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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아이돌

1996년 한국에 아이돌 역사가 시작된다. 그 이후 십수 년, 아이돌은 이제 대중음악의 큰 축으로 성장했다. 기획과 자본으로 판을 키워 대중을 매료시킨 까닭이다. 물론, 그 사이 자기 복제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돌 시장은 지금도 진화하는 중이다. 우성 인자를 개발하고 변종을 기꺼이 수용한 결과다.

UpdatedOn October 08, 2013

9월 4일, SM엔터테인먼트는 12인조 아이돌 그룹 EXO의 정규 1집 가 74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앨범 발매 1개월 만의 일이다. 또 8월에는 인피니트의 소속사 울림 엔터테인먼트를 인수, 울림 레이블로 합병했다. 씨스타와 케이윌, 보이프렌드의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도 래퍼인 매드 크라운을 영입하며 스타쉽엑스라는 레이블을 설립했다.
이 밖에 성시경, 박효신, 서인국 등이 소속된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빅스나 엔터테인먼트 경험이 전무한 크롬 엔터테인먼트가 데뷔시킨 크레용팝의 진격을 비롯해 포미닛과 비스트가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와 자회사인 에이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에이핑크가 선전하는 등 현재 아이돌 그룹들은 다채로운 곳에서 만개하고 있다.

한국 아이돌 팝의 시작은 보통 1996년 H.O.T.의 등장으로 본다. 구조적 특징과 산업적 변화 때문이다. 기존의 매니저 중심 회사가 기획사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데뷔하는 과정도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소규모 기획사를 탈피해 법인 기업화되면서 경영과 기획이 비교적 엄격하게 분리되기도 했다. 작곡가 및 퍼포먼스 담당자가 외주 제작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의 모든 자본이 아이돌 그룹의 데뷔와 활동뿐 아니라 포지셔닝과 브랜딩에 총력을 기울인다. 음악적으로도 기본 4명에서 5명의 멤버들을 역할에 따라 나누고 동시적인 퍼포먼스를 특화하며 차별화했다. 8마디를 기본으로 한 멜로딕한 전반부와 반복되는 훅(hook)으로 구성된 후반부가 나뉘고, 그 둘을 잇는 간주에는 랩이 등장한다. 칼같이 맞춘 집단 군무는 이때 등장한다.

이런 요소들은 1996년 이후로 아이돌 팝 산업의 기반이 되었는데 2004년 동방신기의 데뷔로 한 번 극적으로 변화했다.
H.O.T.나 S.E.S.는 서태지와 아이들 혹은 뉴키즈 온 더 블록과 백스트리트 보이스, 엔싱크, 스파이스 걸스나 일본의 소녀대, 안전지대, 스마프, 아무로 나미에, 스피드 같은 아이돌 그룹들의 영향이 강했다. 중요한 건 특정 그룹이나 지역이 아니라 1980~1990년대라는 블록버스터 시대의 팝 산업에서 영향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4년 동방신기와 2006년 빅뱅이 데뷔한 이후 2010년까지 소녀시대, 2NE1, 카라, 포미닛,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이 주도하며 ‘2차 아이돌 부흥기’를 견인한 점은 시사적이다. 이 시기를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 건 스타일의 변화뿐 아니라 산업적 변화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동방신기는 애초에 싱글로 데뷔했다는 점에서 한국 음악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기존 앨범 중심의 가요 시장에서 싱글의 등장은 영미권과 일본을 모델로 삼은 게 분명하며, 동시에 음반 시대에서 음원의 시대로 흐릿하게 뒤바뀌던 순간의 실험적 모델이었다. 여기에 ‘아카펠라 보이 그룹’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은 기존 아이돌 그룹의 한계로 여겨졌던(그래서 다각도로 비판받았던) 공연 라이브를 구현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후 (당시 표현을 쓰자면) ‘라이브형 아이돌 가수’가 등장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는 2006년 빅뱅의 등장과 2009년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단발적인 현상이 아닌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 2009년 이후 걸 그룹 중심으로 재편되는 아이돌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런 맥락에서 아이돌 팝은 기존 ‘가요’와는 다른 고유한 성격이 생긴다. 음악적 특징뿐 아니라 산업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 ‘댄스 음악’을 살펴야 할 이유다. 동시에 이들이 기반으로 삼는 시장도 기존과 차별되었는데, 사전 계획 아래 데뷔 전부터 팬덤을 조직하고 엄격한 멤버십을 적용해 팬클럽을 운영하면서 독특한 시장 구조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런 팬덤 구조는 한국 아이돌 팝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팬덤은 구분될 수 있는, 각각 다른 영역으로 조직되었다.

