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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매개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 있다 보면 이래저래 간섭받는 일이 많아진다. 물론 음식에 관해서 말이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본 매너(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는 음식에 손을 대지 마라, 소리 내서 먹지 마라, 수저가 그릇에 닿지 않도록 해라 등)부터 약간 수준 높은 레스토랑의 룰까지, 늘 옆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런 훈련 중 가장 귀찮았던 기억은 ‘손님으로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받으면 설거지는 반드시 하라’는 보이지 않는 조항이었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면 “어쩜 착하기도 해라! 어머니가 교육을 너무 잘 시키셨네!”라고 칭찬받기 일쑤였는데, 늘 그 뒤에서 엷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하지만 설거지하기 힘든 곳도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었다. 모든 걸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시고, 비교적 깨어 있는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족보의 이름 대신 순수 한글인 ‘일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 만큼) 유독 부엌만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가 부엌에 가면 안 된다는 거다. 우리 집은 어머니는 물론 형도 음식을 매개로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아버지와 누나는 이런 직업과는 거리가 있었는데도, 가족 모두 요리를 즐겨 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아버지와 누나의 요리 실력은 어머니나 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알게 모르게 모두 요리하는 분위기에 실력까지 갖췄으니 애초에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좋은 음식이 알아서 나오는데 내가 굳이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오로지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자란 나는 눈과 입만 점점 고급스러워졌다. 도로(참치회의 일부) 하나에 몇 만원 하는 걸 먹은 건 아니지만. 그런 생활이 지겨워졌을까? 아무튼 “난 체질적으로 공부가 안 맞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내가 뒤늦게 공부한답시고 나라 밖으로 향했다. 초점은 ‘나간다’는 행위였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할 생각마저도 하지 않았다. 공부도 좋지만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마시고 먹고 실컷 놀았다. 그러다 보니 1년치 예산이 6개월 만에 바닥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단지 생존이었다. 이것이 내가 요리를 하게 된 시작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먹기 위해 살던 내가 하루아침에 살기 위해 먹는 아이로 뒤바뀐 순간. 다행인 건, 내가 그럭저럭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기는 그동안 먹고 봐온 게 있으니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요리도 어색하지 않았다. 제법 맛있는 것에 감탄한 건지, 생존을 위해 입맛이 너그러워져 맞춰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등 떠밀리듯 요리에 입문한 나는 한 가지 요리를 두세 달 넘게 먹기 일쑤였다. 어떻게든 요리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비록 내가 갖고 있는 재료와 조미료의 범위 안에서였지만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요리가 늘어났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더니 제법 요리를 한다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일단 경지에 오르자 내 관심은 요리를 하는 공간과 조리 기구, 그리고 요리를 담는 일체의 것들에 쏠리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의 화력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보통 가스레인지에 서너 개의 화구가 있는데 각각의 여유 공간은 충분한지, 가스레인지 바로 옆 공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등등. 부엌을 설계하기 시작한 셈이다. 내가 익힌 바로는 이렇다.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보통 가스레인지에 서너 개의 화구가 있는데 각각의 여유 공간이 어떻게 되는지(냄비와 냄비 사이가 너무 좁아 한쪽 냄비가 중앙 화력에서 밀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양한 화력을 구사하는 가스레인지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가스레인지 바로 옆,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은 어느 정도로 잡을 건지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재료를 썰거나 다듬거나 무엇을 하든 거기에는 알맞은 조리법이 있고, 그 조리법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 이거야말로 부엌의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가스레인지(화력) 바로 옆에 평균 폭 75cm, 길이 150cm 정도의 공간이 있으면 두세 곳의 개별적 조리 공간이 나온다고 봐도 된다. 다음으로 천태만상의 조리 기구가 담겨 있는 수납공간. 수납공간은 아래보다는 위에 있는 것이 좋다. 급피치를 올려야 하는 요리거나 한 시간 넘게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요리일 경우, 피로 정도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조리를 할 수 있는 부엌의 공간은 대부분 ‘ㄷ’자 구조를 취하고 중요한 조리 기구들은 머리 위에 놓는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바로 그릇을 닦는 자리인 싱크대. 사용한 그릇과 닦은 그릇을 나눌 수 있도록 싱크대가 2칸으로 구분돼 있으면 좋다. 그러나 자기 신체보다 낮은 싱크대 볼에서 장시간 설거지를 하면 두통과 치통에 허리 디스크까지 부를 수 있다. 하나 더. 전선이나 플러그는 조리를 하는 공간에서 한 단계 벗어나 있는 게 정석이다. 부엌, 더 정확하게는 조리를 하는 공간의 기본 구성 요소는 물과 불이고, 이 둘은 적당히 떨어뜨려놓는 게 좋다. 요리를 하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음은 주방 기구. 자기에게 맞는 사람이 있듯이, 모든 요리에는 그 성질에 맞는 주방 기구가 있다. 당장 냄비만 해도 그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크기별로 소·중·대에서 소재별로 유리, 스테인리스, 쇠, 도자기 등등. 물론 냄비마다 알맞은 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죽 같은 요리는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스테인리스로 된 두꺼운 냄비가 이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스튜 같은 요리를 할 때에는 채소들이 으깨지지 않게끔 나무로 된 큰 숟가락으로 천천히 저어야 하며, 감자 껍질을 벗길 때에는 필레로 편히 깎을 수 있어야 하고, 칼은 용도와 그립감을 꼼꼼히 따져보고 골라야 한다. 다음으로 맛있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단계. 늘 먹는 밥이라고 대충 먹으면 삶 자체를 대충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삶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일상이 되어버린 환경에 의식을 갖고 변화를 주는 것이다. 늘 먹는 밥그릇은 하나로 만드시라. 다만 그 나머지 반찬들은 그 성질(색깔이나 양, 내용 등)에 맞도록 다양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아울러 식기나 테이블보, 러너 등도 준비할 수 있다면 늘 먹는 우리의 행위에 신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뜻하지 않은 나의 환경적 변화가 요리를 하게 만들었고, 그 배움을 통해 먹는 행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만 알고 지내던 삶에 지그시 과정이 들어왔던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골에 내려갔다. 여전히 말수가 많고 꼼꼼한 할머니와 별 말씀 없이 늘 작업에 몰두하는 할아버지(나의 할아버지는 서예가다)를 만나기 위해서. 밀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하루 세 끼 중 한 끼가 온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가 내주는 그릇과 접시를 상 위에 나열했다. 그러다 문득 할아버지 밥그릇 옆에 있는 수저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늘 쓰는, 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은수저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닳고 닳아, 그 3분의 1가량이 없어져버렸다. 코끝이 찡했다. 늘 그랬듯이, 맛있게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다. 늘 사양하면서도, 어느새 설거지하는 나를 두고 남겨진 반찬을 챙기는 할머니.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혼쭐을 내던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사람이란 반드시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서야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 너무 평범해서 간과하기 쉬운 것들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내게는 부엌과 음식에 관련된 추억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음식을 매개로 한 보살핌과 사랑이 있음을 잘 안다. 오늘 부엌에서 가족을 위해, 혹은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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