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은 2008년에, 학교 졸업하기 전에 그린 거예요. 그때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죠. 드로잉 원본을 개방한 적은 없어요. 큐레이터 김현진 씨가 이번에 기울어진 벽에 걸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기울어진 벽이 멀리서 보면 화이트 큐브의 일부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색하고 이상한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책이라는 게 리듬을 타는 매체거든요. 드로잉을 책으로 보면서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근데 그 상태가 꽤 음악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전에 한 드로잉 작업과 최근에 한 사운드 작업을 같이 전시한 거죠.
드로잉은 조난 및 구조 현장의 보도용 기록 사진 위에 먹지를 대고 베끼면서 일부분을 남기거나 지우는 방식으로 그린 거예요. 없어진 사람을 찾는 사람들은 없어진 사람들과 유사하게 행동해요. 사람이 없어진 공간으로 사람이 또 가야 하잖아요. 없어진 사람들을 찾는 사람들은 그 공간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옵니다. 얇은 차이인데 뭔가 생각이 많았어요. 그것을 먹지를 대고 다시 그릴 때는 그곳의 모든 사람들을 물속에 쳐 넣는 느낌이었어요. 작업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거죠. 옛날부터 이미지가 무력하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어요. 지금도 그렇긴 해요.
- 솔로 인터뷰’ 한강 양화지구의 녹음 현장 기록 이미지, 2013.
- ‘Bada 2’ Drawing on Paper, 22×28cm, 2008.
그러고 나서 그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 거예요. 한강 주변에 몰래 그래피티를 그리는 곳이 있어요. 후미진 데예요. 거기서 드로잉을 벽에 다시 그리는 작업을 했어요. 그것을 포스터로 제작했어요. 그래서 원래는 책이랑 그 포스터가 하나의 작업이에요. 이번에는 드로잉 원본만 전시한 거고요.
사운드 작업은 기본적으로 필드 레코딩한 걸 믹싱했어요. 한강 물속에서 녹음한 소리를 중요하게 다루었어요. 수심 6m 정도에 마이크로폰을 넣었어요. 한강이 단지 물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뱃속에서 꾸르륵 꾸르륵 하는 소리랑 비슷한 게 들려요. 도시를 소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바람 소리랑 물결 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소리하고 전혀 달라요. 누가 누구를 때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요. 친구들한테 들려줬을 때 제일 재밌었던 반응은 무생물의 소리인지 생물의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강이란 게 그렇잖아요. 공간이고, 생물들이 그 속에 있긴 한데 물 자체는 무생물이고. 폭력 얘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는데 폭력적이란 것이 파괴하고 멸망하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이야기(소리)를 처음 말하는 것, 그리고 그걸 듣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난폭함이라는 것도 있지요.
사실 이번에 작품을 설치할 때 여러 이유로 집중을 못했어요. 화이트 큐브가 저한테 자연스러웠던 적이 없어요. 드로잉 작업은 책으로 존재했었고, 사운드도 유통이 쉬운 매체잖아요.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간 제약 없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기획전 <기울어진 각운들>은 6월 16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www.parttimesuite.org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vs <느낌 氏가 오고 있다>
남자들이여, 시집을 펴라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vs <느낌 氏가 오고 있다>
한국 시를 지탱해온 두 출판사, 창비와 문지의 시인선은 각각 400번과 500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체력과 인내가 황영조나 이봉주 급이다. 이쯤에서 창비와 문지의 ‘최신 병기’를 살펴보자. 창비와 문지가 각각 주관하는 신인상으로 등단한 주하림(2009년 등단)과 황혜경(2010년 등단)의 첫 시집들이 기묘한 인연인 듯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둘 다 여성 시인이다.
‘창살은 아름다운 웃음소리마저 거두어가는데 / 네가 발견한 것들은 왜 내게 발견이 되지 못했을까.’(주하림 ‘척(chuck)’) 주하림은 약관 1986년생이다. 그녀의 시는 외면적으로 상당히 섹시한데, 그냥 야한 게 아니라 슬프게 야하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치마폭에 절정의 시를 남기는 전설의 낭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권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격렬한 섹스를 나누고서 담배를 막 무는 순간, 무심한 애인에게서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는 남자. 당황스러운 애무 그리고 씁쓸한 이별을 맞이했던 남자.
‘우리는 정말 우리가 될 수 있을까? /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황혜경 ‘취향의 손상’) 황혜경은 더 조심스럽고 더 정갈하다. 하지만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 폭풍 같은 열정이 회오리치고 있다. 느낌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녀의 느낌과 감정이 콘크리트 같은 당신의 혀, 귓바퀴, 팔꿈치 같은 내밀한 곳까지 쓸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자에게 권한다. 몇 년을 사귀던 여자에게 그저, ‘너에게는 느낌이 없어. 말이 통하지 않아’라고 문자나 메일로 실연 통보를 받은 분. 왜 그랬는지 곰곰 반성할 일이다. 여자란 어렵고 복잡하다. 어렵다고 피하지 말자. 여자도 시도.어려울수록 얻어내는 사랑은 더 깊고 푸를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이여, 시집을, 어서.
The Alternative Choice
<파이드파이퍼(PiedPiper)>
<파이드파이퍼>는 웹진…이라고 하기엔 ‘예술적’이고
(근데 예술이 뭐지?), 작품으로 보기엔 낯설지 않다(작품은 낯설어야 하나?). 어찌됐건 뮤지션을 인터뷰한다. 사진도 찍는다. www.pied-piper.kr에서 볼 수 있다. 포스터도 제작한다. 포스터는 종이 잡지 같기도 하고 텍스트를 형이상학적으로 편집한 작품 같기도 하다. 첫 호에 조정치를 인터뷰했다.
- Wearable Food 1x1qx17x1=1
- Wearable Food 1x1qx17x1=1
성연주는 종이로 옷의 형태를 만든 후 그 위에 식재료를 붙였다. 그걸 카메라로 찍고 이미지를 컴퓨터에 옮겨 패턴을 만들었다. 이 패턴을 종이에 프린트해 다시 실제 식재료와 함께 또 다른 패턴을 구성했다. 작품은 이렇게 만든 옷이 아니라 그걸 찍은 사진이다. 6월 8일까지 갤러리 이마주에서 전시한다. 옷은 상해서 사라지고 없다. 이건 공백에 관한 전시다.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안정환
WORDS: 서효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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