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연구가 외희는 늘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을 낮춘다.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신성시한다.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후원을 자처한 것도 오래전부터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예술과 공간이 어우러진 공간, 바로 '환희재'다. 이곳에서 한복도 만들고 예술품도 전시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짓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등 의식주에 관련된 것을 만들다" 혹은 "농사를 짓는 등 업으로 삼아 일을 하다"이다. 한복연구가 외희는 평생 '짓다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한복을 짓고, 집이라는 공간을 짓는 것이 결국은 꿈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30대에 한복 공부를 시작해 전통한복은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한복연구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한복은 독특하고 우아한 색감과 모던한 디자인의 조화로 특히 로열패밀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그의 쉼터이자 작업 공간인 환희재는 설계부터 시공, 인테리어까지 3년 동안 직접 발품을 팔아 완성한 결과물이다. 한결 따뜻해진 봄볕과 더불어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날에 환희재를 찾았다.
개인 주택이라고 하기엔 외관도 독특하고, 구조도 특이합니다. 사실 이 집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은 집입니다. 설계할 때부터 도면 하나하나를 체크하면서 건축가와 협의하고 제 아이디어를 반영했는데, 주거는 물론 작업 공간이자 앞으로 예술품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갤러리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지었어요. 본채와 따로 떨어진 별채도 만들었고, 예술품을 전시했을 때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석구석 신경을 썼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주춤하기는 하지만 별채에서는 한복 클래스도 열고 있어요. 주거하는 본채와 달리, 별채는 좀 더 아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곡선을 사용하고 타일 등 디테일에 신경을 더 썼어요. 인테리어도 기존 제품과 제가 의뢰해 제작한 제품들, 작가들의 예술품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도록 배치했답니다.
집을 환희재라고 이름 지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빛날 환(奐), 빛날 희(熙), 한마디로 밝고 환한 집이에요. 보시는 것처럼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집이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을 지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채광이에요. 집 안 곳곳에 창을 내서 자연광이 옆에서, 앞에서, 위에서 잘 들어오도록 설계했어요. 그래서인지 굉장히 따뜻해요. 해가 질 때까지 조명도 난방도 하지 않을 정도로 아늑한 느낌이 들죠. 이곳에서 밝게 웃으며 즐거운 일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우리는 이사하면 꼭 집들이를 할 정도로 집 구경하는 걸 좋아하죠.(웃음) 환희재는 어떤 공간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본채는 1층과 2층, 그리고 지하로 구성돼 있어요. 거실과 계단 등 곳곳에 제가 좋아하는 이목을 작가와 이영임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취향을 반영한 갤러리의 느낌을 살렸죠. 이목을 작가는 일반적인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직접 나무로 캔버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해요. 제가 존경하는 예술가이기도 하죠. 거실은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통창을 통해 햇살이 잘 들어오고 정원이 한눈에 보여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죠. 또한 현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손님 화장실과 게스트 룸을 배치했어요. 손님들이 밝고 환한 집 안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창을 크게 내고, 역시 이목을 작가의 '스마일' 작품을 걸었어요. 또 작은 정원의 느낌이 나게끔 통창 밖에 나무를 심었어요. 지하는 저를 위한 공간이에요. 작업하고 휴식할 수 있는 저만의 비밀 공간 같은 느낌이죠.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모아놓은 공간이기도 한데, 저는 작품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보관하고 있어요. 밖을 나와 정원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 별채를 만나게 되는데, 한복 클래스도 열고 손님들도 머물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이에요. 나중에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특별히 신경을 썼어요.
우스갯소리로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과정은 어땠나요? 설계부터 공사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하니 주위에서 '아파트 지었냐'는 농담을 하기도 해요.(웃음) 지난 10년 동안 건축 여행을 다녔는데 그 건축 여행의 결과물이 바로 이 집 환희재예요. 건축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 중 100장을 추려 참고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짓기 위해 공정을 세분화했어요. 조경, 토목, 시공, 인테리어 등을 다 따로따로 맡겼어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조율했죠. 그들과 함께 자재도 직접 다 보러 다녔어요. 관련 분야 책과 자료를 찾아보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니까요. 제가 꼼꼼하게 점검하니 일하는 분들도 더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았어요. 제가 환희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가회동의 '갤러리 외희'를 지어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갤러리 외희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서울 북촌 가회동에 있는 한옥 공간이에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한복 만드는 사람이니까 한옥에서 바느질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옥을 찾아다녔어요. 3년 만에 만난 마음에 드는 집이었죠. 노부부가 30년 동안 살던 집인데, 사람들은 단순히 허름하다고 했지만 제 눈엔 보석 같았어요. 남향 문에 남향집이라는 것도 중요했죠. 공사를 시작할 때는 크게 고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뜯어보니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11개월이나 걸렸어요. 애초엔 한옥 전문가에게 공사를 맡기려고 했다가 뻔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현대건축을 하는 분과 함께 한옥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원형은 변하지 않되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요.
