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서울 청담동을 말하면 박지원이란 이름이 뒤따랐다.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 김행자의 딸인 그녀는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미국 파슨스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 김행자와 함께 만든 브랜드 ‘애티튜드’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지원박’의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후 뉴욕에서 패션 브랜드를 론칭해 2003년 미국 <보그>가 꼽은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시기 맛과 분위기로 연예인을 비롯한 청담동 핫피플의 성지로 꼽혔던 레스토랑 ‘파크(PARK)’를 운영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6년 박지원은 돌연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하며 3명의 아들을 얻은 그녀는 에르메스 버킨백 대신 시장바구니를 들고, 청담동의 휘황찬란한 건물 대신 반 평 남짓한 부엌에서 삶을 꾸렸다. 그녀는 화려함 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자연과 호흡하는 소소한 삶을 SNS에 공유했다.
청담동 여자, 홀연히 유럽으로 떠나다
작가로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에세이집 <애플 타르트를 구워 갈까 해>를 출간했죠.
부엌 앞 테이블에 앉아 써 내려간 글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저 자신이나 식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썼어요. 누구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각 에피소드에 녹아 있어요.
요리를 통해 본 삶에 대한 고찰이 책의 주 내용이죠. 왜 요리였나요?
인간관계에서 먹는 것만큼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없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한번 먹자”라고 인사하고,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돼”라면서 식사 초대를 하잖아요. 그런데 유럽에선 친한 사람이 아니면 밥을 함께 먹는다거나 집에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 누군가를 초대해 밥 한 끼를 대접하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친한 사이가 되더라고요.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요리가 주는 힘이 대단해요.
어떤 요리를 했나요?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어요. 쉽게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소개하는 레시피는 다 단순해요. 매 끼니를 ‘뭘로 때우지?’가 아니라 ‘무엇을 먹지?’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마음이 즐거우면 장바구니를 들고 식재료를 사러 가고, 재료를 다듬고, 지지고 볶는 요리 과정이 즐거워요. 요리와 음식이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프랑스 파리·노르망디로 거처를 옮기며 살아도 부엌만 있으면 살 수 있었어요. 요리를 하고 함께 식사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사귈 수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밥정이 무섭죠.(웃음)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엔 밥이 있어요. 밥을 먹으며 추억과 사랑을 쌓아요. 남편과 저는 매주 금요일 저녁, TV와 휴대전화를 모두 끈 뒤 촛불을 켜고 와인을 따라 마시며 시간을 보내요. 서로가 한 주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죠. 처음엔 조금 어색했는데 매주 하다 보니 우리 부부만의 전통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우리 부부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두 아들 루카와 지안도 엄마를 생각하면 ‘밥’을 떠올린다고 했죠.
지금은 떨어져 사는 두 아들에게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라고 물으면 “엄마 밥”이라는 답변이 돌아와요. 제 음식 솜씨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한 사랑이 들어간 음식이라 다르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엄마의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화려한 삶을 두고 돌연 한국을 떠났었죠.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뉴욕에서 제 브랜드를 만들고 활동하던 때였어요. 뉴욕컬렉션이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뒤 혼자 브라이언 파크에 앉아 있는데 공허했어요. 스스로에게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물어봤어요. 저는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었던 거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정을 꾸리는 게 저의 꿈이었죠. 돌아보면 제 마음속엔 늘 외로움이 있었어요.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늘 바쁘셨는데 부족한 것은 없었지만 허전했죠. 어렸을 때 집에 가면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거든요. 그런 가정을 제가 만들고 싶었나봐요.
모든 것을 던지고 가서 생긴 커리어의 빈 공간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그 대신 가족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어요. 생각해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사랑이 더 커요. 아들들이 있었기에 음식도 하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쓸 수 있었죠.
작가님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이혼하고 싶다면 이혼한 여자의 삶이 행복해 보일 것이고, 내가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한 여자가 행복해 보일 거예요. 늘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좇는 게 삶이란 의미죠.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행복으로 바꾸는 에너지를 갖고 있느냐예요. 100% 만족하는 삶은 없고, 긍정과 부정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으니 행복은 어떤 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음식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일상이요. 저는 부엌 앞 테이블을 가장 좋아해요. 집이 크든 작든 중요하지 않아요. 부엌만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으면 돼요. 부엌에서 요리도 하고, 사랑과 우정도 나누고, 글도 쓰고 있죠. 작은 부엌이 곧 제 세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