그리고 2009년 소녀시대의 데뷔 이후 팬덤은 ‘삼촌팬’이 등장하는 등 더 복잡해졌다. 덕분에 아이돌 산업은 ‘분화’라는 말 그대로, 보다 심도 깊고 입체적인 관점을 요하게 된다. 이 맥락에서 2012년은 한국 팝 산업의 분기점으로 여겨질 만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 최고의 유튜브 조회 수와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한 것뿐 아니라 2012년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라이브네이션이나 유니버설, 소니뮤직 같은 글로벌 음악 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해외에 진출한 원년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큐브 엔터테인먼트가 각각 독자적으로 ‘월드 투어’를 진행한 것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의 일이라면 2012년에는 빅뱅과 인피니트, 2NE1 등이 글로벌 자본과 계약하며 ‘월드 투어’를 진행했다. 바야흐로 한국 가수의 세계 순회 공연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다.

이때 관심이 가는 건 다른 성향의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아이돌 그룹의 등장이다. 단적으로 크레용팝은 ‘마이너’ 성향의 아이돌 그룹이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위 ‘병맛’ 아이돌 그룹으로 지칭되는 이 특정 그룹들은 오렌지 캬라멜 이후에 일종의 계보를 형성한다(티아라 역시 이 범주에 속할 수 있겠지만, ‘병맛’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출발점으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그룹들에게 영감을 준 건 사실이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아이돌이 직면한 딜레마에서 기인한다.

그 딜레마란, 댄스 팝이 가장 정치적이던 1990년대 후반, 엔터테인먼트가 오로지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지 않던 시기의 딜레마로 한국 아이돌 산업의 근본적인 모순이기도 하다. 요컨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댄스 팝은 흥행을 위해서든, 비전을 위해서든 사회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았고, 동시에 화려한 퍼포먼스로 엔터테인먼트의 극단을 제시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기획사의 상품’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의 공일오비나 패닉 등 ‘자기 성찰적 팝’이 대중적, 비평적 성과를 모두 얻은 것과 대비되는 이 고난의 길은 퍼포먼스를 포함한 음악적 요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훈련을 통해 단련하는 결과를 낳았다.

데뷔 당시 ‘아카펠라 보이 그룹’이라는 괴상한 정체성을 표명한 동방신기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는데, 2009년 이후에는 소녀시대, 2NE1, 샤이니, 빅뱅 등의 ‘하이엔드’ 혹은 ‘아티스트’ 지향의 아이돌 팝으로 구현되었다. 하지만 모든 그룹이 그랬던 건 아니다. 일종의 공식화한 매뉴얼로 기획한 후발 주자 아이돌 그룹 중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시장이 형성되고 산업은 구체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다.

오렌지 캬라멜의 성공은 이 고착화에 균열을 냈다. 이들은 아이돌 시장이 분화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후 이엑스아이디(EXID)나 에이핑크, 걸스데이, 크레용팝에 이르는 독특한 포지션의 걸 그룹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종의 서브컬처를 토대로 삼는 이 그룹들은 대부분 2012년과 2013년이 교차하는 시기에 ‘병맛’이라는 애칭에 가까운 별명을 얻으며 차별화한 시장을 점유한다. 특히 이런 현상이 남자보다 여자 아이돌 그룹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은 팬덤의 차이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1990년대 이후 팬덤은 아이돌 산업의 핵심적인 기반이 되는데, 주로 기획사가 장기 전략 아래 조직하고 육성한다.

