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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후보 아내 김숙희 여사, 무한긍정 내조의 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낙연 후보(더불어민주당)의 곁에서 응원하고 내조하는 아내 김숙희 여사를 만났다.

On August 20, 2021


여야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내조 전쟁'이 본격화됐다. 이낙연 후보의 아내 김숙희 여사는 지난 6월부터 일주일에 2~3일씩 호남에 머물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직접 만나 민심을 듣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도 있다는 김 여사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엄중낙연'이라 불리는 이낙연 후보의 무뚝뚝함 탈피에 일조하고 있다. 조용히 스튜디오로 들어선 그녀는 친근하고 소탈하고 꾸밈없었다. 그러나 '정치인 이낙연'에 대한 질문에는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삶과 두 사람이 함께해온 41년의 인생사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요즘 호남 지역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죠? 지난 5월부터 광주·호남 지역을 거의 매주 방문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광주의 1,000원 식당인 해뜨는식당, 남광주시장 커피 가판원, 장애인 복지관, 보육시설 등 손길이 필요한 곳에 찾아갔어요. 꾸준히 방문하니까 점차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늘고 있는데, 멀리서 저를 알아보고 일부러 찾아와서 등을 토닥이면서 "잘될 거다" "힘내라"고 응원하는 분들도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죠.

'정치인의 아내'로 산 지 어느덧 21년이 됐어요. 세상을 살면서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한편으론 정치하는 남편을 만난 것이 복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고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폭넓은 삶을 살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해요.

본래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간접경험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정치인 아내로서 삶의 묘미죠.

사람을 만나다 보면 마음이 쓰린 경험도 할 것 같아요. 제가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처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축복으로 가는데 왜 고난을 겪어야 할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살다 보니까 어려움을 거치지 않고선 축복으로 갈 수 없더라고요. 이젠 어려움이 생기면 '나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사인을 보낼까?'라고 기대하게 돼요.

고난은 축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18년 전에 아들이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됐어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죠. 술을 많이 마시면 간암,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리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 갑자기 뇌를 수술해야 된대요. 수술해도 예후가 어떻게 될지 몰랐어요. 식물인간이 되거나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남편이 정치적으로 힘들었던 때도 그때의 힘듦에 비교되지 않아요.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었으니까요. 처음엔 기가 막혀서 화가 나더군요. 눈물도 흘리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빌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들이 22년 동안 내게 즐거움을 줬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어요. 생사를 결정하는 건 하나님의 몫이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일에 담대해질 수 있었어요. 남편에게도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죠.

 


현재 아드님은 의사로 활동 중이죠?
전화위복이라고 그 일을 계기로 아들이 의사가 됐어요. 사실 아들이 수술을 받고 후유증이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겠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힘들게 공부하지 말고 평범하게 회사원으로 살라고 말렸어요. 그런데 아들이 꼭 도전하고 싶다고 해서 결국 허락했는데 입시에 한 번 실패 후 재수하던 때 또 다른 인연을 만났어요. 아들이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신경정신과에 가보고 싶다길래 동네 병원을 갔어요. 나이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면서 신경정신과 의사를 해보라고 권유했죠. 아들은 그 조언이 인상 깊었는지 지금 정신과 의사가 됐어요. 인연이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거예요.

아드님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할 동기부여를 찾았네요. 본인이 할 마음이 생겨야 공부를 하더라고요. 아들도 사춘기 땐 공부를 싫어했어요. 저는 속으론 답답했지만 공부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죠. 그렇게 몇 달 후에 아들이 중간고사에서 영어 시험을 망치고 오더니 그룹 과외를 시켜달라고 하더라고요. 기회다 싶어 일정 기간 불평불만 없이 과외를 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고, 몇 달 뒤 영어 듣기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어요. 그때 자신감을 얻어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자유방임으로 나뒀다가 성공한 케이스예요.

미술 교사로 일하는 워킹 맘이셨는데 그 시절의 육아는 어땠나요? 제가 워킹 맘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건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커요. 어머니께서 여자도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거든요. 친정어머니가 있는 전주에 아들을 맡겨놓고, 주말마다 내려가서 보고 다시 올라오는 생활을 5년 동안 했어요. 그래서 남편은 지금도 아이가 성장할 때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해요. 어느 날 보니 누워 있던 아이가 앉아 있고, 또 얼마 뒤에 보니 걷고 뛰어다니고 있었대요. 그래서인지 손주들이 크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대요.

육아 정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들 부부도 7살 딸과 5살 아들을 키우고 있어 젊은 부부들의 일이 남 일 같지 않거든요. 여성들의 출산휴가, 육아휴직이 일반화된 것처럼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일반화됐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1년, 아빠가 1년 총 2년 동안 아이를 돌보면 어느 정도 숨 쉴 여유가 생기거든요. 제도가 촘촘하게 마련되면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에요.

아빠로서 이낙연 후보는 어땠나요? 워낙 바쁘게 살아서 아들과 보낸 시간은 적었지만 늘 한결같았어요. 솔선수범하는 아버지였죠.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대신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타일이었어요.

