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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 김재원 아나운서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

KBS1 <아침마당>의 터줏대감 김재원 아나운서가 따뜻한 애도로 2025년의 봄을 물들였다.

On April 05, 2025

저는 돌아가신 엄마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었어요.
어떻게 애도하는지 모른 채 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애도는 단순하더라고요.
진정한 애도는 엄마의 죽음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과 결혼하셨죠.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예요.
그때부터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내고 있어요. 어린 시절 친구다 보니 공유하는 친구가 많고, 추억이 많아서 편안해요. 아내와 저의 MBTI가 ISTJ로 같아요. 그래서 같은 사안을 거의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봐요. 같이 영화를 보면 비난이든 칭찬이든 반응이 비슷해 크게 분쟁이 없어요. 결혼 넉 달 만에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병원에 1년 6개월 동안 계시다 집에서 모셨는데, 긴 시간을 묵묵히 감당한 고마운 사람이에요. 소통이 잘된다는 건 어느 한쪽이 희생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그만큼 아내가 많이 참아주는 것이지 않을까요? 저는 행복해요. 아내의 마음은 모르겠지만요.(웃음)

<엄마의 얼굴>의 모티브가 어린 시절 일기장이었죠?
저는 말하는 직업을 가졌으니까 많은 책을 읽고 좋은 기록을 메모했어요. 가수들은 30년 전에 부른 노래를 또 불러도 되지만, 저희는 매일 새로운 말을 해야 하거든요. 그 메모를 모아 책을 냈는데, 좋은 글은 숙성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몇 년 뒤에 봐도 좋은 글을 쓰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애도의 과정으로 글쓰기를 하려니까 고민되더군요. 그래서 어린 시절 일기를 쓰듯이 쉽게 접근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일까요? 주제는 무겁지만 감정 표현은 간결해요. 군더더기가 없어서 감정이 더 와닿고요.
어릴 때 일기를 보면 사건이나 사고를 짧고 간결하게 썼어요. 예로 저희 땐 걸레에 왁스를 묻혀 바닥을 닦았는데 “쓱쓱 싹싹”이라고 시로 표현하는 식으로요. 그 시절 일기처럼 저의 감정을 2~3줄만 적으니까 깔끔해졌어요. 13살 김재원 어린이가 느낀 감정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공감하는 데 집중했어요. ‘힘들었겠구나. 힘들었어도 잘 견뎠다’고 공감하고 그 감정을 거기에 두고 왔어요. 좋은 추억에 대한 감정은 가져왔고, 그리움은 단어로 표현하면서 오래된 애도를 마쳤습니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고 어떻게 방송을 하기로 마음먹었나요?
저는 무척 내성적이고 말도 없는 아이였어요. 지금도 여전히 낯을 가리고 내성적이지만 방송은 재밌어요. 6학년 때 학교에 도서실이 생겼는데 담임선생님이 도서실 개소식을 기사처럼 써보라고 하셔서 취재한 뒤 학급신문을 만들었어요. 그때 기자의 일은 의미 있고 보람 있고 재밌다고 적은 일기가 있더라고요. 그게 방송으로 나가는 첫걸음이었죠.

1995년 KBS에 입사해 커리어의 대부분을 <아침마당>과 함께했습니다. 매일 생방송을 하는 건 어때요?
1999년부터 6년간 <아침마당>을 토요일에 진행하다 <6시 내고향>을 진행하고 2008년 다시 <아침마당>을 진행하기 시작했죠. 횟수로 따지면 3,500회 정도 했어요. 저는 매일 65분 동안 공연한다는 관점으로 생각해요. 그 공연을 처음 만난 사람들과 라이브로 하는 거죠. 천의무봉이란 말이 있어요. 천사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의미인데, 저는 65분간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이끌고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워밍업한 뒤에 스토리를 끌어내 클라이맥스로 갔다가 감정을 다스리고 마무리하는 거죠. 중간에 재미없는 이야기는 빼고 어색해지는 부분이 없도록 하면서 끝나는 시간까지 맞추죠. 신의 기술이죠.(웃음) 라이브 공연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인터뷰이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매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흥미로운 스토리를 이끌어내나요?
기본적으로 대본이 있지만 제작진과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좋은 기회로 사람마다 각자 삶에서 추구하는 동기를 9가지로 나눈 애니어그램이라는 성향 분석을 공부했어요. 출연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각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 가치는 성공, 성취에 있을 수도 있고 봉사에 있을 수도 있죠.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이끌어가면 신나서 얘기해요.

