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인가, 실인가? 최근 실시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데드 크로스’가 발생했다. “무조건 지지율이 오른다”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도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왜일까? 정치권은 김건희 여사를 주목하고 있다. “조용히 내조하겠다”며 대선 내내 침묵했던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취임식을 기점으로 자신만의 행보를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해외 순방 때는 일정뿐만 아니라 패션까지 화제가 될 정도로 ‘이슈 메이커’가 됐다.
하지만 화제가 되면 될수록 논란도 커지고 있다. 고가의 옷과 액세서리 비용은 물론,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이 아니라 지인을 이번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에 수행원으로 참여시켰다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될 부분이 없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두드러질수록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김 여사의 행보를 놓고 우려 섞인 반응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나토 해외 순방 일정 압도한 김건희 여사 패션
6월 말 윤 대통령의 스페인 마드리드 순방은 김건희 여사의 패션이 다른 안건들을 압도했다. 김 여사의 ‘패션 외교’라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김 여사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윤 대통령의 스페인 마드리드 3박 5일 방문 일정 동안 영부인 데뷔전에서 여러 차례 드레스 코드를 바꿔가며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출국과 귀국 시 태극기 배지를 달고, 최근 유럽 정세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슈를 반영해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케 하는 노란색 블라우스와 하늘색 치마 차림으로 마드리드 마라비야스 시장을 찾았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주최한 환영 갈라 만찬에서는 하얀색 칵테일 드레스, 스페인 동포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는 녹색 한복 스타일 치마,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업사이클링 의류 매장을 방문했을 때는 김 여사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해 국내 브랜드 페르레이가 제작한 의상을 입었다.
그동안 3만원 상당의 슬리퍼, 10만원 내외의 스커트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착용하며 “소박하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던 김 여사. 하지만 이번 순방 일정에서는 고가의 명품도 선보였다.
스페인 동포 초청 만찬 간담회 때 입은 녹색 치마는 프라다의 450만원 상당 제품이었다. 또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반 클리프 앤 아펠의 스노플레이크 펜던트로 추정되는 목걸이를 착용해 화제가 됐다. 시중가는 6000만원 상당이다.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라지 사이즈는 1억 600만원에 달한다.
정상회의 출국 날 착용한 발찌는 국내 주얼리 스타트업 어니스트서울 제품으로 가격은 30만원대였지만 그날 가슴에 단 브로치는 2600만원 상당의 티파니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진품 여부를 확인해주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내외가 해외 일정에 모조품을 착용하는 경우는 없다”는 외교계 설명을 고려할 때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패션만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 배우자로서 존재감도 드러냈다. 첫 번째 단독 일정지였던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을 찾아 직원들에게 “스페인 안에서 현재 K-컬처, K-문화, K-요리가 활성화됐는데, 이 모든 것이 11년째가 된 한국문화원분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말 더 격려가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미국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를 만나 우크라이나 방문을 칭찬했고, 한국 식료품점을 운영해온 교포 부부를 만날 때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연상되는 색상의 옷을 입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호평도 나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여사에게는 100점 만점에 90점을 준다. 세계 정상의 부인들이 얼마나 옷을 잘 입고 멋있냐”며 “거기서 우리 영부인이 꿀리면 우리 기분이 어떻겠냐. 잘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어 “영부인의 패션은 국격이다. 이번에 김건희 여사를 봐라. 옷을 자주 바꿔 입어도 이번에는 비난이 없다. 멋있는 것을 멋있다고 하고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떨어지는 지지율의 이유
그동안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행보다.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향후 행보에 대해 “영부인이라는 호칭도 과하다. (대통령 영부인을 지원하는) 제2부속실도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취임 이후 ‘영부인’을 보좌하는 대통령실 제2부속실도 폐지했고, 대통령실은 언론에도 ‘여사’로 호칭할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취임 후 첫 해외 일정을 전후로 김 여사가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호평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윤 대통령과 용산 집무실에서 연출한 사진이 시작이었다. 김건희 팬클럽 카페에 먼저 공개돼 보안 논란이 일었는데, 사진을 찍고 공개한 사람 역시 대통령실 소속이 아니라 김 여사 측 지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 여사는 143만원 상당의 디올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꿀벌 셔츠’로 불리는 버트 쇼츠 블라우스는 175만원짜리 고가 상품이었다. 심지어 김 여사가 KBS1 음악 프로그램 <열린음악회> 관람 때 입은 디올 재킷은 신상이어서 아직 판매가가 나와 있지 않을 정도다.
