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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원의 도정(道程)

원은 40년 동안 고군분투했다. 빛나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에겐 도시와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 늘 먼저였다. 껍데기에 집착하지 않고 인문학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깨어 있는 사회인. <br><br>[2007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2, 2007

Editor 이민정 hair 김원숙 make-up 박혜령

김원에게 올해의 업적을 말해달라는 건 우문일지 모른다. 설계를 시작해서 공사가 끝날 때까지 3년, 길게는 5년이 걸린다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에게 건축물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스타 건축가들의 번쩍번쩍한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달까. 하여 그를 얘기할 때 어떤 스타일의 공공시설을 지었고 그가 설계한 성당이 미학적으로 어떠한지 운운하는 건 나중 일이다. 애초부터 대중이 생각하는 건축과 그의 뇌와 정신 속에 있는 건축은 다른 개념이므로. 이사장, 교수, 회장 등의 거창한 직함보다 <아레나>가 주목한 건 그가 오랜 시간 환경보호를 실천해온 건축가라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 때문이다. 국회 환경포럼의 정책자문위원, 환경문화예술진흥회 및 동강 내셔널트러스트, 강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대표 등 건축가 김원 이름 뒤의 레테르들은 그가 만든 작업이 예술적으로 돋보여서 따라다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개발 논리에 편승해 건축가의 세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이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그는, 전 국토가 시멘트 천국이 될까봐 우려하고 종묘의 경관을 형편없이 만들 게 뻔한 세운상가 재개발에 분노한다. 현재 그가 열중하는 작업은 옥인동 재개발이다. 인왕산 바로 밑에 터를 잡고 20년간 살았던 한옥을 헐어내는 것이 불만이지만 주민 전원의 동의로 설계까지 맡았다. 친환경적인 건축을 확립하려는 그가 완성할 ‘차원이 다른 집합주택’이 한없이 궁금할 따름이다.

건축가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받은 것 같다. A-어워드가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상이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겠지. 이렇게 멋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도 처음이고 남성 패션지에서 나를 알아주는 것도 처음이고…. 고백건대 패션 잡지는 소모품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달 <아레나>의 ‘숲을 살리자’는 기획 기사와 실천 내용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이런 잡지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옛날 얘길 해달라. 왜 건축가가 되기로 작정했나. 그리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독립했다.
1976년 처음 시작했으니까 서른셋에 독립했나 보다. 스물두 살에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6년 동안 일하고 서른셋이면, 그러게, 좀 이르긴 하다. 연구소에서 잡지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작업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들을 실체로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같다.

첫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은?
대개 건축가의 첫 작품은 아는 사람 집 고쳐주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는 분이나 친척들의 주택을 고치거나 증축하거나. 그러다가 운 좋게도 1978년 코엑스 현상 공모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크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합작이었지만 어쨌든 당선되고 나니 이름이 알려지고 돈도 생기더라.

2007년 한 해 건축가로서 혹은 개인적으로 당신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은 옥인동 재개발 사업이다. 아파트 3백 세대를 짓는 일이니까 할 일이 많다. 저밀도와 저층, 내장과 외부 마감은 목재와 황토로, 지붕은 태양열을 흡수할 수 있게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경기여고 백주년 기념관’을 설계 중이고, 전남 보성군 벌교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 거의 준공 단계에 있다. 아, <건축은 예술인가>라는 책이 곧 세상에 나온다.

