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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홀로 카페에 앉아 계신가요?

언젠가부터 홍대 앞 자그마한 카페에는 동일한 모습의 남성이 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카페 남`!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그들이 카페 구석 자리를 점령하기까지, 그들의 까다로운 취향과 그 기원(?)에 대하여.<br><br>[2008년 1월호]

UpdatedOn December 20, 2007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차민수

꽤 예쁘장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걸친 남자가 오늘도 카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얀색 노트북을 끼고서 무언가에 열중했는지 고개 한 번 들지 않는다. 작은 몸짓이라곤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반복적인 동작뿐, 커다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대! 카페 남이다.
언젠가부터 홍대 앞 작은 카페에 카페 남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홀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끼적이고, 커피를 마시는 이들은 거의 모두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카페 남’이라 부르도록 하자.

자, 그럼 카페 남은 대체 어떤 족속들일까.
일단 카페 남은 곱다. 천성이, 피부가, 행동이, 말씨가 참 곱다. 그렇다고 이들이 여자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는 건 아니다. 카페 남은 게이와는 다른 이미지로 곱다. 몸은 단단하지만 피부는 꽤 매끄러운 상태. 미남에 속하지만 그리 크진 않은 키. 카페 남의 외모는 대충 이러하다. “조금 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카페 남은 언제나 자신의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몸 가꾸기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니트를 차려입은 모습만 봐도 한눈에 그가 카페 남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정도이건만, 이들은 한결같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원한다. (이들은 적당히 단련된 가슴팍을 지니고 있기에 언제나 두툼한 니트가 조금 조이는 듯 느껴진다.) 또 하나 카페 남은 주로 검정 뿔테나 아주 동그란 (마치 해리 포터를 연상시키는) 안경을 걸치고 있다. 그리고 그리 가늘지 않은 손목과 의외로(?) 거친 힘줄이 보이는 씩씩한 손을 지녔다.
카페 남은 오늘도 혼자다. 그러나 마냥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건, 이들이 혼자 있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카페 남이 홀로 카페에 앉아 있는 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다. 카페 남은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해 카페에 나와 앉아 있다. 그러니 이들은 (사람 구경하러 카페에 나와 앉아 있는) 꽤나 할 일 없어 보이는 ‘감상 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제나 혼자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카페 남. 이들은 꽤나 똑똑하다. 영화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르는 분야가 없다. 일단 일반적인 남자들에 비해 정신적 사유의 폭이 넓고 깊은 것이다.
“지난주말?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하루를 보냈잖아.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이 있었는데, 영화 너무 좋더라. 거의 울면서 봤어.” 카페 남의 영화 사랑은 남다르다. 이들은 각종 독립 영화를 비롯, 아주 작은 예술 영화까지 꼼꼼히 찾아본다. 블록버스터를 멀리 하는 건 아니지만, 실험정신 가득한 비주류 영화를 조금 더 좋아한다. 오매불망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은 주로 로버트 알트먼, 짐 자무시, 데이비드 린치, 코엔 형제,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 비주류 감독들. 그중에서도 코엔 형제나 타란티노의 가치를 높이 산다.
“브릿 팝이 좋아. 만날 밤낮없이 워워워워~ 울부짓는 미국식 R&B가 지겹지도 않니?” 카페 남은 음악적 취향 역시 분명하다. 이들은 라디오헤드나 오아시스나 블러나 콜드 플레이를 비롯한 브릿 팝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항상 이어폰을 양 귀에 꽂고 있다. 음악 자체에 관심이 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노트북에는 최근의 음악까지 모조리 다운되어 있다. 좋아하는 작가는 움베르트 에코. 그들은 <바우돌리노>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장미의 이름> 모두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말한다. 사실과 허구를 세차게 넘나드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노라고, 그 안에서 펼쳐진 상상력이 참 좋았노라고 움베르트 에코 얘기만 나오면 평소에 안 하던 흥분을 다 한다. (카페 남은 실용서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한다.) 물론 카페 남은 (읽은 책만큼이나) 글도 잘 쓴다. 조그만 노트에 끼적이는 글들은 거의 한 편의 시에 가깝다. ‘눈을 감아도 너를 떠올릴 수 있어.’ 이러니 카페 남 곁엔 늘 이들을 ‘우상시’ 하는 여성이 그득하다.
카페 남은 블로그 업데이트에도 꽤나 신경을 쓴다. 노트북도 가지고 나왔겠다, 이들의 업데이트는 꽤나 빠른 편이다. (커피나 마시고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게을러 있을 것만 같지만,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성실한 게 또 카페 남의 특징이다.) 이들의 블로그엔 온갖 사회과학 에세이며 시사 단상이며 영화, 문학, 음악 등등에 걸친 엄청난 크리틱이 날마다 업데이트된다. 이러니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지성’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좋아. 난 그것만 마셔.” 밥은 아무거나 먹을지언정 커피에서만큼은 엄청 까다로운 게 또 카페 남이다. 그들은 (누가 카페 남 아니랄까봐) 언제 어느 때고 커피를 내려 먹는다. 혼자 사는 집에는 당연히 에스프레소 머신이 비치되어 있고, 심지어 연구실에서도, 회사에서도, 작업실에서도 커피만큼은 반드시 내려 마신다. 하지만 커피에 비해 식사는 비교적 ‘덜’ 까다로운 편이다. 대학교 앞 ‘이모 식당’에 드나들 만큼 이들은 무난히(?) 아무거나 먹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번 카페 남은 영원한 카페 남이라고, 이들은 당연히 삼겹살보다 스파게티를 선호한다.
