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현상
Baseball
전지훈련 땐 기저귀가 필요한 대만 야구팀
대만의 국기는 야구. 대만 야구인들은 ‘아시아 야구 넘버 투’는 한국이 아니라 대만이라고 여긴다. 2006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이를 입증할 좋은 기회였는데,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호주에서 강도 높은 전지훈련을 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탓인지 대표팀 선수 7명은 숙소를 이탈해 술을 마셨는데,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만취한 선수 하나가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방뇨를 한 게 발각된 것. 호텔 측은 강력하게 항의했고 언론이 가만둘 리 없었다.
밀레니엄 카지노 선수로 돌변한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 선수 몇몇이 대회 기간 중 카지노를 드나든 게 발각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총재 주재 아래 현지에서 긴급 이사회까지 열고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을 중징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징계는 없었다. 결과(동메달)가 좋았기 때문. 사건 당사자였던 한 선수는 그 뒤로 기자들을 믿지 않는단다. “같이 놀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비난 기사를 쓸 수 있느냐”는 항변이었다.
그 선수의 반응을 전해 들은 한 기자 왈, “그렇긴 해”.
퍼라 부어라 마셔라, OB 베어스
프로 원년인 1982년 한국시리즈 도중 OB 타격 코치 이광환은 언제나 사표를 유니폼 주머니 안에 넣고 다녔다. 첫 세 경기에서 1무 2패로 몰린 뒤 그는 타자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술자리를 가졌다. 곱게 마셨으면 좋았을걸, 대구 지역 주먹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 신세를 질 뻔했다. 당연히 구단 윗선까지 알려졌다. 그는 그래도 ‘선수들을 질책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사건 주역들과 술자리를 계속 했다. 알다가도 모를 게 야구. 술자리 멤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시리즈에서 펄펄 날았다. 당시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 현 SK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 도중 “OB가 주류회사라 그런지 그때 술은 지독히도 마셔댔다”고 회상했다.
롯데의 노장진이 트레이드된 진짜 사연
2004년 삼성은 에이스 대접을 받던 노장진을 롯데로 트레이드한다. 이유는 음주 및 숙소 무단 이탈. 다른 이유는 노장진의 넘겨짚기.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 6시에 숙소로 돌아오다 김응룡 감독과 마주쳤다.
김 감독은 부지런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노장진은 감독에게 ‘걸렸다’고 생각해 짐을 꾸려 줄행랑을 놓았다. 음주에 숙소 무단 이탈이면 트레이드 사유로 충분하다. 정작 김 감독이 ‘적발’한 선수는 그가 아닌 재일동포 출신 모 선수라는 소문도 있다.
목욕탕에서 넘어진 이순철을 비롯한 야구 선수들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은 LG 감독 시절 기자들에게 아들과 놀아주다 부상을 당했다는 선수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다. 그는 “별의별 부상이 다 많다”며 엘리베이터 문에 끼었다는 선수, 목욕탕에서 넘어졌다는 선수 등 여러 사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난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십중팔구는 술 마시다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난들 현역 때 그런 핑계 안 댄 줄 아나”였다. 확실히 1980년대 선수들이 1990년대 이후 선수들보다 술을 많이 먹긴 했다.
술김에 친 배트가 대박을 낸 오시타 히로시
‘푸른 배트’ 오시타 히로시는 전후 일본 프로야구에서 ‘빨간 배트’ 가와카미 데스하루(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와 자웅을 겨룬 대타자. 도쿄 세네터스 시절인 1949년 오시타 히로시는 7타수 7안타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한 경기 최다 안타 기록이다. 이 대기록은 ‘술김’에 나왔다. 전날 밤 장대비가 내리자 오시타는 경기가 없겠거니 하고 새벽까지 술을 들이부었다. 웬걸, 다음날 경기는 제 시간에 열렸다. 오시타는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7타수 7안타를 때려냈다. 오시타는 뒷날 감독이 돼서도 “숙소 귀가 시간은 따로 없다”며 호기를 부렸다.
주당 배틀 선동열과 정삼흠
1987년 9월 7일 광주구장에서 해태 선동열과 MBC 정삼흠은 연장 10회까지 무실점을 기록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두 선수의 공에선 알코올 냄새가 묻어났다. 고려대 동기인 두 선수는 전날 술집을 4차까지 옮겨 다니며 ‘사전 음주 대결’을 벌였다. 뒷날 정삼흠은 “술로 선동열을 ‘보내버리면’ 구단에서도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선동열은 선수 시절 말술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주량을 줄였다. KBO 홍보위원 시절 박용오 전 총재의 주량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게 그가 밝힌 절주 이유다.
