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요, 횡성루지체험장
횡성역에 도착한 강릉선 KTX 열차가 한 무리의 승객을 내려놓고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간다. 승강장을 둘러싼 겹겹 능선이 아스라하니, 비로소 횡성에 왔음을 실감한다. 고속도로도, 고속철도도 없던 시절에 비하겠느냐마는 횡성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란 말의 실체를 확인하게 하는 고장이다. 산과 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계절, 마침 비 온 뒤 물을 잔뜩 머금은 숲이 어느 때보다도 팽팽한 활기를 뿜어내고 있다. 우리의 여정은 저 푸른 산을 내리달리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관동 옛길 따라 시간을 달린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흥인지문부터 강원도 평해(오늘날의 경북 울진)에 이르는 길을 관동대로라 했다. 횡성 땅에 살던 옛사람들은 보고 싶은 이를 만나거나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해 이 관동대로를 두 다리로 오르내렸을 테다. 깊고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험준한 길, 오늘날의 42번 국도가 바로 이 관동대로를 따라 난 도로다. 횡성루지체험장은 42번 국도의 옛길에 놓여 있다. 2013년 전재터널이 생긴 이래 쓰임을 잃고 방치됐던 우천면과 안흥면 사이 고갯길이다. 여느 루지체험장처럼 코스를 새로 만들지 않고 이 길을 재활용했으니 시대정신에 부합한 친환경 놀이터다.
시작점은 전재 정상이다. 매표소에서 헬멧을 챙긴 뒤, 전기 카트를 타고 출발 지점까지 올라간다. 2.4km의 기나긴 길은 한때 구불구불하기로 악명 높았으나 루지를 타고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코스가 됐다. 낭떠러지를 실감 나게 재현한 트릭아트를 지나면 괴물 나무와 폭포, 반짝반짝 별이 빛나는 우주 터널을 차례로 맞닥뜨린다. 매화산 골짜기의 수려한 산세를 구경하다가, 숲에서 밀려온 시원스러운 바람을 맞다가, 짜릿한 가속 구간을 지나면 어느덧 ‘FINISH’라는 글자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 이토록 눈 깜짝할 새 끝나다니.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안 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탄 사람은 없다는 루지 아닌가. 새로운 마음으로 헬멧을 움켜쥔 채 두 번째 탑승권을 끊고, 저 까마득한 고개를 다시 오른다.
횡성루지체험장
실제 도로를 코스로 활용해 주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탑승권 1장당 3,000원의 횡성관광상품권을 제공하니 살뜰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문의 033-342-5503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횡성역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맛봐요,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느긋하고 달콤해지는 안흥찐빵의 고장, 안흥면 안흥리. 전재터널을 지나 서동로를 쭉 달리면 주천강(酒泉江)을 맞닥뜨리는데, 이를 우리말로 풀어 쓰면 ‘술샘’이다. 먼 옛날 이곳 물을 길어 막걸리를 빚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강 위에 놓인 실미교를 건너자마자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인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이 나타난다. 마스코트 빵양과 팥군이 우리를 맞는다.
