 <바벨>의 인물들처럼 거대한 비극 속에서 인과의 끈으로 묶여버렸습니다. 유병언 씨는 종교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부를 동시에 추구해온 인물입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를 만들어 구원을 받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의 교리를 설파하는 한편,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 등 많은 회사를 만들어 부를 축적해왔습니다.
하지만 유 씨의 회사 청해진해운은 정작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는 선박의 안전 문제에는 소홀했습니다.
그 사이 올해 4월 안산의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투표를 합니다. 제주도까지 배를 탈 것이냐, 비행기를 탈 것이냐를 두고 말입니다. 아이들은 배를 택합니다. 그 배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였습니다. 한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청해진해운의 배를 타고 밤에 불꽃놀이를 즐기는 장면이 나왔던 것을 기억했던 겁니다. 뒤늦게 발견된 숨진 학생들의 휴대폰엔 이 불꽃놀이를 보며 환호하는 영상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던 세월호에서 만끽한 기쁨의 환호성이었습니다. 이번엔 해경 얘기를 해보죠. VTS(해상교통관제센터)는 쉽게 말해 공항의 관제탑 같은 겁니다. 통상 VTS는 행정부처인 해양수산부 관할이지만, 진도 주변 해역은 물살이 거세고 위험한 만큼 진도 VTS는 특별히 구조 임무까지 병행할 수 있는 해경이 맡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진도 VTS의 해경들은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초동 대응에도 실패했습니다.
사회의 기류는 세월호 선장 이준석과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무능한 해경을 세월호 참사의 ‘공공의 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속은 시원하지 못합니다. 이번 참사가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날갯짓이 만들어낸 나비 효과로 파생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산에 합동분향소가 만들어지자 수만 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안산 단원고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내 일처럼 검은 옷을 입고 와 영정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분향소 앞엔 ‘우리가 미안하다’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많은 어른들이 참사의 나비 효과를 중간에 끊어주지 못한 죄책감을 표출한 것이기도 할 테죠.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정서적 참사이기도 했습니다. 잘못한 자를 찾아내 법률에 명시된 죄를 따져 묻고, 벌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국가가 국가로서 기능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검찰과 사법부가 해야 할 마땅한 책무입니다. 피해를 보상하고, 진상 규명을 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것 역시 입법부인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로 사회와 국민이 받은 충격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누가 해줄 수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40여 일 만인 5월 28일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인 21명이 숨지는 대형 화재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병원도 경찰도 믿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때 보니 경찰이고 어디고 믿을 거 못 되더라”며 경찰 수사와 지자체의 발표를 매번 불신의 눈초리로 쳐다봤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국민이 갖는 불신은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영화 <바벨>은 청각장애 때문에 놀림을 받자 자살을 시도하던 치에코를 아버지가 끌어안아주며 끝납니다. 비극의 가장 변두리에 있을 것 같은 인물에게조차 상처는 존재했고, 그 상처는 치유받아 마땅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Bibo No Aozora’를 배경음악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의 한 여학생 이야기를 JTBC <뉴스9>에 보도하며 같은 음악을 삽입했습니다. 곡 제목은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Words: 김관(JTBC <뉴스9> 사회부 기자)
Editor: 조하나
ILLUSTRATION: 정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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