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첨예한 가치들이 구석구석 스며든 남성복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가능한 한 룰을 따르는 것이다.
어떠한 장소와 상황과 시간에 타당한 옷에는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일련의 규칙들이 주는 강박이 누군가에 의해 때론 해소되기도 한다. 간편함의 가치가 존중받는 요즘 이야기다. ‘일탈된 시크함’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서 트랙수트를 입거나, 컬렉션의 맨 앞줄에서 기괴한 운동화를 신어도 이해될 만한 상황이 번쩍 눈에 띈다.
이러한 경향을 탄탄하게 거드는 건, 과시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 호방한 태도다. 간편함의 합리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며 정형화된 드레스 코드에서 엇나가는 식이다.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그 흔적을 찾자면 마이클 바스티안만큼 능청스러운 것이 또 없다. 테일러드 재킷에 허벅지 절반이 드러나는 쇼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거나, 운동복을 이브닝 룩으로 승화하는 뻔뻔함인데, 그 묘한 조화는 하이 패션의 느끼함이 없을뿐더러, 일상적이면서 기능적으로도 세련돼 보인다. 더블브레스트 수트에 새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미나, 스웨트 팬츠에 가죽 슬리퍼를 조합한 올리도 같은맥락이다. 현실적인 예로는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이다. 회색 티셔츠와 후디, 데님 팬츠의 범주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지만 명민하고 젊은 CEO의 역할을 해내고 있으니까. 실리콘밸리의 그렇고 그런 사내의 옷차림이 패셔너블하게 비치는 건, 회의실 차림의 규칙 따윈 심드렁하게 넘겨버리는 거리낌 없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드레스‘업’이 아닌 드레스‘다운’의 맥락을 교묘히 패셔너블하게 활용했다. 이번 시즌 루이 비통의 남성 컬렉션에서 그는 실크 파자마 세트에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를 신고 프런트 로에 앉았다. 검은색 재킷과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집단 속에서 잘 차려입지 않는 옷의 가치가 기습적으로 작용했다. 이날 이후로 파자마가 남성복의 새로운 유행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꽤 들려왔으니까.
아티스트 줄리안 슈나벨 역시 파자마 패션으로 유명하다. 침실에서 헐레벌떡 뛰쳐나온 듯 파자마 세트에 반스 슬립온을 신고 더블브레스트 재킷 혹은 턱시도 재킷을 걸치는 그의 옷차림은 기묘하게 드레시하다. 그는 파자마가 턱시도 수트보다 드레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시나 준 지의 가공할 만한 스웨트 셔츠 혹은 서울 최고의 한량으로 보일 만큼 위대한 수트만이 패션의 상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직위가 높을수록 ‘언패션’한 러닝화를 수두룩 가지게 된다거나, 디자이너 부티크에서 간편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껏 차려입은 이들보다 럭셔리한 소비에 더 자유롭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디자이너가 제시한 포맷은 패션의 일부일 뿐이며, 유행의 한 톨도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은 지루함만 남긴다. 세련된 통찰과 패션을 맘껏 가지고 놀 기개가 있다면 ‘비싼 패션’은 단지 재료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이 정도 거리낌 없는 태도를 가지려면 어떤 경지를 넘어서야 하는 건 맞다. 일탈된 세련됨에서 일탈이란 실수를 마구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계획적인 어긋남과 잘못된 해석은 결코 같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패션이 아니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수트에 레페토의 재즈를 신지 않았더라면, 레페토는 영영 댄스 슈즈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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