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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사랑스런 화장실

말하자면, `대소변을 보는 곳`이라는 화장실의 실제적 의미에서 탈피해 나름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거다. 이 극도로 프라이빗한 공간은 거실도, 서재도 될 수 있다. 당신의 사고와 인테리어를 조금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히.<br><br>[2006년 7월호]

UpdatedOn June 24, 2006

Photography 정재환 stylist 김지현 Editor 박인영

1917년,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남성용 변기가 떡하니 갤러리에 전시됐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은 쓰던 변기에 어떤 손질도 하지 않고 ‘샘’이라는 제목까지 붙여 전시했다. 발견된 오브제. 예술은 예술가의 테크닉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그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변기는 소변을 보는 곳이지만 갤러리에 전시됨으로써 예술품이 되었다.
태초의 화장실은 초원이었다. 문명이 생기기 전, 인류의 조상에게 자연은 거대한 변기였다. 벽장 속의 변기와 요강을 거쳐 문 달린 화장실이 만들어졌다. 화장실이 청결하고 세련될수록 배설이라는 동물적 행위와 문명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가 말하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두 가지 뜻을 가지는 것은 남자들에게 확실히 불리한 일이다. 첫 데이트에서 그녀가 당당히 “저 화장실 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화장실에 간다는 것이 곧 배설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 10분이 넘었다면 그녀가 메이크업을 고치거나 친구와 잠시 수다를 떨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쌍한 당신의 경우는 다르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휴대폰이 울려도 얼른 끊을 수밖에 없다. 5분이 지나 돌아오며 “줄이 기네요”라고 초라하게 사족을 붙여봐도 그녀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동물적 행위와 문명 사이의 깊은 골에서 외롭게 허덕이고 있는 당신을 건져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자의 화장실도 배설과 등호로 연결시키지 않는 것. 책을 두 권 들고 들어가도 쑥스럽지 않고, 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떳떳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디오가 있고 읽을 책이 있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그곳이 화장실이라도 말이다. 내 방보다 더 프라이빗한 공간이 바로 화장실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게 되는 그곳을 홀대했던 당신이라면 화장실을 서재로, 거실로 꾸며보길 추천한다. 물론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실에 있어야 할 오디오와 서재에 있어야 할 편안한 의자를 들여놓는 사고의 전환은 화장실을 더욱 친숙하고 실용적인 공간으로 바꾼다.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스타일을 고집하겠다. 가구는 최대한 들어내고 공간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화장실이 여러 주제를 가지게 될수록 심플한 인테리어가 더욱 안정적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스타일을 추구하되 차가운 느낌보다는 편안한 느낌을 살리고 실용성을 강조한다. 많은 장식을 피하고 깨끗하게 마무리한 그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도록 꾸밀 것.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화장실의 기본적 기능은 화이트를 비롯한 무채색으로 무장시키고 오브제에 맞는 소품은 컬러로 강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얀 욕조에 빨간 장미 꽃잎을 떨어뜨린다면 혼자 즐기기엔 매우 아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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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정재환
stylist 김지현
Editor 박인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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