콧노래 부르며 찐빵 만들기
“새하얀 반죽 주물주물, 새하얀 막걸리 콸콸콸~.” 노래와 함께 본격적으로 찐빵을 만들어본다. ‘안흥찐빵 송’이 설명하듯 안흥찐빵의 반죽에는 본래 막걸리가 들어간다. 1960년대 안흥면은 영동과 영서를 가로지르는 이들이 잠시 쉬어 가던 교통의 요지였는데, 이 동네서 막걸리를 팔던 가게 주인장이 술을 넣어 숙성한 반죽으로 찐빵을 쪄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허기와 피로에 지친 객들에게 단돈 5원에 찐빵과 시래깃국 한 그릇을 주었다. 모두가 배고픈 시절, 이만큼 값싸고 든든한 에너지원도 없었을 테다. 오늘날 대중화된 안흥찐빵의 기원은 1990년대 안흥면사무소 앞 찐빵집에서 찾을 수 있다. 고랭지 채소를 팔러 강릉과 서울을 오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난 이 집 찐빵이 TV에 등장했고, 전국에 알려진 것이다. 안흥찐빵은 이를 계기로 안흥을 넘어 횡성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이곳에선 안흥찐빵을 손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도록 1차 숙성한 반죽을 제공한다. 이것을 다섯 덩이로 나눠 팥소를 넣고 동그랗게 굴리면 우리에게 익숙한 찐빵 형태가 된다. 재미있는 시간은 지금부터다. 흰 찐빵 위에 말차와 단호박 등을 넣은 색깔 반죽으로 장식을 만들어 얹는다. 꽃, 나비, 애벌레, 외계인, 혹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며 정성껏 빚는다. 짠! 드디어 그이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찐빵을 완성한다.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찐빵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오전 10시, 오후 2시에 진행하며 예약이 필수다. 찐빵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초코스모어쿠키’와 ‘팥아몬드초코칩쿠키’를 만든다. 컵 만들기, 팥 찜질 팩 만들기 체험에 도전해도 좋다.
문의 033-344-5990
쉬어 가요, 횡성호수길
잔잔한 수면 위에 찐빵처럼 뽀얀 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이곳은 갑천면 구방리의 횡성호수길 5코스 B구간이다. 총 6개 코스, 31.5km에 이르는 횡성호수길 탐방로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구간이다. 푹신한 흙이 깔린 완만한 길이라 누구든 걷기 쉽고, A코스와 B코스가 누운 8자 모양으로 원점 회귀하는 순환 코스다.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공존하는 숲,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맑고 깨끗한 호수를 끼고 걷는 길이니 그 아름다움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은사시나무가 춤추는 숲으로 한 발짝
“여기 좀 보세요. 청설모가 잣 껍데기를 이렇게 까놓았지요?” 횡성호수길을 5년간 보아온 고범수 문화관광해설사만큼 탐방로 생태계에 훤한 이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무 밑동에 이빨 자국 선명한 잣 껍데기 조각이 흩뿌려져 있다. “저기 저 구멍은 딱따구리가 쪼아놓은 거예요. 딱따구리는 죽은 나무를 쪼는 습성이 있지요.” 탐방로를 한 발짝씩 내디딜수록 그의 손길이 점점 바빠진다. 은사시나무 군락에 닿았을 때, 잠시 숨을 돌리고 걸음을 쉬어 가기로 한다. “여름엔 이렇게 숲 그늘에 가만히 앉아 물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만큼 좋은 것도 없어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나, 놀라곤 하죠. 하나, 둘, 이별한 사람들이 떠오르거든요.” 공근면 덕촌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고범수 문화관광해설사의 목소리가 물처럼, 삶처럼 흐른다.
숲속에 들어앉아 호수를 바라보니 검고 가느다란 은사시나무 뒷모습이 꼭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의 프레임처럼 수변 풍경을 구획한다. 문득 상상한다. 먼 옛날 이곳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횡성호는 갑천면 대관대리의 횡성댐을 건설하면서 형성된 호수다. 댐 완공 후 구방리, 중금리, 화전리, 부동리, 포동리의 5개 마을이 수면 아래 잠겼다. 학교도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화성초등학교. 지금까지도 이 초등학교의 동창회가 열린다는데 괜히 마음 한편이 찡하다. 탐방로의 시작점인 망향의 동산 옆에 자리한 화성의 옛터 전시관에 가면 진짜 필름 사진으로 이곳의 옛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전시관 앞엔 중금리 탑둔지의 절터에서 발견된 2기의 귀한 삼층 석탑이 나란하다.
횡성호수길 5코스
마을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자연히 생겨난 A코스, 탐방객을 위해 새로이 닦은 B코스로 이루어진다. A코스는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원두막 쉼터를 반환점 삼아 한 바퀴 도는 길이고, B코스는 A코스의 원두막 쉼터에서 출발해 목선 모양의 전망대인 횡성호 쉼터를 찍고 다시 원두막 쉼터로 복귀하는 길이다. 문의 033-343-3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