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2002년 영화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그가 연출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박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가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칸 국제영화제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영화 <박쥐>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아가씨>로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어 6년 만에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이다. 세 번째 본상 수상은 한국 영화인 최다 수상 기록이기도 하다.
박찬욱이 말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16가지 비하인드.
공개 직후부터 평단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얻었다. 종종 작품에 대한 평가를 확인하는가?
이번에 처음으로 리뷰를 읽었다. 재미있더라.(웃음) 여러 비평가와 기자들이 시적인 문체를 구사하거나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리뷰를 쓰더라. 그래서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기자들이 시집을 내면 꼭 사겠다고 했다.(웃음) 영화를 각각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재미있고,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문체로 쓴 글을 읽는 게 흥미진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연상케 하지만 흉내는 아니라는 뉘앙스로 후기를 남겼다. 히치콕의 영화를 안 보고 만든 히치콕 영화 같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리뷰가 다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적인 영화 같다.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아주 개인적인 감상을 일으키는 사적인 영화. 그래서 어떤 평이든 다 재미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쓴 댓글도 흥미로웠다.
예전 곡인 ‘안개’라는 노래가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원곡은 정훈희 씨가 불렀는데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노래였다. 여러 가지 추억과 상념을 일으키는 노래다. 그리고 나중에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도 불렀다는 걸 알게 됐는데, 송창식 선생님의 목소리로 들으니까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영화 일을 하고 있지만 내 감수성을 키워준 여러 가지 중에 한국의 대중가요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분은 송창식 선생님이다. 즉시 떠오른 생각이 정훈희 선생님의 노래로 듣다가 마지막에 송창식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오면 굉장히 감동적일 것 같았다. “안개 속에서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가사가 와닿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 안개도 여러 번 등장한다. 뭔가 불분명하게 보이고 싶었다. 혼란스럽고 불분명한 상태에서도 똑바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다양한 리뷰가 흥미롭다고 했는데, 이 영화가 대중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
어떤 메시지도, 어떤 주제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서래’(탕웨이 분)와 ‘해준’(박해일 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감정이 감춰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두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집중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느끼는 감정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의미인 거 같다. 슬픈 감정, 답답한 감정, 혹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지 않나. 우스꽝스러운 순간들도 있지 않나.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저 개인적으로 음미하길 바란다.
주연배우가 탕웨이와 박해일이다. 명배우의 명연기다.
별것도 아닌데 감독은 감탄하는 순간이 있다. 서래가 사진이 잔뜩 붙은 해준의 집 벽을 보면서 “개미가 사람을 먹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 말 속에 담긴 끔찍한 의미와 달리 너무 무심하게 말하는 거다. 근데 그 말이 서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죄의식이 없는 서래의 성격을. 자신과 살(사람의 살결)을 비비고 살던 남편이 죽었다. 그 살이 부패하거나 벌레에 먹히는 끔찍한 상황에서 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이다. 인생은 이런 거고 자연은 이렇게 굴러간다는 싸구려 감상에 빠지지 않는 유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탕웨이의 캐릭터 해석에 감탄했다. 박해일이 극 중에서 탕웨이에게 “내 심장이 왜 갖고 싶어?”라고 물어보는 대목이 있다. 그때 탕웨이가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박해일이 “아~~~~” 하면서 “아”를 아주 길게 말한다. 그게 참 인상 깊었다. 박해일이 처음으로 서래에게 장난기를 드러낸 순간이다. 극 중 늘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공무원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박해일이 그려내는 해준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박해일이라는 사람을 안다면 더 재미있는 대목이다. 스태프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박해일이라는 배우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선악이 공존하는 마스크가 이번 역할에서도 한몫한 것 같다.
탕웨이는 가만히 있으면 속에 뭐가 들었을지 모르겠다. 신비함이 있다. 반면 박해일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이다. 투명하다. 꿍꿍이가 없다. 조금만 친해지면 영혼이 얼마나 맑은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박해일을 보고 ‘변태’라고 하는 이유는 생각이 엉뚱하고, 상투적이지 않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독특한 발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변태 소리를 듣는 거다.(웃음) 그런데 진짜 변태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는데 박해일은 다 드러낸다. 그래서 진정한 변태는 아니다. 그게 해준이라는 캐릭터에 잘 드러난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의 탄생 비화도 궁금하다.
영화 <아가씨> 때와 비슷하다. 정서경 작가와 각본을 함께 쓰면서 “여기에서 해준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겠지”라는 말을 주고받다가 딱 걸린 거다. 결심이라는 말을 쓰기까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결심대로 될까? 성공할까? 그게 궁금해서라도 관객들이 극장에 가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관객이 자꾸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제목일 거라고 생각했다.
박해일 씨가 연기한 해준은 시종일관 품격이 있다. 영화는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격에 대한 메시지도 있는 것 같다. 의도한 바인가?
사실 해준은 내가 되고 싶은 면이 있는 캐릭터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스스로 들 때가 있지 않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세속적인가? 경박한가? 그런 것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역으로 어떤 멸종동물처럼 보기 드문 기품을 지닌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그 기품을 지닌 채로 끝나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기품이 붕괴되고 ‘품위’를 잃어버리는지 담고 싶었다. 품위를 인지하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배우에게서 발견한 의외성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1부의 마지막에서, 해준이 서래한테 찾아가 본인이 알아낸 비밀을 알려주고 헤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박해일 씨가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 고민을 많이 한다는 게 의외였다.(웃음) 당연히 배우들은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딱 한 번 그 장면을 위해 드러내면서 고민하더라. 사실 배우가 참 외롭다. 감독이 도우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배우의 몫이다. 고독한 직업이다.
