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PEOPLE

PEOPLE

<아침마당> 비하인드, 김재원 아나운서의 힐링 인터뷰

KBS1 <아침마당>의 터줏대감 김재원 아나운서가 따뜻한 애도로 2025년의 봄을 물들였다.

On April 04, 2025

기자의 개인적인 얘기를 짧게 하자면, 봄이 오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부쩍 생각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외할아버지와 몇 년간 함께 살았는데, 노쇠한 외할아버지는 외출이 어려워지자 TV를 벗 삼아 시간을 보냈다. “전국! 노래자랑”이란 멘트를 배경음악으로 일요일 점심을 드셨고, 모두가 출근하는 평일엔 전국 각지의 삶을 들려주는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보며 “하하, 허허” 웃으셨다. 최근엔 전업주부가 된 엄마가 역시 <아침마당>을 보며 가족들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외할아버지와 엄마까지 2대의 일상을 컬러풀하게 만든 <아침마당>을 오랜 시간 지켜온 터줏대감이 바로 김재원 아나운서다. 말하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가 신간 <엄마의 얼굴>(달먹는토끼)을 내놨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장모님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에세이는 베스트셀러가 돼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아침마당>은 제 인생의 과외 선생님이에요.
출연자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더 겸손하고 순수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제 <아침마당>과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년 퇴직까지 귀한 프로그램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출간한 책 중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는 <엄마의 얼굴>이 최초입니다.
13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4년 후에 생긴 두 번째 엄마인 장모님이 30년 동안 엄마 역할을 해주시다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를 애도하는 아내와 처형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제가 엄마를 애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애도의 한 방편이 글쓰기와 말하기였죠. 진정한 애도는 엄마의 죽음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에 책을 썼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애도를 했나요?
사실 저는 애도가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저 음식은 엄마가 참 좋아했는데”라든가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우리 집에서 살았겠지?”라는 식으로 장모님이 등장했어요.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았는데 우리 부자의 대화에서 엄마는 절대 등장하지 않았거든요. 내가 제대로 애도하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많은 이들이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죠.
당사자보다는 듣는 사람이 불편하니까요. 내가 얘기를 꺼냈을 때 상대방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자연스레 잦아들죠. 저는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껴 안 하다 보니 엄마라는 단어도 낯설어졌고, 엄마가 마음속에서 묻히게 됐죠. 그렇다고 엄마를 완전히 떠나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풍선에 매달린 엄마가 어떤 추에 의해 내 마음에 붙들려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추가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겁게 작용했습니다.

약 40년 만에 한 애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나요?
이제 하늘로 올려 보냈어요.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꼈던 감정들이 있는데 이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예를 들어 제가 장모님께 잘하다가도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못 했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지나갔었어요. 장모님은 제게 “자네 엄마가 받을 효도를 내가 받아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저는 마음이 불편해 “어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효도하지 마요?”라며 장난스럽게 반응했어요. 그런데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그 말씀도 따뜻하게 받아들일걸, 이란 후회 아닌 후회가 생겼어요.

장인, 장모님과 각별한 사이였죠. 아버지를 병간호하며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위에게 신문 스크랩을 해주시는 장인이나 사돈의 병간호를 돕는 장모님은 흔하지 않죠.
아버지가 처음 쓰러지셨을 당시에 저는 아내와 미국에서 공부 중이었어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한국으로 출발하면서 처가와 친구에게 먼저 연락했는데 병원에 가장 먼저 가신 게 장인어른이었어요. 그 후엔 아버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구해 오셨고요. 아버지가 6년을 누워 계시는 동안 장모님은 저희 집에 자주 오시며 형제 이상으로 돌봐주셨어요. 아버지 때문에 빚이 있어 장인, 장모님께 더 잘해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마음껏 효도해도 부족한 것 같은데 장인, 장모님은 늘 “고맙다. 자네 부모님이 받아야 할 효도를 내가 받는다”고 하셨죠.

요즘 말로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랐잖아요. 반면 처가댁은 살가운 분위기 같습니다.
공감형 집안이에요. 어머니는 제게 “어쩜 그렇게 방송에서 말을 잘해?”라며 자주 칭찬해주셨어요. 저는 쑥스러워서 “어머니, 사위 칭찬하지 마세요”라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마음껏 자랑하고 칭찬하게 해드릴걸, 후회돼요. 칭찬이 남사스러워서 그랬던 건데 저희 처가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해요. 장인어른이 파킨슨병을 앓으시는데,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휴일에는 제가 간호해요. 장인어른을 뵈면 장모님의 칭찬이 귓가에 울려요.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칭찬이 그리워요. 제가 책에도 썼는데 사람에게 부모가 몇 년 동안 필요할까요?

글쎄요. 부모님은 늘 제 곁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머니와 13년, 아버지와 33년 도합 46년 동안 부모님과 살았습니다. 엄마와 보낸 시간이 짧았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속상한 적이 없었거든요.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때 받은 사랑 덕분에 잘 자랄 수 있었죠. 아내와 아들이 생기고, 장인, 장모님이 생기면서 가족의 빈자리는 채웠지만 부모님의 빈자리가 꼼꼼하게 채워진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울적하고 외롭지 않았던 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름의 방법대로 주신 사랑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도 아들의 부모잖아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경제적 독립을 선언했다는 에피소드를 보고 놀랐어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니까요. 작가님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좋은 아들, 고마운 아들이죠. 제가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을 땐 속으로 ‘나는 저 나이 때 엄마가 없었는데’라든가 ‘아빠가 아팠는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들이 대학에 갔을 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요.

기쁨의 환호가 아니라 왜 안도의 한숨이었나요?
이제 내가 죽어도 이 아이가 그렇게 슬퍼하지 않겠구나, 내가 이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의 역할을 했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했죠.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고, 돌아가셨을 땐 33살이었거든요.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아들이 4살이었어요. 아들이 어리니까 밤에는 외할머니 편에 집으로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아들이 절대 제 옆을 떠나지 않고 문상 받는 내내 제 다리를 붙들고 있다가 잠들었어요. 그 아들이 몇 년 전에 취업해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하늘이 엄마를 일찍 데려가신 대신 제게 좋은 아들을 줬다고 생각해요.

CREDIT INFO
취재
유재이 기자
사진
이대원
2025년 04월호
2025년 04월호
취재
유재이 기자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