외희 갤러리는 현재 북촌의 랜드마크가 됐죠?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클래스, 전통 배냇저고리 클래스, 메밀 베개나 도자기 초롱, 향주머니 등 전통 오브제나 소품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엔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건축가인 남자 주인공 지창욱의 집으로 등장해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셨죠. 공간의 특징을 부연하자면, 방이 다섯 개인데 다 중문으로 나뉘어 있어 중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이 돼요. 개별성을 중시하면서도 하나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 거죠. 예전부터 사랑방이라고 하면 툇마루가 있고, 바깥주인의 생활공간이자 '사랑방 손님'이라고 해서 손님을 모시는 공간이잖아요. 그 사랑방의 툇마루를 없애고 바닥을 아래로 낮게 한 다음 밑에 온돌을 깔았어요. 쇼룸으로도 활용 가능하고, 나중에는 거주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건축 여행을 다닐 정도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나요? 이탈리아 남부의 라벨로라는 지역의 카루소 호텔은 구름 위에 떠 있는 호텔이라고 불릴 정도로 뷰가 뛰어나요. 이탈리아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서 더 럭셔리하고 유일무이하죠.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곳은 축령산의 휴림이라는 곳이에요. '축령산 자연지기'로 유명한 변동해 선생님이 직접 수작업으로 지은 곳이죠. 변 선생님은 소시지와 하몽도 직접 만들 정도로 자신만의 삶의 철학이 있는 분이에요. 편백나무로 지은 귀틀집으로 함경도 방식의 구들이 인상적이에요. 편백 특유의 향이 기분 좋아지는, 힐링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도시 중에는 스위스의 베른을 좋아해요. 자연과 구도심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사계절 내내 음악이 흐르는 도시예요. 일본의 료칸도 좋아하는데,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 후미진 곳의 료칸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외희는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신성시한다. 예술과 공간이 어우러진 공간, 바로 그가 머무는 '환희재'다.
코로나19 탓에 한복 시장 역시 어렵죠? 모든 분야가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데 한복 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전통한복부터 생활한복까지 다양하게 관심이 모아져 대중과 한복에 관한 많은 것을 자주 공유했는데, 현재는 비대면으로 전환된 상태예요. 그럼에도 대중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입니다. 간혹 극소수 회원만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했고, 전통적인 비주얼을 사랑하는 여성들의 요청으로 최근에는 우리의 전통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 유명 작가인 강세황의 사군자를 모티브로 쿠션, 슬리퍼, 가방, 액자 등을 작업하는 등 한복뿐만 아니라 전통을 활용한 소품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고 있어요. 이것 역시 우리 것을 지켜가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에요.
사실 한복 하면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 좀 불편한 옷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한복은 어떤 옷일까요? 한복은 그냥 옷이에요. 면접을 보러 갈 때는 정장을 입고, 운동할 때는 운동복을 입는 것처럼 한복도 장소와 시기에 맞게 입는 옷이에요. 혼례나 제사 때는 그에 맞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갖춰 입으면 되고, 일상생활에서는 좀 더 편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으면 되는 거죠. 한복은 흐르는 강과 같아요. 강줄기는 변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 주변에 풀들이 자라고 사라질 수도 있고, 이끼가 낄 수도 있고, 또 아이들이 그 안에서 움직이며 놀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세월에 따라 주변 풍경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강줄기는 변하지 않죠. 한복도 마찬가지로 그 원형과 정신은 변하지 않지만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형이 가능해요. 전통 옷이라는 프레임에 너무 갇혀 있지 않았으면 해요.
어떤 계기로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30대 초반, 좀 늦게 한복 공부를 시작했어요. 외국에 다니다 보면 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는 사람들은 항상 그 나라의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우리는 한복을 입기 불편한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봐도 기모노를 일상에서도 종종 입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도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잘 갖춰 입으며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복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희 할아버지가 늘 한복을 입고 생활하셨어요. 그래서 제게 한복은 낯선 옷이 아니었어요.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한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맥을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떤 점이 한복의 매력일까요? 저는 외국에 나갈 때 한복을 자주 입어요. 한복을 입고 가면 늘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 같아요. 턱시도나 드레스는 눈에 띄지도 않죠. 그만큼 한복은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옷이에요. 한복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요. 우리가 유러피언 스타일의 레이스나 벨벳을 동경하듯이 외국인들은 자연에서 얻은 우리의 천연 소재를 귀하고 아름답게 여기죠. 또 색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한복은 천연 염색을 하기 때문에 빛이 비췄을 때 그 아름다움이 배가됩니다. 인위적인 색이 아니라 볼수록 멋스러운 것이 한복의 매력이죠. 어디 그것뿐이겠어요?(웃음)
외희 한복 하면 배냇저고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요. 제 첫 전시가 배냇저고리 전시였어요. 한복은 우리의 출생과 임종까지 함께하는 옷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입는 배냇저고리부터 시작해 임종 때는 수의를 입죠. 우리는 그동안 서양식 배냇저고리를 입혔어요. 그래서 제가 2005년에 전통 배냇저고리를 연구해 만들었죠. DIY 제품으로 만들어 육아업체에 납품하고, 탯줄 액자도 만들었어요. 출생과 우리 옷을 연결 지은 거죠. 엄마가 직접 지어준 옷은 아이에게 소중한 선물일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요. 기회가 되면 '출생에서 임종까지'라는 주제로 사라져가는 수의를 보여주는 수의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요즘 민화를 배우고 있는데 한복에 민화를 접목한 전시도 열고 싶고요.
이제 봄입니다. 봄의 환희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비가 올 때도 눈이 올 때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근사하지만, 사실 환희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정원에 피치 톤의 벚꽃이 필 때예요. 그야말로 꽃비가 흐드러지게 내리는 것 같이 아름다워요. 봄이 되면 정원 한편에 허브를 심을 계획이에요. 저는 집을 짓고 가꾸는 것도 한복을 짓는 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한복도 평면에서 입체가 나오고, 집도 평면에서 입체를 완성하죠. 그래서 둘 다 '짓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아요. 한복을 짓고, 공간을 짓는 것이 결국 제 꿈을 짓는 과정이에요. 제가 직접 꾸민 공간에 제가 좋아서 선택한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해 여러 사람에게 알리며 예술가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