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의 기억력은 얼마나 될까? 방금 숨긴 장난감 위치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수년 전에 헤어진 주인을 기억하는 반려견도 있으니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강아지 샤론은 산책할 때면 예전 주인인 어느 할아버지와 살던 아파트 방향으로 자꾸 나를 이끈다. 15년 전인데도 할아버지와 살던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걸까? 그럴 때마다 샤론이 대견하기도 하고,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나와의 시간은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첫째 강아지 샤론과는 15년 전 어느 더운 여름, 길에서 만났다. 한두 살로 추정되는 믹스견으로, 수소문 끝에 그 강아지의 이름이 샤론이고 할아버지가 혼자 키웠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할아버지의 가족은 찾을 수 없었고 샤론은 나의 가족이 됐다. 20대 후반에 만나 40대인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샤론은 16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동안이고, 매우 건강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엔 산책을 나가면 가끔 어르신들이 묻는다. “이 아이는 나이가 좀 있나?” 나보다 산을 잘 탔던 샤론은 이제 관절이 아프기 시작해 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오래 걸으면 절뚝거리기도 하고 익숙한 산책길인데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기도 한다. 샤론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면 1살이라도 젊을 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이번 여름엔 샤론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샤론에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망설였는데 더 늦어지면 정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론의 장거리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강원도 양양까지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다. 샤론에게 그때 처음 바다를 보여줄 수 있었다. 발에 물이 묻는 걸 너무 싫어했던 샤론은 이날 바다를 흠뻑 경험한 뒤부터 신기하게도 발에 물이 닿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샤론이 바다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샤론은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아름다운 제주 풍광 역시 기억해줄 것이다.
오래전 남프랑스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어디를 가든 반려견과 함께 식사하고 즐기는 일상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부부의 저녁 테이블 아래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대형견, 티타임을 즐기는 중년 여성 옆에 앉아 있는 강아지. 누구 한 사람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는, 여유로운 마음이 느껴지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우리 강아지들과 그런 문화 속에 살 수 있을까? 그런 멋진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을까? 이번 제주도 여행이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고, 이번 여름이 샤론에게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15년 전의 시간을 기억하고 찾아가듯 나와 함께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나의 샤론이 나중에 먼 곳으로 가도 나에게 찾아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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