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김보하 Editor 이민정
HAIR 김원숙 MAKE-UP 전미연(IRIUM) STYLIST 김효성 Assistant 정지숙, 이효정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동안 어디서 뭐 했냐” 아닌가.
… 맞다.
그런데 정말 어디서 뭐 했나. 배우에게 2년은 긴 시간인데.
별거 안 했는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가더라. 만나는 사람마다 뭐 하고 살았느냐고 자꾸 물어보니까 모범 답안을 하나 만들고 싶을 정도다. 이것저것 배웠다. 아마 깜짝 놀랄걸. 꽃꽂이도 배우고 바느질도 배우고 뜨개질도 배우고… 내가 뭐든 꼼지락거리면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재봉틀 사서 처음에는 파우치 만들어서 화장품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지금은 바네사 브루노 스타일의 빅 백까지 만드는 수준이 됐다. 친구들한테 선물도 하고 아, 이번 드라마 속에서도 들고 다닌다.
그 드라마 재밌겠더라. 제목은 맘에 들지 않지만. <인순이는 예뻤다>라니.
<풀하우스>의 표민수 감독님 작품이다. 우리 기획사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준비한다는 얘기를 흘려들었는데 솔직히 일 자체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놉시스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어, 뭐야? 왜 내 얘기가 여기 써 있는 거지?’ 누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순이라는 아이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것도 못한다. 고등학교 때 우발적인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복역한 전과자라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지만 그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인순이는 오히려 행복하다. 본인은 행복한지 모르는데 알고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 그 애를 만나고 나면 웃음이 난다. 캐릭터를 통해 나도 힘을 얻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
처한 상황이 비슷했다고? 스스로 싫었다고?
음… 지금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지 않나. 남들은 슬럼프라 말하지만 난 그렇게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저 심리 상태가 안 좋았다. 사람들 만나기 싫고, 귀찮고, 두렵기까지 했다. 나를 가두고 싶었다. 정말 힘들었던 사실은 내가 과연 필요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거. 그런데 인순이도 그러더라.
그렇다면 드라마 덕에 마음이나 상황이나 바뀐 점이 있겠다.
초반에는 하기 싫어서 감독님 만나도 별 대꾸를 안 했다. 하지만 며칠 뒤, 홈페이지에 촬영이 들어가기도 전이었는데 정유경 작가와 표민수 감독님에게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이 드라마를 하면 나도 다시 자신감을 찾게 되고, 예뻐지고, 발전해나가리라 믿는다. 일단은 일하는 즐거움을 찾게 되어 기쁘다.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은-잡지 기자도- 힘들면서도 동시에 묘한 희열 같은 거, 뭔가 몸속에서 끓고 있는 거 있지 않나. 우리가 뭉뚱그려 ‘보람’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오랜만에 카메라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열흘가량은 고생 좀 했다. 그러다가 역시 자신 있는 캐릭터라는 걸 알았다. 나는 꿋꿋하고 밝으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이미지 아닌가. 내가 했던 작품들은 우울하지 않았다. 이거 내가 잘하는 거잖아, 내가 지금 여기에 있잖아, 자연스러운 마음이 생기더라. 많이 건강해진 느낌이다.
바빠지니까 가장 좋은 건 뭔가.
무언가 하고 있는 것 자체. 움직이고 있는 사실을 몸속 세포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쉴 때 배운 취미 생활도 그만두지는 않았다. 현장에 미리 오려둔 천조각을 가져가서 바느질한다. 요즘은 덧신 만든다. 혈액 순환이 잘 안 되서 발이 늘 차갑다.
김현주는 뭐가 예쁜가.
앗, 얼마 전 혼자서 나의 장점이 뭔가 적어봤는데…. 난 잘 울고 잘 웃고 화도 잘 내고 또 잘 풀린다. 감정에 솔직하다. 그리고 배려심이 많다. 남들은 그건 배려가 아니라 소심한 거라지만 내가 이렇게 ‘작은 마음’인 건 상대의 입장을 모조리 생각해서다. B형(혈액형)의 A형화? 그러다 성질 한 번 내고는 ‘아, 나 B형이었지’ 한다. 근데 이거 예쁜 점 맞나? 인순이는 예쁜데 본인은 잘 모르는 게 매력이다.
어린 나이에 교도소까지 갔다 왔는데 명랑하다.
폼 잡고 걸어가다 넘어지기도 하고 모든 상황은 그녀 뜻대로 되지 않는데 그런데도 장난끼가 넘친다. 귀엽고 예쁘다.
예쁘기도 하지만 섹시한 콘셉트도 잘 소화해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성숙해졌으니까. 뭐 아직 철딱서니 없는 점도 있지만. 나한테 섹시는 귀여움이라는 요소가 빠지면 안 된다. 난 섹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섹시한 게 별거 아니라 자신감의 또 다른 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앞으론 더욱 섹시해지기로 했다.
얘기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처럼 말을 또박또박 잘한다.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편인가, 하는 편인가. 후자에 가깝더라.
내 입장만 계속 주절대는 날 발견했다. 그러니 내가 상대를 모르지. 맘 고쳐먹고 내 얘기를 들어준 이들에게 일부러라도 계속 묻는다. 힘든 거 없어? 요즘 어때?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을 못 넘긴다. 나머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내 맘을 드러내놓는 사람에게라도 더 잘하기로 했다.
데뷔한 지 벌써 10년 됐다. 연기자 김현주를 지탱하는 작품은 뭐였나.
<유리구두>에서는 진짜 배우가 뭔지에 대해 생각했고, <토지>의 서희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작품은 아마 내 인생의 힘이 되고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나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게 없다. 시대 흐름이 뭔지, 트렌드가 뭔가 따져봐야 하는데 늘 놓친다. 사실 이 작품도 트렌디하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뒤처졌다고 여겨지는 점들이 있다. 그냥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에 더 충실하는 것 같다.
나이 먹는 거 좋은가. 여배우들은 종종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말하더라.
나는 30대 중반이 되면 모든 것, 내가 계획하고 다짐한 일들이 다 이루어질 거라 믿어왔고 또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어서 빨리 나이 좀 먹고 싶었다. 지금은 너무 싫다. 조금만 촬영이 늦게 끝나면 몸과 마음이 지치는걸. 서른이 오기 전에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했다. 쯧쯧.
인생의 롤모델 같은 거 있나. 나는 저렇게 될 거야.
오드리 헵번(머리 자르고 헵번 닮았다는 얘기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외모가 아니다. 여자로서 아픔이 있던 삶이었지만 배우로는 당대 최고였으니까. 하지만 난 그녀의 화양연화는 배우의 삶이 아니라 어린이와의 삶이었다고 믿는다. 며칠 전 나이 든 그녀가 소말리아 아이들을 안고 있는 사진을 봤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은 처음 봤다.
어릴 때 꿈은 뭐였는데.
시시때때로 난 생각에 잠긴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지? 뭐지? 하지만 이제 알았다.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꿈꾸던 모습은 지금의 나였다는걸.
늘 부족하고 더 채워야 하지만 경제적이든 사회적 위치든 지금의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이었다.
욕심 같은 거 정말 없다.
김현주는 착한 여자인가 나쁜 여자인가.
착한 여자다. 나쁜 여자가 될 가망이 없다. 그래서 이제 한번 되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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