얼마 전 건축가 유걸 선생이 건축 저널에 이런 얘기를 해서 놀랐다. 건축에 작가성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닐까.
이번 책의 주제이기도 하고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건축을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소위 서양식 현대건축이 도입되던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전까지는 건축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몇 안 됐다. 사회적인 개념 정립을 위한 방법으로 김중업, 김수근 선생 등이 건축에 예술론을 접목시켰다. 그렇다고 예술가일까. 나는 공과대학에 있는 건축학과를 다녔다. 그렇다면 기술자일까. 그도 아니면 뭐냐고? 건축은 고도의 인문학적인 성취다. 예술도 아닌, 기술도 아닌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성과란 말이다. 사회·경제·문학·역사 그 모든 걸 포용하고 거기에 약간의 양념으로 예술적인 부분을 접목시킨다.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엔지니어,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다양한 코디네이터가 모여야 한다. 건축가는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컨택터다.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에너지 절약은 얼마나 되는지, 인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망라해야 하고 중요한 게 뭔지를 선택해서 완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글쎄, 거기에 예술은 극히 일부분 아닐까. 건축이 어쩔 수 없이 바깥에서 보이기 때문에 조형적인 감각이 필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다. 당장이 아니라 10년 20년 사용해야 그제야 훌륭한 건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거다. 우리가 건축물을 보고 조형적으로 잘생겼다고 말하는 건 건축물을 회화나 조각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마리오 보타 같은 스타 건축가가 국내 기업을 바꿔놓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노리는 건 상업적인 효과겠지. 시선을 많이 끄는 게 목적일 테니 유명한 이름을 사는 거다. 안타깝게도 스타 건축가들 역시 서울에 진짜 좋은 건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보다 ‘너희들, 지금 내 이름이 필요한 거지’ 하는 경우가 많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선하는 목표라는 게 문제다. 그런 건축가를 다루려면 돈을 준 만큼 부려먹거나 좋은 걸 남기도록 계속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 건축가의 작업이 성공적이지 못하고 우린 계속 봉 노릇만 하는 거다. 잘못된 걸 찾아내서 지적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그런 친구들이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세운상가 철거’에 대해 건축가 이건섭 선생이 옥고를 써주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건축가 김수근, 김현옥 서울시장 얘기를 읽고 건축이 역사와 함께했던 시절을 상상했다. 요즘의 젊은 건축가에게서 역사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건축의 가치라는 것은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종종 건축하는 사람이 패션을 경박하다고 말하더라. 봄의 트렌드가 다르고 가을의 트렌드가 다르다면서. 하지만 건축의 유행이란 어느 면에선 더 경박하다. 건축 평론에서 가장 권위적인 언론이 <뉴욕 타임스>다. 신문기자들이 말하는 대로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가 되지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기사가 되지 않는다. 건물이 탄탄하고 살기 좋으면 보도가 안 되고, 쓰러질 듯 보이는데 안 쓰러져야 신문에 실리는 거다. 그러니까 저널리즘의 센세이션을 타지 않으면 스타 건축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예전에 삼성동 ‘아이파크 타워’를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서울에 왔다. 사실 그 건물은 이미 골조가 되어 있었고 그가 한 거라곤 앞부분 1~2미터만 작업한 거다. 그럼에도 자본의 논리로 세계적인 건축가라고 홍보하니까 기자와 젊은 학도들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려오더라. 당시 그 건축가가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당선자라는 기사도 났었다. 몇몇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취소된 지 꽤 지났는데도 확인 절차도 밟지 않은 언론은 홍보 자료만 보고 그렇게 쓴 거다. 어찌됐든 스타 건축가들의 짓을 보면 패션보다 더 경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패션은 철학이라도 있지.

건축 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면 무언가.
보편성이다. 건물이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요구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건축가, 공부를 많이 한 건축가는 더 많이 찾아내고 공부를 덜한 건축가는 못 보는 거다. 될 수 있으면 보편적인 모범답안을 찾아내야 한다.

후배 건축가나 건축학도들에게 건축가가 꼭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알려달라.
의식이 중요하다. 건축가가 스스로 예술가라고 하면서 에고에 빠지면 안 된다. 미화시키거나 자화자찬을 해도 안 된다. 위험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목청 높여서 얘기할 수 있고, 환경을 파괴한다면 앞장서서 데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생들도 이런 나를 두고 불만이 많다. 멋진 것 지어서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은 안다. 하지만 깨어 있는 게 먼저다. 어떻게 해야 건물이 더 돋보이고 예뻐 보이는지 난 그런 건 못 가르친다. 혼자 잘난 척하면 안 된다. 건축가는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제일 높은 직업이다. 우리 집사람은 나 때문에 평생 속을 태웠는지 자녀들에게 절대 건축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 건축가는 멋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이 촬영도 걱정이다. 멋지게 보일까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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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민정
Hair 김원숙
Make-up 박혜령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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