제 살 깎기 경쟁에 돌입한 양키스의 짐 부튼
1960년대 메이저리그 투수 짐 부튼은 뉴욕 양키스에서 쫓겨난 뒤 쓴 자서전에서 ‘양키스 선수들은 주정뱅이에 호텔에선 여성 투숙객들 방을 엿보는 치한들’이라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모범적인 선수로 통하던 대스타 미키 맨틀도 부튼의 폭로 명단에 올라 있었다. 파문이 커지자 그를 만난 보위 큔 커미셔너는 “책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기자회견하라”고 윽박질렀다. 자, 프로답지 않은 쪽이 양키스인가, 부튼인가, 커미셔너인가. 어쨌든 부튼의 책이 출간된 이후 미국 야구기자들은 선수들의 사생활을 전처럼 보호해주지 않았다.
바다이야기로 숙소를 옮긴 롯데
롯데는 지난해 일부 선수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에 탐닉한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LG로 트레이드된 외야수 손인호는 당시 “팀 성적이 나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라 볼멘소리로 말했다. 절반쯤은 사실이다. 국제 대회에서의 음주, 도박 스캔들은 대개 결과가 나쁠 때 터진다. 성적이 좋으면 다 묻힌다. 지난해 WBC 1라운드를 취재했던 기자에 따르면 대회 기간 중 일부 선수들이 현지 술집을 찾았다고 한다. 문제? 물론 전혀 없었다.
Words 최민규(<스포츠 2.0> 야구 전문기자)
Basketball
농구의 신, 알코올의 신 허재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농구 선수 허재. 동시에 최고의 ‘술꾼’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허재의 음주 파문은 네 번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대 수비 매치업에게 가했던 비공식 술 냄새 공격 기술은 수백 번도 넘었다. 선수 시절 1천 마리 넘게 잡아먹었다는 뱀은 어쩌면 경기력 향상보다는 주력 증가에 더 큰 효과를 발휘했을지도. 현재 모 스포츠 채널에서 NBA 해설을 맡고 있는 허재의 한 지인은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술만 안 좋아했어도 NBA에서 1분은 뛰었을 것이다.”
올림픽 본선 7전 전패의 슬픔을 술로 달랜 농구 대표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1990년대 중반 농구 열풍에 힘입어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7전 전패에 전 경기를 두 자리 수 점수 차로 패했다. 그런데 대표팀 선수들은 숙소를 이탈, 음주 파티를 벌여 농구팬들의 분노 게이지를 63빌딩 높이로 올렸다. ‘음주계의 전설’ 허재는 대표팀 영구 제명 조치를 받았고 이상민, 현주엽 등 많은 선수들이 근신 조치를 받았다. 대표팀은 90년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음주 각본을 만들고 쓸쓸히 귀국했다.
렉서스 핸들을 잡은 드렁큰 캥거루, 조성원
조성원은 현역 시절, 깨끗한 사생활과 뛰어난 자기 관리 능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특이한 슈팅 폼 덕에 ‘캥거루 슈터’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세 개의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은퇴 후 단 한 번의 음주 운전으로 후한 이미지가 단 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2006년 5월, 혈중 알코올 농도 0.164%의 만취 상태로 렉서스 차량을 몰다 경찰에 적발됐다. 졸지에 ‘드렁큰 캥거루 슈터’가 된 조성원은 강력한 어조로 선수 시절에도 별로 하지 않았던 어필을 했다. “실제 마신 양보다 알코올 수치가 더 높게 측정되었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다시 혈액 채취해주세요.”
음주 운전도 대표급인 국가대표 센터 서장훈
서장훈은 지나치게 오해받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경기 도중에 조금만 판정에 어필을 해도 팬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심판들은 고개를 돌린다. 서장훈은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한다. 하지만 음주 운전에 대해서 서장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듯. 서장훈은 2001년, 2003년에 음주 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소속팀이었던 삼성 썬더스는 2003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207cm 공룡’ 서장훈에게 벌금과 외출, 외박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공룡 가둬놓기’ 징계 덕분인지 서장훈은 더 이상 술과 관련된 이슈를 만들지 않고 있다.
