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조용한가?
연기 쪽으로 방향을 옮기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회사도 옮겼고, 2, 3개월 동안 혼자 있었다.
왜 갑자기 연기를 하려는 건가?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꼈는데, 전문성이 없으면 소외되는 것 같다. 유명 연기자들은 방송에서 사소한 리액션만 해도 다른 출연자들이 잘 받아주지만, 그렇지 못한 출연자들은 다르게 대한다. 같은 예능인들도 연기자와 예능인을 다르게 대하더라고.
다들 그러지…. 당신도 그러지 않나?
약간. 나는 연예인이 되려 했던 건 아니었다. 모델 활동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거든, 얼렁뚱땅 <스타킹> 나가서 순식간에 연예인이 됐다. 하지만 난 특기가 없다. 순발력이 좋거나, 노래와 춤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배우기만 한다.
뭘 배우는데?
끈기가 없어서 끝까지는 못하는데 피아노, 기타, 플루트,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골프, 볼링 등 엄청 많이 한다.
무슨 세트 메뉴 같다.
이것저것 즐기면서 하는 편이다. 연예인들은 특출나게 잘하는 게 있어서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별로 없다. <영웅호걸> 하면서 많이 느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인지도를 굳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 연기가 재밌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연예계에서 스타들만 좋은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스타들은 쌓아놓은 업적이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좋은 대우받고 싶으면 나도 스타가 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부족하다. 더 욕심을 부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감색 언더웨어는 게스, 검은색 니트 원피스는 제시뉴욕 제품.
먹고살 정도로만 활동하고, 만족하면 되지 않나?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 근데 연예인들이 많이 나오는 방송에 나가면 기가 죽는다.
그런 걸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부르더라.
오늘처럼 혼자 촬영하면 신나서 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리액션 하나, 대사 하나에도 상대가 기분 나쁘진 않을까? 버릇없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보면 말을 못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예능인으로 부적합한 것 같다. 재작년에 <놀러와>에 패널로 들어갔는데 한 달 하고 하차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독한 사람만 살아남으니까.
<스타킹>처럼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키면 할 수 있다. 망가지는 것도 한다. 하지만 남들을 놀리고, 힐난하는 건 힘들다. 다른 패널들에게 양보하게 된다. 소심해서 그렇다. 반면에 연기자는 자기 몫이 정해져 있다.
연기자에게 예능은 부가적인 일이니까. 예능인은 예능이 우선 아닌가?
대본 없이 능수능란하게 멘트하는 게 부족하다. 연기는 대본대로 하면 되니까 욕심 내지 않고, 열심히 하면 설 자리가 있지 않을까?
근데 한 번 캐릭터가 잡히면 잘 안 바뀌잖아.
그래서 진지한 것도 하고 싶다. 연기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진지한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한 역할 안 들어오면, 지금 캐릭터를 계속 해도 상관 없다.
어려운 사람이다. 욕심은 없지만, 무시당하는 건 싫어한다.
엄청 싫다. 싫어도 내색 못하고 혼자 속상해한다. 그 후로는 더 위축되고.
이렇게 예쁜 사람들은 도도하지 않나?
모델 할 때까지만 해도 당당했다. 광고도 많이 찍었고, PD한테도 인정받고, 예쁘다는 소리 들으며 자랐으니까. 근데 연예계 오니까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지. 그때부터 기죽기 시작한 것 같다.
검은색 언데웨어는 게스 언더웨어, 은색 장식의 흰색 재킷은
아이잗 컬렉션 제품.
우물 밖으로 나갔네?
뱀의 대가리로 사는 것과 용의 꼬리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뱀의 세계와 용의 세계는 다르더라. 비록 용의 꼬리지만 이 세계를 맛보고 나니 다신 예전으로 못 돌아가겠다.
연예계 생활이 중독성이 있나 보다.
예전으로 돌아가려거든 지금 것들을 포기하면 된다. 그냥 놓아버리면 되는데, 안 된다. 이쪽 생활이 좋다.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게 좋다. 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달 내내 일해야 벌 수 있었던 돈을 이제는 일주일에 방송 두 번 하면 벌 수 있다.
그럼 나도 연예인 해야겠다.
하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겠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진짜 고단하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불편하지 않고?
평소에는 괜찮다. 인사하고, 사진 찍는 건 좋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못하는 건 불편하다.
그럼 어디서 데이트하나?
불편해도 감수하고 데이트한다. 걸어다니고, 극장 가고 다 한다. 불편하면 고개를 숙이거나 한다.
차라리 화장을 안 하면 못 알아보지 않을까?
하하. 화장 안 해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 민낯으로 방송에 많이 나왔다. ‘생얼’도 예쁘다던데? 하하.
원래 그렇게 웃음이 많은가?
행복 지수가 높고, 긍정적이다. 누가 나에게 일침을 가하거나, 기분 나쁜 말을 해도 나 잘되라는 말인가? 하고 웃어넘긴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예전에 김원희 언니가 웃기 싫으면 억지로 웃지 말라고도 했다. 근데 나는 웃겨서 웃는 거다.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즐겁더라고.
가식적이다, 이런 얘기도 듣겠다.
그런 적도 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한테도 굽실댄다.
왜 멀쩡한 사람이 굽실대며 사나?
내가 냉랭하면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애교 부리면서 얘기하다가도 너무 쉬워 보일까봐 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안 된다. 상대방 눈치를 많이 본다.
남들 기분이야 좋든 나쁘든 무슨 상관인가?
겁이 많다. 생각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예쁜 외모에 잘 웃고, 친절하다. 인기 많았겠다.
뭐, 그랬지. 하하. 남자들이 무슨 얘기를 해도 잘 웃고 호응 잘해주니까.
그러면 남자들은 자기한테 호감 있는 줄 알고 오해한다.
하지만 나는 연락을 안 한다. 연락처도 안 알려준다. 그리고 이젠 늙기도 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딜 가든 주목받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어린애들한테 주목한다. 내가 빠져야 할 때가 온 거지.
슬프지?
응. 그런 생각 들었다. 아 늙었구나.
외롭겠다. 상실감, 소외감 들지 않나?
그럴 때는 걔들이 나보다 예쁘고 젊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내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만족하면 된다. 가질 수 있는 것 이상 가지려고 안달내면 힘들어진다.
너무 쉽게 만족하는 거 아닌가?
쉽게 만족하고, 아니다 싶으면 쉽게 포기한다.
어떤 남자 만나고 싶나?
돈 많고, 능력 있고, 나를 지원해줄 수 있는 남자. 방송일 하더라도 돈 걱정 안 할 수 있게 해줄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럼 회계사를 만나라.
하하. 칼같이 돈 관리해주는? 근데 그런 사람을 만나보니까 내가 기죽더라고. 순종적이어야 하고, 그를 떠받들어줘야 하고, 눈치 본다. 이건 아니다 싶더라. 자기 잘난 거 알고, 잘난 척하니까 너무 싫은 거지.
잘난 사람이 잘난 척하는 건 재수 없지.
나를 예뻐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면 된다. 능력이 없다면 내가 먹여 살리면 되고, 애 한둘 낳아서 학교 보내고 굶지 않을 정도면 된다.
맞다. 여자들이 그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나이 들어야 정신 차리는 것 같다. 이런저런 사람 만나보고 좀 데어봐야 한다.
많이 데었나봐?
하하. 많이는 아니지만, 데어는 봤지.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강수지
HAIR: 노혜진(제니하우스 도산)
MAKE-UP: 노미경(제니하우스 도산)
COOPERATION: 클럽 마운틴 스위트’ in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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