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스승이 만든 기대주 강문경
<현역가왕2>의 주간 대국민 응원 투표 결과를 보면 눈에 띄는 참가자는 박서진과 재하 정도였다. 그 밖에는 꾸준히 TOP10에 이름을 올린 참가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재하는 준결승전에서 최종 탈락하며 결승전 진출이 무산됐다.
준결승전에서 눈에 띈 참가자는 강문경이다. 준결승전 1라운드 ‘1대1 장르 대첩’에서 박서진과 맞붙어 296점을 받으며 완승을 거두었다. ‘1대1 장르 대첩’은 두 참가자가 맞붙어 400점을 나눠 갖는 방식이라 박서진은 296점을 가져간 강문경 때문에 104점에 그쳐 순위가 13위까지 밀려났다. 강문경은 준결승전 2라운드에서도 717점을 기록하며 준결승전 최종 순위에서 1위가 되며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준결승전 이전까지 강문경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체평가전’으로 치러진 예선전에서 27표를 받아 방출 후보에 올랐다가 겨우 본선에 진출해 본선 1차전 ‘1:1 현장 지목전’에선 진해성과 맞붙어 35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하지만 팀 미션 ‘릴레이 팬심 사냥’으로 치러진 본선 2차전에선 그가 소속된 김준수 팀이 5위로 최하위가 되면서 다시 방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어렵게 준결승 결정전인 본선 3차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 ‘한 곡 싸움’에서 125점으로 16위, 2라운드 ‘뒤집기 한판’에서도 450점으로 13위에 그쳤다. 본선 3차전 최종 점수는 575점, 13위로 다시 방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패자부활전까지 가서 김중연, 한강과 겨뤄 힘겹게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은 강문경은 준결승전에서 최종 1위에 오르는 드라마틱한 반전에 성공했다.
전북 순창에서 중국집을 하는 부모는
소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강문경을 광주에 살고 있는 조통달 명창에게 보냈다.
1년 뒤 조 명창이 전북 완주로 이사하자 강문경은
버스를 타고 오가며 소리 공부를 이어갔다.
1985년생으로 39살인 강문경은 2014년 1집 앨범 <아버지의 강>으로 데뷔했다. 원래 판소리 전공자로 중앙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무명 가수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강문경에게는 3명의 스승이 있다. 전북 순창에서 중국집을 하는 부모는 소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강문경을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조통달 명창에게 보냈다. 1년 뒤 조 명창이 전북 완주로 이사하자 강문경은 버스를 타고 순창과 완주를 오가며 소리 공부를 이어갔다. 조 명창은 가수 조관우의 아버지다.
꾸준히 소리 공부에 매달려 18살 때인 2003년 전국 판소리 전통·고수 경연대회 학생부 대상과 신인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박동진 전국 판소리 고법 대회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강문경은 소리 공부를 포기하고 대학을 자퇴한다. 지역신문 <열린순창>과의 인터뷰에서 강문경의 부모는 “아마 부모가 힘들게 살아가니까 대학 학자금 부담도 있고, 자퇴를 하면서 소리 공부를 포기한 것 같다”며 당시를 가슴 아프게 회상했다.
이후 부모는 강문경을 순창이 고향인 임종수 작곡가에게 보냈다. 그렇게 강문경은 순창과 서울을 오가며 5년 동안 트로트를 배워 2014년 ‘아버지의 강’으로 정식 데뷔했다. 원래 1989년 가수 이태호가 발표했던 ‘아버지의 강’은 임종수 작곡가에게 받은 곡으로 나훈아가 작사를 했다. 강문경은 2020년 SBS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 결승전에서 ‘아버지의 강’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4년 당시 ‘아버지의 강’은 히트를 치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강’을 부르는 강문경의 잠재력을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당돌한 여자’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서주경이다. 이후 서주경이 대표로 있는 소속사에 합류한 강문경은 서주경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트로트 가수로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강문경은 2017년부터 <가요무대>와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당시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출연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트로트 오디션 열풍이 불면서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에 출연해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된 강문경은 우승 상금 1억원을 서주경에게 선뜻 건넸다. 그만큼 서주경은 긴 무명 시절을 보내던 강문경을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