촉망받던 유망주에서 NBA 최악의 술꾼으로, 빈 베이커
빈 베이커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NBA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거듭났다. 하지만 파업이 일어났던 1998-99 시즌 이후 알코올중독에 빠져 허무하게 선수생활을 끝내고 만다. 보스턴 셀틱스 시절, 음주 운전으로 홍역을 치렀고 2002년, 알코올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지키지 않아 방출되고 만 것. 결국 2007년 6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다시 한 번 음주 운전으로 철창 신세를 지며 술로 어떻게 인생이 망가졌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름은 빈 베이커(Vin Baker), 인생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알코올을 이겨내지 못했던 풍운아, 에디 그리핀
에디 그리핀은 지나친 술 사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03-04 시즌, 알코올중독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4년 2월에는 만취 상태로 여자친구를 때리고 총으로 위협해 철창 신세를 졌다. 2006년에는 차 안에서 DVD로 포르노물을 보다가 접촉사고를 내 대대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 8월,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다 마주 오던 열차와 충돌,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알코올로 인해 농구 인생을 망치고 삶까지 마감한 치열한 알코올 잔혹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Rest In Peace.’
Words 조현일(월간 농구 전문지 <루키> 편집장)
Soccer
무식한 건지 어린 건지, 웨인 루니
3년 전, 당시 에버튼 소속이었던 루니는 소속팀에 이적을 요구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적 제안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이적을 만류하는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에게 상소리를 해대며 이적을 고집했다. 루니가 리버풀(에버튼의 연고지)을 떠나고 싶어한 데에는 그 무렵 타블로이드 신문의 기사도 한몫 단단히 했다. 리버풀 외곽 사창가의 40대 후반 윤락녀는 그가 친구들과 수시로 사창가를 드나든 사실을 폭로했고, 루니의 선호 체위까지 낱낱이 공개했던 것. 몹시 괴로워하던 루니는 긴급 송고된 보도자료를 통해 ‘2년 만에 처음 간 것’인데 너무 억울하다는 심경을 밝혔지만 당시 루니는 영국 나이로 고작 18세. 이런 뒷 배경에 감독에 대한 무례한 언행까지 겹쳐 루니는 ‘프로 의식이 부족한 어린애’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욕쟁이 미드필더 전재호 납쇼
지난 9월 23일 K리그 경기 도중 레드카드를 받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전재호. 성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담던 MBC ESPN 카메라를 손으로 밀친 뒤 카메라맨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이 장면은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됐고 그는 이후 벌금 5백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카메라의 눈은 곧 시청자의 눈’이라는 방송국 측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프로 선수로서의 상식과 교양이 무척 아쉽다.
천하의 거짓말쟁이, 스티븐 아일랜드
지난 9월, 조국 아일랜드 대표팀 소속으로 유로2008 예선 슬로바키아 원정에 나섰던 스티븐 아일랜드는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음 체코 원정 경기를 빠진다. 그러나 탐정 기질을 발휘한 기자들이 그의 외조모가 살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 곧바로 아일랜드는 ‘외조모가 아닌 친조모’라며 말을 바꿨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당시 그의 친조모 부고가 몇몇 신문에 실렸는데, ‘멀쩡히 살아 계신’ 그의 친조모가 신문사를 고소하려 한 것. 결국 거짓말이 들통난 아일랜드는 “여자친구가 아이를 유산하자 나를 귀국시키려는 마음에 협회로 거짓 전화를 걸었던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현재 그는 소속팀 맨체스터시티에서 활발한 공격력을 자랑하며 선전 중이나 망신의 후유증은 여전하다.
에릭 칸토나의 ‘거침없이 하이킥’
1995년 1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로 활약 중이던 그는 크리스털 팰리스 원정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중 야유를 보내던 관중에게 ‘분노의 날아차기’를 시도했다. 이른바 ‘쿵푸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이 해프닝으로 칸토나는 법원으로부터 7일간 구류형을 받았고 이후 8개월 동안 프리미어리그 경기 출전 정지를 당했다.
감독도 세상도 싫은 로이 킨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더랜드의 감독을 맡고 있는 로이 킨은 현역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일랜드 대표팀의 허리를 책임진 슈퍼스타 출신. 하지만 지난 2002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프로답지 못한 처신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아일랜드 대표팀 전지훈련에 참가 중이던 그는 대표팀 감독 믹 매카시와 의견 충돌을 일으켜 대표팀을 무단 이탈했다. 감독을 공개 비난하며 귀국한 그를 감싸는 팬들도 많았지만 ‘팀의 주축 멤버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는 비난이 대세. 킨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아일랜드는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 대회를 빛냈다.
Words 서형욱(MBC 축구 해설위원, 월간 <포포투>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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