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반바지를 입고 요리를 하는 폴 뉴먼과 그의 아내.
1960년대. - 타이거 오브 스웨덴의 싱글 재킷과 버뮤다 팬츠를 입은 남자.
1967년.
1993년 7월 24일 <동아일보>, 남자의 반바지에 관한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바지폭이 그리 좁지 않은 것이 좋으며 길이는 무릎 정도에 오면 경박해 보이지 않아 적당하다.’
다음은 1971년 7월 8일 기사다. ‘반바지의 길이는 무릎 선에서 5cm 정도 위로 하고….’ 두 기사 모두 남자들의 반바지에 대해 무척 엄격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시대에 따라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반바지의 길이와 핏에는 차이가 있다. 둘을 비교하니 1971년이 더 너그러웠다. 그 이유를 거칠게 짐작하자면 남성복의 시대적 형태에 따른 것이다. 1970~1980년대 남성복이 몸에 붙었다면, 1990년대는 정반대였다는 것. 남자들의 수트가 그랬고, NBA 선수들의 유니폼이 그랬다. 모든 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흥미로운 건, 반바지의 경망스러움은 늘 질타받았지만, 길이라는 수치로 따지자면 시대를 거슬러 갈수록 과감했다는 점이다. 기억하건대 아버지들은 지금의 라프 시몬스나 JW 앤더슨이 만들었을 법한 두 뼘 남짓한 반바지를 입었다. 하지만 그 시대 안에서 조화로웠다.
16세기 남성복에서 브리치스(여유 있고 풍성한 형태의 반바지)는 다리 근육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한 남성성의 장치였다. 장식은 화려했고 노골적이었으며, 실루엣은 호기로웠다. 19세기의 반바지는 미국과 영국 기숙학교의 교복일 뿐이었다. 반바지에서 남성성은 증발했고, 유년기를 상징했다.
당시 헝가리의 한 아동문학에선 주인공 소년이 반바지를 졸업하고 꿈 많은 소년 시대와 이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성인 남성이 지금과 같은 맥락으로 반바지를 입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 전역에 리조트가 활성화되면서부터다.
1920~1930년대 코트 다쥐르에서 휴양을 즐기던 남자들은 민소매 티셔츠와 짧고 타이트한 반바지를 입었다. 하지만 도심에서 남성의 반바지 차림을 본 건 1960년이 넘어서다. 캘리포니아 해변과 서핑, 건강한 청춘의 영향이다. 향후 20~30년간 남성들의 반바지는 줄곧 짧고 탄탄한 형태로 지속된다. 사진 속 주인공은 1960년대 폴 뉴먼과 그의 부인이다. 폴 뉴먼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인데, 눈여겨볼 부분은 수영복처럼 작은 반바지다. 마치 요즘의 디자이너들이 과감하게 내놓는 반바지처럼 짧고 몸에 밀착되어 있다. 50여 년 전임에도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머뭇거림보다 훨씬 건강한 것이 보기 좋다.
<테이크 아이비> 속 반바지를 입은 남자.
우리는 반바지를 선택하는 데 길이에 관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반바지의 부적절함은 대부분 길이에 연유한 핏, 소재, 실루엣의 복합적인 문제에서 온다. 무릎 위로 5~10cm 정도 올라오며, 실루엣은 날씬하며 아래로 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져야 하는 것. 어정쩡하게 가리는 것보단 건강함을 드러낼 때 반바지는 오히려 단정해진다.
<테이크 아이비> 화보집에 등장하는 1960년대 아이비리거들의 옷차림은 명쾌한 지침서다. 옥스퍼드 셔츠, 스웨트 셔츠와 짧은 반바지와 로퍼의 조합은 시대를 초월하며 통용된다. 이번 시즌 짧은 반바지와 강직한 테일러드 재킷으로 반바지 수트를 대거 내놓은 김서룡과 톰 브라운식의 반바지가 경망스럽지 않은 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입는 방식과 태도 문제다. 톰 포드가 <어나더 매거진>에 쓴 ‘현대적인 신사가 되는 법’에 이런 지침이 있다. ‘남자는 도시에서 절대로 짧은 반바지를 입어선 안 된다.’ 짧은 반바지의 당위성을 몸소 정당화하는 남자들에게
이 글귀는 여름의 여유와 가뿐함을 박탈하는 폭력일 뿐이다.
- 하디 에이미의 반바지 수트를 입은 남자. 1966년.
- 흰색 셔츠와 캐멀색 반바지를 입은 미국의 정치가 존 린지.
1963년
EDITOR: 고동휘
PHOTO: Ga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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