탕웨이는 어땠나?
사실 탕웨이가 언어 감각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믿음이 있었는데 실제로 한국어를 기초 문법부터 하나씩 배우기 시작하더라. 발음만 흉내 내는 건 본인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고 하더라. 공부한 공책을 보면 감탄할 정도다. 한글도 얼마나 예쁘게 쓰는지 놀랍다. 후시녹음으로 보완할 수 있어 현장에서 오케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녹음실에 30분만 있어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좁고 답답하고 창도 없는 데다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서 같은 대사를 100번씩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짜증 한 번 안 내더라. 그 모습에 또 놀랐다.
영화에 개그우먼 김신영 씨가 등장했다. 캐스팅 비화를 듣고 싶다.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방송으로 봤을 때 프로다움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특징을 간파하고 핵심만 뽑아 표현하는 걸 보고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본인은 현장에서 주눅 들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잘하더라. 카메라 앞에서 긴장도 하지 않고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능란했다. 경험이 많은 배우처럼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준비도 많이 했을 것이다.
배우 고경표 씨와 박정민 씨도 영화에 등장한다.
사실 고경표 씨는 놀라운 배우다. 젊은 배우라면 인기가 막 치고 올라갈 때 바람이 들기 쉬운데 그런 게 없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배우다. 자신에게 포커스(초점)가 안 맞는 장면, 뒤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역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배우다. 배우도 여러 부류가 있는데 포커스 밖에 있을 때조차 주목을 끌려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배우가 있다. 고경표는 그런 게 전혀 없다. 현대적인 연기 태도를 가진 건실한 젊은이다. 딱 필요한 만큼 한다. 그게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 편집에서도 많이 살아남는 거다. 적당한 연기를 해서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다. 박정민 씨는 이번 작품에서 작은 역할이었지만 언젠가는 송강호나 박해일처럼 크게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연을 맺자는 취지로 섭외했다. 특별 출연인데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더라. 잘하더라.
그 외에도 놀라운 캐스팅이 많았다.
박용우를 말하자면,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정말 좋아했다.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영화는 두 번 봤다. 두 번 봤는데도 웃기더라. 그런 유머와 감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작은 역할이지만 부탁했다. 역시나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주더라. 이정현은 영화 <파란만장> 때부터 신세를 많이 진 배우다. 무엇보다 연기를 참 잘하는 타고난 배우다. 가수로서 퍼포먼스도 대단하다. 다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이정현은 다 잘하는 사람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석류청을 만들면서 “중년 남성 우울증에 자라 진액이 좋다던데”라고 말하며 박해일을 빤히 보는 장면이 있다. 말 없는 그 시선이 너무 웃겨 편집하면서 그 장면을 몇 프레임이라도 늘려보려고 했다. 지금도 볼 때마다 소리 내어 웃는 장면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철성이’ 역할을 했던 서현우 씨를 언급하고 싶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환 연기를 했던 배우인데 그때 연기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런데 연기가 참 희한하더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걸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게 잘하는 연기라는 걸 안다. 오디션을 거쳐 뽑았는데 지루해질 만하면 등장해 완전히 다른 패턴의 연기를 보여줘 기분 전환을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극 중 박찬욱 감독이 꼽는 명대사, 명장면도 궁금하다.
이포경찰서에서 해준이 서래를 심문하는 장면이 제일 좋았다. 대사는 뭐가 있을까. 음…. 탕웨이의 중국어 대사다. 유일하게 해준이 알아듣지 못하는 대사인데 서래가 중국어를 쓸 때마다 번역기 앱으로 전부 통역해 해준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마지막 대사에서는 안 한다. 그래서 해준이 “한국말로 해줘요”라고 애원한다. 그동안 보여줬던 침착함과 품위를 내려놓고 다급해한다. 가지고 있던 게 붕괴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해준은 어린애 같다. 서래 입장에서나 관객이 듣기에도 결정적인 대사다.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그래서 좋아하는 대사다.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 씨도 수상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듣고 싶다.
‘송강호’의 이름이 불리기 직전에는 내 영화에 출연한 ‘박해일’의 이름이 불리길 고대했는데, 송강호를 호명하더라. 순간 박해일을 잊었다.(웃음) 막 뛰어나가서 송강호와 포옹하고 돌아오는데 “아차, 박해일…” 싶었다. 하여간 강호 씨와 포옹하는 순간엔 참 감격스러웠다.
영화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요즘 눈여겨보는 작품이나 배우, 감독이 있나?
한국 독립영화 중에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데 좋게 봤다. 또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베네데타>(2021), 미국 영화 <퍼스트카우>(2019)도 좋았다. 아,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나이트메어 앨리>(2020)도 극장에서 보고 나오면서 ‘이게 영화지’ 싶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똑같은 말을 했더라. 극장에서 볼 때 큰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배우로는 최근 <파친코>의 김민하 배우가 참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