공개 행보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소박한 대통령 부인’을 이미지 메이킹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통령실 분위기에 정통한 법조인은 “초창기에 소박한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 호평받으면서 팬클럽까지 생기고,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김 여사의 행보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느낌이 있어 아쉬울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여사의 가족, 즉 윤 대통령 처가를 통한 언론 플레이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건희 여사의 오빠가 몇몇 기자들에게 직접 김 여사 사진을 제공하고 착용한 패션 정보를 설명해왔기 때문. 충북 구인사를 방문했을 때 입어 화제가 된 검은색 치마 사진과 가격(5만 4,000원), 윤 대통령 부부의 첫 해외 순방길 때 김 여사가 착용한 발찌 가격(32만 7,000원) 등은 모두 김 여사의 오빠를 통해 언론에 알려졌다. 대통령실을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김 여사의 ‘패션 아이템 관련 홍보’를 놓고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지율도 이를 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다. 3주 연속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설 정도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종합 뉴스 통신사 뉴스핌의 의뢰로 지난 7월 2일부터 4일까지 전국 유권자 1,02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 응답률 3.5%) 윤 대통령 지지율은 42.6%로 전주(45.3%) 대비 2.7%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전주(49.8%) 대비 3.2%포인트 상승 53%를 기록했다. 앞선 법조인은 “물가 상승, 경제 불안 등이 반영됐겠지만 김건희 여사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대통령실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끊이지 않는 ‘지인 찬스’ 논란
지난 6월 13일, 김건희 여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권양숙 여사 예방을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부터 ‘지인 동행’ 논란이 시작됐다. 대통령실 소속이 아닌 지인을 동행했기 때문. 과거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전무 김 아무개 씨였는데, 김 씨는 김 여사가 겸임교수로 있던 국민대에서 평생교육원 지도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지인 동행 논란은 이번 스페인 순방 일정 때도 반복됐다. 검사 출신인 이원모 대통령비서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인 신 아무개 씨를 수행원으로 일정에 참석시킨 것. 신 씨는 과거 경제방송 채널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인물로, 유명 의료재단 이사장의 딸이기도 하다. 아나운서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유명 의료재단 관련 업무를 담당해왔다. 이원모 비서관과 신 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중매로 만난 인연으로 2013년 1월 결혼했다. 윤 대통령은 이보다 수개월 앞서 김건희 여사와 결혼했는데, 이들 부부는 그 후로도 가깝게 지내온 바 있다.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이원모 비서관은 1980년생으로 검사 퇴직 후 윤석열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인사 검증을 도맡아왔다. 신 씨를 둘러싼 의혹은 ‘비선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실 소속이 아닌 신 씨가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한 데다 대통령 부부의 마드리드 숙소에 함께 머무르는 등 동행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신 씨는 항공편과 숙소를 지원받았는데, 수행원 신분으로 별도의 보수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신 씨가 11년가량 유학하는 등 해외 체류 경험이 풍부해 영어에 능통하고, 기존 회사에서 국제 교류 행사 기획 등을 담당해 관련 경험이 풍부해 도움을 주게 됐다”고 해명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꼭 발탁해 데려갔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신 씨가 대통령 부부와 오랜 인연이 있다”며 “행사 기획이라는 게 여러 분야가 있고 전문성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 부부의 의중도 잘 이해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상식’을 고려하지 않은 행보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실제 신 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난해 7월 26일 대선 예비 후보 신분이던 윤 대통령에게 각각 1,0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모두 만난 적이 있는 한 법조인은 “김 여사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 있어 하는데, 본인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여론은 고려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다”며 “자꾸 지인을 동행시키는 일을 반복해 논란을 만들지 말고, 공약을 뒤집는 꼴이 되더라도 제2부속실을 만들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채용해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게 논란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아직 ‘제2부속실 부활’에 대해 소극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만들 계획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부속실 내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김건희 여사 업무가 생기면 그 안에서 충분히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