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구정란 hair 대원(알트 앤 노이) make-up 박혜령
2007년은 당신이 지금까지 패션 사진가로 활동한 이래 가장 의미 있는 한 해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 패션 사진가로서 오랫동안 일을 했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사람들은 때때로 내게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이지만 솔직히 나는 사진작가로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진가와 사진작가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보통 혼자 일하지 않는다. 물론 사진가의 분야도 여러 가지겠지만, 나 같은 상업적인 패션 사진가는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많은 스태프와 함께 작업을 한다.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주문 생산 방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사진가의 생각에 결과물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것이 상업적인 패션 사진가다. 하지만 사진작가는 다르다. 그들의 사진은 예술이다. 예술 활동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작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지금까지 상업적인 패션 사진가로서 일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진작가로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여자를 밝히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와 곧 오픈하게 될 대림미술관의 <몸> 전시는 내게 사진작가란 타이틀로 작업을 하게 만든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패션 사진가에서 사진작가로 연륜을 잇는 변신이랄까, 오는 2008년 1월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열릴 <몸> 전은 당신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어떤가?
긴장된다. 처음으로 작가로서 단독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요즘 잠을 못 잘 정도다. 좋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이슈인 ‘그린 프로젝트’ 운동의 하나로 <아레나>와 함께하는 의미도 있어서 맘이 더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완성도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나는 상업적인 환경 속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진만으로 구성된 전시회를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보니 조각, 오브제, 동영상 등 다양한 것들로 영감을 표현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간이나 제작 과정 때문에 결과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힘들다. 그간 단순히 사진만 찍고 살아왔다면 아마 이런 기획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살바토레 페라가모 본사에서 전시하고 있는 피렌체 사진을 보면 풍경 사진 또한 패션 사진 못지않게 고급스럽다. 기존에 틈틈이 여행을 가서 스케치한 사진과는 다른 것 같다. 사진의 느낌이 달라진 건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기존에 촬영한 풍경 사진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두었으나 이번 사진은 정보가 아닌 작가의 ‘감정’이 투영되어서 더욱 깊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피렌체에서 촬영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사진들은 모두 새벽에 촬영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 아름다운 건물들을 바라보며 촬영한 것이기에 감정의 깊이가 증폭되었다. 마치 내가 이 도시에 정말 있는 것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제목도 ‘In the Daze’ 아닌가. 아름다운 새벽의 피렌체는 꿈을 꾸듯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컴퍼니인 ‘도프 앤 컴퍼니’와 카페 AOC까지 운영하고 있다. 사진가로서는 매우 드문 행보다. 힘들지 않나?
크게 힘들지는 않다. 모두 서로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멀티 플레이어를 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진가로만 살고 싶지도 않고. 내겐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키고 소통시켜 새로운 창작물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광고 기획, 브랜드 마케팅, 패션 사진 촬영,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힘들다기보다 즐겁다. 상업적인 환경 자체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마케팅을 분석하고 AOC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소식을 교류하는 것은 내게 영감을 줄 정도로 큰 힘이 된다.
올해 15년째인 ‘도프 앤 컴퍼니’를 운영하면서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그동안 수많은 패션 광고와 굵직한 유명 브랜드의 이벤트 등을 선보였다. 개인적으론 엘칸토의 ‘무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외에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해준다면?
90년대 초 구두 브랜드였던 무크의 광고 시리즈 중 ‘맘보’ 편은 당시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아비정전>이라는 영화에서 장국영이 보여준 맘보춤을 무크 CF에 재현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해 대한민국 광고상까지 받았을 정도니. <아비정전>이라는 영화는 이 CF가 방송된 이후 국내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 그 외에 진 브랜드 베이직 광고, 80년대의 엘칸토 광고 시리즈 등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은 청담동 주택가에 아무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카페 ‘카페 드 플로라’를 선뜻 만들어 오늘날 청담동 카페 문화를 이룬 선두 주자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신문화의 선구자로서 당신의 행적을 들려달라.
1998년인가. 카페 드 플로라에서 신진 사진 작가들의 사진전을 처음으로 개최한 것과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헤어, 패션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 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연말에 상을 수여하는 패션사진가협회 시상식을 만든 것, 2003년 빅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하는 패션 사진전을 시도한 것, 프랭크 뮬러의 론칭 파티를 통해 국내에 고급 파티 문화를 선보인 것,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자선단체와 전시를 시도한 것 등 다양하다. 운이 좋아서인지 기획이 완벽해서인지 모두 성공적이었다. 욕심이 많아서 금전적 지출이 많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주로 기획했는데 일련의 건들이 성공하면서 후배 기획자나 국내 브랜드의 마케팅 기획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보람이다.
사진, 청담동 카페 문화의 선구자라는 타이틀 이외에 당신은 ‘스타일리시함과 프로페셔널함’이 공존하는 남성상으로 인식되어 있다. 내외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엘리트가 롤모델인 <아레나>는 당신의 그런 면을 높이 산다.
내 스타일은 1930년대 스타일이다. 그 당시의 모던보이 스타일을 동경한다. 단순히 스타일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그 암울했던 시기에도 낭만을 추구했던 모던보이의 로맨틱한 사고 역시 동경한다. 그들은 멋을 알고 사랑을 아는 진정한 낭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를 추구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완벽히 그와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단지 외모만이라도 당시 스타일을 쫓아 그 낭만을 놓치지 않고 싶을 뿐이다.
당신의 사진전은 항상 특별한 기획과 연출로 후배 사진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03년 메르세데스 벤츠의 후원으로 열렸던 <한국 문화예술 명인전>의 기획은 좋은 선례가 되었다. 패션 사진과 접목시켜 브랜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장외 홍보 전략으로서는 최초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 광고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전시와 행사는 획기적인 기획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기획은 시대적인 흐름을 감안했기에 유행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도 패션 트렌드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항상 숙제다.
마지막으로 김용호 개인의 2008년 계획이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작가로서 좀 더 폭넓은 전시를 하고 싶다. 그래서 긴 여행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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