이때 남자 아이돌 그룹은 10대 초반의 여학생들을 유효한 팬덤으로 삼아 그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 아이돌 그룹을 성장시킨다. 이 롱테일 전략 아래 아이돌 그룹의 포지션은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된다. 요컨대 남자 아이돌은 팬들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그룹이라는 지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걸 그룹은 이런 롱테일 전략을 시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역사적으로도 남성은 여성에 비해 ‘팬질의 기간’이 지속적이지 않고 또 팬덤 활동의 경향도 다르다.

특히 2009년 이후 등장한 ‘삼촌팬’은 대부분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 이상의 집단이지만 음반을 사거나 공연장에 가는 것은 그중 일부에 국한된다. 걸 그룹에게도 팬덤의 지속성은 중요한 문제지만, 이제까지 이것을 여성 팬덤에서 찾았다면(S.E.S.의 경우도 여성 팬이 많았고, 2NE1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의 ‘마이너 걸 그룹들’은 깨알 같은 남성 팬덤을 조직화하려는 욕망을 내비친다.

이때 두 가지가 특징적이다. 하나는 이런 걸 그룹에게 섹슈얼리티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다른 하나는 공연보다 행사 중심의 활동을 늘려나간다는 점이다. 전자는 애프터스쿨이나 레인보우, 나인뮤지스 등의 미미한 성과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170cm 이상의 8등신 여성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은데, 여기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가치관이 작동한다. 남자보다 키가 크거나 육체적으로 우월한 여성 신체에 대한 편견(혹은 공포)이 작동하는 것이다. 대신 아담한 사이즈의 체형에 귀엽거나 엉뚱한 성격은 발랄한 소녀로 포장되어 소비된다. 오렌지 캬라멜과 크레용팝이 단적으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런 걸 그룹들은 공연보다 행사에 집중하는데, 이 행사는 군대 공연과 대학교 축제, 지자체 행사로 이어진다. 특정 집단으로 구체화할 수 없는, 파편화된 남성들을 팬덤으로 조직하기보다는 구매 고객으로 여기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마이너’ 걸 그룹의 음악은 완성도보다는 중독적인 훅과 가사의 위트를 지향하게 된다. 동시에 여기에는 인터넷 서브컬처(어째서 컴퓨터 월간지의 커버 모델이 항상 마이너 걸 그룹 혹은 레이싱걸, 혹은 그냥 여자 모델인지 생각해보라)와 또래 집단의 문화적 감수성도 개입하는데, 보통 남자들이 걸 그룹에 품는 욕망의 정체는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편견과 겹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고, ‘병맛’ 혹은 길티 플레저는 그렇게 탄생한다.

2013년, 이것은 EXO와 f(x)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음악은 다른 그룹들과 비교를 불가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성과를 거둔다. 기획과 제작, 기반으로 삼는 시장과 유통 방식 모두 ‘하이엔드 팝’을 지향하는 이들의 성과가 압도적이면 압도적일수록 상대적으로 마이너 성향의 그룹들은 이들과 경쟁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 산업 분화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씨스타를 정점으로 걸 그룹(혹은 아이돌 그룹)은 쇠락하리라 여겼지만, 보라, 1년 사이에 아이돌 산업은 이렇게 분주하고 복잡하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1년 후엔 또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2013년이야말로 한국 아이돌의 격변기인 셈이다.

Words: 차우진(음악 평론가)
Editor: 김종훈
ILLUSTRATION: 이혜헌(Hey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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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차우진(음악 평론가)
Editor 김종훈
Illustration 이혜헌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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