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에서 정계에 입문해 대선 도전까지 스텝 바이 스텝을 밟아온 심상정(63세) 정의당 대선 후보.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살벌한 시위 현장을 누비면서도 긴 생머리에 스커트를 입고 7cm 굽의 구두를 포기하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가로 일할 때, 3살 연상의 남편 이승배 시민단체 이사장을 만나 수배 상황 속에서도 불꽃같은 연애를 했다. 남편은 정치하는 아내의 외조를 위해 기꺼이 전업주부가 된 든든한 조력자다.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본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로 나서 6%의 득표를 얻은 심상정. 주로 청년, 노동자, 소외계층 등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비주류를 주류로 만드는 건 어쩌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의 정치를 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 리더로 또다시 대권에 도전한다.
일하는 아내, 주부 남편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두 번째 도전입니다.
심상정 그때보다 시민들의 삶이 더 어려워진 거 같아요. 청년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고 좌절하죠. 그래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돼요. 시민들에게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드릴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있죠.
심상정 후보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나요?
심상정 결국 세상은 시민의 힘으로 바꿔가는 겁니다. 그동안 “고생 그만하고 큰 당에 가서 정치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어요. 큰 당에 간다면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정치를 시작한 건 세상의 변화를 원해서였어요. 비주류로 있는 수많은 시민과 함께 주류로 가는 과정이 변화의 과정이고 발전의 과정이에요. 주류에 있는 사람은 가진 것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어요. 만일 저도 큰 당에 가면 거기에 몰두하겠죠. 저에게는 ‘수많은 비주류의 시민과 함께 주류가 되는 것’이라는 목표가 있어요. 지금도 목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과 함께 나아가는 정치가 저만의 전략이에요.
오늘 함께한 남편과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인가요?
심상정 남편은 최고의 모니터 요원이에요. 저의 정치에 대해 가장 냉철하게 평가해요. 사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면 너무 지쳐서 정치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가 있어요. 알아차렸는지 요즘은 글로 써서 줍니다. 말로 들을 때는 잔소리 같았는데 글로 읽으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아요. 지지율이 낮은 것에 대해 항상 안타까워하죠.
이승배 경험 많고 능력 있고 가장 많은 준비를 해온 후보라고 생각해요.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운명을 바꾸는 것인 만큼 잘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최근 방송에서 갈치조림으로 식탁을 차린 남편 이승배의 외조가 주목받았는데, 어떻게 외조를 시작하게 됐나요?
이승배 노동운동을 하면서 아내를 만났어요. 가부장적인 전통 윤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설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죠. 2004년 심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맞벌이 부부였어요.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이 사람이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전업주부로서 외조를 담당하게 됐습니다.(웃음)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사람에게 가사 노동까지 전담시키며 슈퍼우먼이 되기를 요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심상정 지난 대선 때 저의 1호 공약이 ‘슈퍼우먼 방지법’이었어요. 여성들의 삶이 더 이상 고달프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만큼은 정치하면서 꼭 이뤄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외조를 점수로 환산하면 몇 점일까요?(웃음)
심상정 여성 정치인의 남편이 돼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100점 만점에 200점이라고 생각해요. 종종 “집안일을 대신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냐”는 질문을 받는데 미안하지는 않아요. 서로 여력이 되는 만큼 가사 분담과 육아를 나눠야 하니까요. 남편도 같은 마음이라 부부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었죠.
연애 시절 누가 먼저 대시를 했나요?(질문을 듣자 남편 이승배 이사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승배 구로동에서 노동운동을 할 때 아내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여성 후배들과 함께 조직적이고 획기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죠. 그땐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한 단체에서 일할 때 연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됐죠. 듣던 대로 배울 점도 많고 생산적인 관계로 진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성으로서 매력도 있었고요.(웃음)
연애 시절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심상정 당시 수배 상황이었어요. 자유롭게 만나고 싶을 때 만나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죠. 한번 만나려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야 했고 일정과 장소를 조율해 만나야 했어요.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은 들켰습니다. 안기부(안전기획부)의 주목 대상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민간 사찰이 흔하던 시기였어요. 남편을 불러 저와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추궁하는 일도 있었죠.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심상정 이 사람이라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당시 여성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을 계속하려면 결혼을 포기하는 게 수순이었거든요. 지금의 남편이 아니었다면 노동운동 대신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결론적으로 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데 있어 든든한 파트너가 될 거란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또 주변에서 입을 모아 남편의 인품과 평가를 좋게 해줘서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승배 주변에서 “심상정은 결혼 안 할 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면 일과 결혼 생활을 동시에 잘해낼 수 있을 거 같았죠.
심상정을 찍는 표는 사(死)표가 아닌 생(生)표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약속한 부분은 꼭 지킬 거예요.
심상정의 표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변화가 빨라질 겁니다.
심상정의 두 번째 도전
심상정은 거대 양당 사이에 낀 소수 진보 정당을 이끌며 지금까지 4선 의원의 쾌거를 이뤄냈다. 처음 정의당 대표가 됐을 때는 1만 5,000명에 불과했던 당원 수를 4개월 만에 2만 2,000명으로 늘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당과 제1야당의 공고한 경쟁 구도 속에서 낮은지지율은 심상정이 직면한 과제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을 두고 실현 가능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상정 모든 공약과 정책은 미래를 기준으로 설계해요. 돌이켜보면 주5일제가 될 때 나라가 망한다고 했어요. 또 병사 월급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죠. 결과는 어떤가요? 변화를 이뤄냈잖아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게 정치의 역할입니다.