“도대체 회식 때문에 회사 다니기가 싫을 정도야. 여럿이서 죽 늘어앉아 고기 굽는 행위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곤혹이지.” 카페 남의 직업은 대부분 프리랜서나 대학원생인 경우가 많다. 여럿이 하는 행위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들은, 일단 회사를 다니다가도 그만두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를테면 공부나 자유 직종 같은)을 구한다. 여럿이서 우우 떼 지어 다니는 걸 싫어하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 셈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엄청난 통증을 동반하는 내적 질병이 아닐까? 아프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해?” 연애에 있어서도 카페 남은 몇 가지 동일한 특징을 보인다. 첫째, 연애(혹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엄청나다는 것. 둘째, 언제나 엄청나게 예쁜 여자를 사귄다는 것. 셋째, 그러나 단발 연애에 그친다는 것이 그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에 끌려. 나 역시도 그러고 싶고.” 그러나 카페 남이 평범녀와 사귀느냐, 그건 아니다. 카페 남은 언제나 <미녀는 괴로워>의 수술 전 김아중 같은, 비극적인 외모 때문에 상대에 대한 마음까지 숨겨야 하는 캐릭터에 무척 마음이 간다고 말하지만, 이들이 데리고 나오는 여자는 정작 ‘수술 후’ 김아중 같은 여자일 때가 많다. 카페 남의 이상형(?)은 따로 있다. 그들은 ‘동성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단순한 똑똑함’을 지닌 여자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우림’의 김윤아 같은 여자다. “난 그녀를 이해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고 믿었는데, 잘 안 되더라.” 당연하다. 낭만적인 카페 남이 주로 ‘여학생 회장’ 같은 타입을 좋아하니, 이들의 연애가 오랜 시간 지속될 리 만무하다.
꽤 예쁘장한,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지닌 똑 부러진 여성들은 카페 남의 순정을 받아주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카페 남은 홀로 저기 저 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를 능가하는 카페 남의 크로키 솜씨는 꽤나 수준급이다. 그는 간디를, 우디 앨런을, 고갱을 그린다. 테이블 한쪽에는 소설책이 두어 권 쌓여 있고, 노트북에서는 유유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다. 멋있다. 그리고 최소한 ‘있어 보인다’.
한둘의 습성은 하나의 남성상을 유도하고, 몇몇으로 대표되는 남성상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되돌아보면 지난 80년대에도 오늘의 카페 남 같은 ‘낭만적이고 지적인, 그러나 조금은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남자가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겠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한쪽 어깨엔 통기타를 멘 채로 정태춘과 김민기를 노래하던 ‘선배 오빠’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주로 70년대 문화혁명을 주도한 1세대(장선우, 김정환, 김봉준, 유인렬 등)의 후손(?) 격이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아마 그들이 지금의 카페 남에 비해 왕성한 활약을 펼치지 않았나 싶다. 80년대 문화예술운동을 이끌었을 만큼 시, 소설, 연극, 음악, 미술 등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투쟁적이었던 그들의 활동은 (지금의 카페 남에 비해) 꽤나 적극적이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모든 현장에 그들이 함께했다는 것이 그들과 지금의 카페 남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즉, ‘걸어다니는 문화운동가’로 불렸던 이들 선배 오빠들이야말로 카페 남의 기원(?)인 것이다.
세월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카페 남의 전신(?)들은 몇몇 또 있다. 1960년대 말 미국의 히피 남들이 그러했고, 15세기경 집시 남들이 그러했다. 그러니 21세기 카페 남과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시대는 다를지라도 맥락은 늘 비슷하기 때문이다. 50년대 집시 남들이나, 60년대 히피 남들, 70~80년대 문화운동 남들은 모두 비슷한 습성 안에서 탄생했다. 비록 제각각의 패션을 고수했을지라도(60년대 히피 남들은 채식주의와 명상을 일삼으며 장발을 유지한 채 맨발로 걷곤 했다) 그들이 부르짖는 가치관은 언제나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모두 기존 사회 통념이나 제도를 부정하던 부류다. 기성 사회를 비판하고 탈사회적 생활 방식에 공감하는 이들인 것이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 역시 대표적인 청년 문화가 존재한다. 그 청년 문화를 찾는 일은, 시대를 향한 이 시대 남성들의 반응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우연히 카페 남을 발견하거든, 이들에게서 지금의 청년 문화를 읽어도 좋다. 오늘 당신이 만난 카페 남은 2008년 청년 문화의 상징이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이고 나른한, 그리고 꽤나 낭만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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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차민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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