남편으로선 어떤가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남편이 함께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죠. 한편으론 귀엽기도 해요. 밖에서는 '엄중낙연'이라고 하던데 집에선 가벼운 농담도 하거든요. 언젠가 제 생일을 잊고 지나가기에 불평했더니 "365일 중에 내 생일 하루만 빼고 나머지는 다 당신 생일로 알고 사네"라는 거예요. 할 말이 없어서 웃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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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처음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축복으로 가는데 왜 고난을 거쳐야 하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까 어려움을 거치지 않고선 축복으로 갈 수 없더라고요.

'심쿵'하게 만든 중저음 목소리

이낙연 후보와 김숙희 여사는 중매로 만났다.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지인이 갑작스레 김숙희 여사에게 "오늘 선을 봐야 한다"고 연락했고, 그녀는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하고 맞선 장소에 나갔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이낙연 후보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질 때 명함을 한 장 받았는데, 며칠 뒤 준비 없이 선 자리에 나간 것이 마음에 걸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오후 4시까지 전화를 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전화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오후 4시에 전화가 걸려왔나요? 정각 오후 4시에 딱 전화가 오더라고요. 중저음의 목소리로 "이낙연입니다" 하는데 '심쿵'했어요. 왜 전화를 걸었냐고 묻길래 차를 한잔 사고 싶다고 했어요.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친구를 데리고 나온 거예요. 오랜만에 연락된 고향 친구라 데려올 수밖에 없었대요. 두 사람의 대화에 제가 낄 틈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째 만남도 흐지부지되는 듯했고, 밤이 늦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려고 했어요.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려는데 남편이 같이 타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더라고요. 당시 저는 신반포 쪽에 살고 남편은 광화문 쪽에 살아서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밤에 여자 혼자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나 봐요. 그 모습을 보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호감이 상승했을 것 같아요.(웃음) '이 남자, 괜찮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며칠 뒤에 전화가 걸려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또 제가 전화를 걸었어요.(웃음) 처음과 같은 내용의 메모를 남겼는데 정각 오후 4시에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이번엔 둘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른스럽다고 느꼈고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다음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날부터 결혼할 때까지 5개월간 매일 만났어요.

'엄근진' 이낙연 후보는 연애할 땐 어땠나요?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다감한 스타일이에요. 남편은 어떤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중에 꼭 저를 데리고 갔어요. 그때 처음으로 일식집에서 생선회를 먹어보고, 호텔 음식점에도 가봤죠. 남편 덕분에 맛집을 많이 다녔어요.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어요?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할 겨를이 없었어요. 신문기자들이 얼마나 바빴겠어요. 사실 연애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제가 "차 한잔해요"라는 전화를 걸어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고 남편에게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으면 당신이 연락했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마 안 했을걸"이라고 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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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후보와 김숙희 여사는 1980년 8월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다.
김 여사는 기자에서 국회의원, 도지사, 국무총리, 당대표로 바쁘게 일한 이 후보 곁을 41년간 변함없이 지켰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니까 어땠나요? 신문기자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바쁘더라고요. 매일 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는 일상이 반복됐어요. 처음엔 적응하는 게 힘들었는데, 이 남자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책임감만큼은 지금까지도 한결같아요. 정치에 입문하고부터는 주말 없이 살고 있어요. 국회의원 시절에는 주말마다 지역구에 내려가 지역민들을 만나고, 도지사 시절에는 전라남도에 있는 섬들을 관광 지역으로 특화시키고 싶다며 1,000개가 넘는 섬을 샅샅이 찾아다녔어요. 국무총리가 됐을 땐 한가해지려나 싶었는데 전국 곳곳을 살피러 가더라고요. 이낙연 후보를 지지해준 분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남편은 90%의 에너지를 밖에서 쓰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에요.

이낙연 후보의 성향을 알기에 내조에 더 공을 들일 것 같아요. 밥하는 게 전부예요.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손맛이 좋아서 집밥을 한 상 차려 든든하게 먹이죠. 남편은 일할 때 깐깐한 스타일이라 아랫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그걸 아니까 한 번씩 직원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어요. 밥 한 끼를 먹으면서 쌓은 정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저와 연락하고 지내는 직원이 많아요. 남편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인복의 시작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면서요? 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남편은 영광에서도 법성면 작은 마을에서 자랐어요. 당시 분교를 다녔는데 젊은 선생님이 부임해 남편을 보곤 시부모님께 "중학교를 광주로 보내야 된다"고 설득하셨대요. 시부모님은 광주에 지인도 없고 가난한 집이라서 안 된다고 거절하셨는데 선생님이 "갈 데가 없으면 우리 집에라도 데리고 있겠다"며 허락을 받았고 사비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주면서 공부를 시키셨대요. 그렇게 광주로 유학을 가서 서울대 법대를 갈 수 있었어요. 만약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남편은 지금의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그 선생님이 이낙연후원회의 회장님을 맡으셨다고요? 남편이 국회의원이 되고 선생님을 찾았는데 광주의 한 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셨더라고요. 선생님께 이낙연후원회의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부탁드렸죠. 남편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이젠 그 도움을 국민에게 돌려드릴 때가 온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낙연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을 믿고 의지해요. 남편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죠. 국무총리 시절 남다른 책임감과 업무 능력으로 국민에게 인정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고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남편 같은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국민 여러분이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이낙연 후보 측 제공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체체쌀롱)
2021년 08월호
2021년 08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김정선, 이낙연 후보 측 제공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체체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