여러 공약 가운데 주4일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가능한 일인가요?
심상정 주4일제 실시와 관련 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모아 주4일제 시민추진본부를 구성하는 게 시작일 겁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5인 미만 사업장, 정부 부처 등이 모여야 하죠. 이들이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리고 1년 반 정도 시범적으로 실시해 결과를 분석하고 단계적으로 전 사업장에 확대해나가면 실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표준시간대로 일하는 사업장에서 실시해보고 2교대 사업장이나 여성이 밀집된 사업장, 탄소 배출 저감이 필요한 기후 위기 관련 사업장 등에서도 다양하게 시범 실시를 해보는 겁니다. 이후 결과를 종합해 제도화의 로드맵을 만들자는 것이죠.
코로나19로 인해 기초적인 생계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인데 어떻게 해결해나갈 생각인가요?
심상정 가장 시급한 부분은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책입니다. 자영업자 이자부채탕감 방안은 저의 공약입니다. 2021년 시중은행 상반기 순이익이 8조원입니다. 자영업자 부채 탕감을 위해 고통을 분담해야 하죠. 또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회의 사회안전망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얼마 전 ‘시민평생소득’이라는 21세기형 신복지국가 모델을 공약으로 발표했어요. 시민평생소득 체제는 ‘시민최저소득’, ‘범주형 기본소득’, ‘전국민소득보험’까지 삼중 구조로 구성됩니다. 최저소득으로 시민의 삶을 보장하고,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빈틈을 채우고, 소득보험을 통해 위기에 대비해 시민의 소득을 지켜드리는 종합 소득보장 정책입니다.
심상정이 꼭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승배 대통령은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편에 선 정치인은 아내밖에 없었어요. 심상정이 사라지면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심상정이 말을 안 하면 비정규직의 아픔이 주목받지 못하고, 심상정이 화를 내지 않으면 온갖 기득권의 특권이 난무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심상정 시민들이 거대 양당 후보들의 공약이나 발언에 기대감을 갖고 34년 동안 표를 내줬지만, 그 결과는 극단적인 불평등을 낳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과감한 기득권의 재조정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후 위기가 목전에 와 있는데, 다들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세대는 괜찮을 수 있지만 청년 세대나 자녀 세대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어요. 결국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전환의 정치가 시작돼야 하고 최고의 적임자가 저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심상정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국민들을 통합하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이죠. 명확하게 국민의 편에 서는 대통령이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20년 동안 정치하면서 저는 국민들이 쥐어준 힘만으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기득권 정당에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재벌들의 눈치를 본 적도 없습니다. 항상 시대적으로 당면한 과제에 집중했습니다.
이승배 아내의 경우 지역구에서 3선, 전체 4선 의원인데 지역구에서 당선됐다는 건 민주당 당원, 보수당 당원까지 아내에게 표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분들의 노선과 생각이 아내의 정치와 다를 수 있지만 정치인 심상정이 힘을 갖는 것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표를 주신 거죠.
대선 후보들의 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승배 이사장은 이런 문제에 떳떳한가요?
이승배 논란이 돼도 길거리를 지나다 몰래 쓰레기 버린 모습을 걸리는 정도 아닐까요?(웃음) 작정하고 파고들면 먼지가 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 같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가족까지도 공인 정신, 즉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사적인 욕심이 많다면 그 사적인 욕심을 충족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사적인 욕심이 큰 사람이 공적인 부분까지 책임지려고 하니까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는 솔직히 자신 없을 이유가 없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거, 어떻게 예상하는지 궁금합니다.
심상정 본격적으로 대선이 시작되지 않았어요. 지지자들에게 “나 대통령 시켜달라”는 호소에 그치죠. 대통령의 자격을 판단하는 시간은 지금부터입니다. TV 토론을 통해 국민들이 의혹을 갖는 여러 문제가 밝혀져야 대선이 시작되는 거죠. 국민들은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걱정합니다. 쉽게 표를 주지 않고 검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검증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죠.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검증에 임하는 게 대통령 후보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요?
심상정 설령 낙선하더라도 심상정을 찍는 표는 사(死)표가 아닌 생(生)표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약속한 부분은 꼭 지켜나갈 거예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변화를 맞이한 데에는 진보 정당의 역할이 컸어요. 심상정의 표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변화가 빨라질겁니다.
이승배 심상정을 찍어봐야 사표가 될 것이라는 사표론은 결국 양당을 찍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양당 체제가 반복될 것이고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할 문제들이 묵인될 거예요.
끝으로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나요?
심상정 청년들이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기 개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삶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며 청년기를 보냈어요. 삶에 허덕이지 않고 차별이나 혐오가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랐죠.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 10위의 경제 선진국인데 청년을 비롯한 국민의 삶은 후진적이에요. 청년을 포함해 국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심상정(63세, 정의당)
1959 경기 파주 출생
1978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과
2004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민주노동당)
2012 제19대 국회의원(경기 고양시덕양구갑/통합진보당) 2015 정의당 당대표
2016 제20대 국회의원(경기 고양시갑/정의당)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후보
2018 제20대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2020 제21대 국회의원(경기 고양시갑/정의당)
현재 정의당 제20대 대통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