2013년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저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하셨어요. 12년이 흐른 후, 삶의 균형이 잡혔나요?
지난 10년간 제 인생을 살았어요.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사위로, KBS 아나운서로, 작가로, 봉사자로 살았죠. 모든 걸 합쳤을 때 저의 완성된 10년이 나와요. 주변에서 내 시간에 연연하면서도 내 시간을 살지 못하는 걸 많이 봤어요. 내게 주어진 역할마다 비중을 맞춰 살되 인생의 10%는 나로서 살아야 해요. 오래된 애도나 걸어서 출퇴근하는 시간처럼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는 시간은 오롯이 저의 시간이에요.

역할에 따라 분배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어떻게 분배하나요?
남편·아버지·사위의 삶 30%, <아침마당> MC의 삶 30%, 작가의 삶 5%, 봉사자의 삶 5%, 김재원의 삶 10%로 나눴어요. 적절히 분리하되 종합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노력하죠. 또 감정 분리도 하고 있습니다.

감정 분리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저의 상황에 빗대어 말하면 장모님이 떠나시고 장인어른이 아프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요. 하지만 슬픔을 일터나 집으로 가져가지 않아요. 감정이 액체나 기체가 되면 안 되고, 고체가 돼야 합니다. 회사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면 회사에 두고 집으로 가져가지 않아요.

감정 분리를 한 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정돈됐어요. 저는 걱정에 5위까지 순위를 매겼어요. 순위에 들지 않는 걱정은 시원하게 버려둬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면 다시 순위를 매겨 5위에서 밀려난 걱정은 버리고요. 걱정이 너무 많으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감정의 최대 적재량이 있으니까 자신의 최대 적재량을 깨닫고 그걸 넘는 일을 하지 말아야죠.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배운 게 있다면요?
인상 깊었던 출연자 중 한 사람이 호주의 연설가 닉 부이치치예요. 사지가 없는 청년인데 포옹을 좋아하는 걸 알고 제가 먼저 포옹하려고 분장실로 찾아갔어요. 저를 소개하자마자 대뜸 “캔 아이 허그 유(Can I hug you)?”라고 묻더니 제게 어깨를 비비면서 턱으로 어깨를 눌렀어요. 제 인생에 이때보다 더 진한 포옹은 없었어요. 방송이 끝나고 닉 부이치치가 방청객을 다 포옹하고 돌아갔어요. 그의 환한 미소와 수려한 말솜씨에 감탄했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방송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아나운서 커리어의 전환점이 됐군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포옹을 한다는 게 성립하지 않잖아요.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부분인데 자신이 가장 못 할 거라고 우려되는 부분으로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작은 몸으로 테이블에 올라가서 “여러분, 힘드시죠? 인생에서 넘어지는 순간이 옵니다”라며 실제로 넘어지고 어렵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 뒤 “저도 일어서는데 여러분이 못 일어나는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어요. 몸과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그 뒤로 저도 마음이 통한 분들과 포옹해요. 제가 그분에게 드릴 수 있는 위로가 포옹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시청자들이 저를 실제로 보면 “<아침마당>을 보는 게 힘이 돼 하루를 버틴다”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된다고 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려고 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침마당>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의 과외 선생님이요. 출연자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더 겸손하고 더 순수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침마당>을 지킨 줄 알았는데 <아침마당>이 저를 지킨 거였어요. 정은아 선배, 이금희 선배를 통해 배웠고, 이상벽 씨가 진행하는 것을 보며 기운을 얻었어요. <아침마당>과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정년퇴직까지 귀한 프로그램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CREDIT INFO
취재
유재이 기자
사진
이대원
2025년 04월호
2025년 04월호
취재
유재이 기자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