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민정
포르투갈 디자이너 티에고 다 폰세카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머리맡에서 이야기책을 읽어주어야 편히 잠들 수 있었고 어머니가 안 계시면 이불 밑에서 플래시를 켜고 혼자 책을 읽다가 겨우 잠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호텔 투숙객을 위해 이불 위에 그림 형제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옮겨 적었다. 이불이 곧 동화책이자 불면증 치료제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데브라 클라크는-이럴 경우가 생기겠느냐마는-주인과 손님이 함께 잘 수 있는 침대를 만들었다. 2층 침대도 아니고 퀸 사이즈 침대는 더더욱 아니다. 분리가 가능한 쿠션인 ‘Sharing Pillow’는 잠자리가 어떻든 그 자리에 놓기만 하면 주인과 손님 사이에 부드러운 막이 생긴다. 각각 세 개의 쿠션 받침과 인도 면포로 된 파란색 쿠션 커버로 구성되어 있는데 쿠션에 찍찍이 고리가 있어 붙였다 떼었다 할 수도 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인 바스 쿨스는 싱글 룸 안에 색다른 1인용 의자를 만들어놓았다. 수축되면 열리고 또다시 부풀어 오르면 닫히기 때문에 앉아 있는 동안은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묶여 있게 된다. 답답하지 않냐고? 생각해보라. 두 팔로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나 위협을 주기 위해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은 의미가 다르지만 결국 같은 행위일 수 있지 않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어떤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빨리 빠져 나오고픈 묘한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특급 호텔 룸에 놓인 버튼 많은 리모컨이 부담스러운 이를 위해 유하연은 종이 색종이로 리모컨을 제작했다. 채널 선택과 볼륨 조절 등 꼭 필요한 기능밖에 없으니, 아무거나 누르다가 TV가 잘못 세팅되는 일이 없고, 어렸을 때 짝꿍하고 즐겨하던 종이 접기 놀이에서 착안한 리모컨이라 아이들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다. 빌 게이머의 ‘열쇠 탁자’는 ‘열쇠를 올려놓는 탁자’라는 기능 외에, 물건을 내려놓는 강도에 따라 사람들의 감정까지 용케 알려준다. 그뿐이 아니다. 침대 위에 누우면 그 순간 침대는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로 변하기도 하고, 책을 덮자마자 전등이 꺼졌다가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켜지는 원격 조정 장치 전등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의 호텔들과 호텔에 비치된 신통한 가구들은 아직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린 <디자인메이드 2007, 호텔異多>는 스위스,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터키, 캐나다 등의 해외 디자이너들과 국내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호텔 전시였다. 호텔을 좋아하지 않는 <아레나> 독자들은 없을 테니 지면에서나마 싱글 룸 (외로우세요?), 더블 룸(행복한가요?), 비즈니스 룸(바쁘신가요?), 스위트룸(꿈이 있나요?)을 방문해보기를. 사실 호텔 사장님들이 이 전시를 봐야 하는데. 그래야 서울에 있는 호텔이 점점 편안히 쉬고 싶어지는 공간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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