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NEON MILK' 채널에서 'NANA TV'를 운영 중인 나나영롱킴. 나나는 드랙 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더라도 각종 미디어와 브랜드 소식을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드랙 퀸이다. 남성, 여성 등의 젠더 구분이 없는 무경계 상태를 뜻하는 '젠더 뉴트럴'이 트렌드인 시대이니 '드랙'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에디터들이 나나를 만나보자고 했을 때는 대뜸 이유를 물었다.
"메이크업해보는 거라면서? 드랙 메이크업은 공연용 아닐까?"
"드랙 메이크업을 통해 편집장님의 창작욕도 발현해보시고, 젠더 뉴트럴과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의 약자)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드랙(drag)'이란 성별, 지위 등 사회적인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꾸미는 행위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성소수자들이 의상과 화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표출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 동성애자가 의상과 화장으로 표현한 여성인 '드랙 퀸'은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드랙은 여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드랙 킹'도 있고, 성별 또는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드랙도 있다.
드랙 문화를 떠올릴 때, 요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나나영롱킴이니 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체험해보기 위한 파트너로 그만한 이가 없기는 하다. 나나영롱킴은 공연을 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 디자이너,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로 활동 중이다. 2019 F/W 랭앤루 컬렉션의 뮤즈, 브랜드 컨버스의 캠페인 참여 모델, H&M×모스키노 컬래버레이션 론칭 파티 공연, 패션 매거진 <보그>와 샤넬 화보를 찍기도 했다. 나나에 대해 알아볼수록 그를 통해 드랙 문화가 주목받는 이유, 인사이더가 전하는 LGBTQ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졌다.
드디어 촬영 당일. 나나는 사진으로 보았던 모습보다 건장한 체격이었다. 이런 그가 메이크업을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랙 퀸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함께 해볼 수 있다니. 에디터들 덕분에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이름이 궁금했어요. 왜 나나영롱킴이에요?"
"텔레토비의 나나, 아시죠?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운동회를 했는데 반별 퍼레이드를 하면서 제가 나나 캐릭터로 분장했어요. 그때부터 제 별칭이 나나가 됐죠."
에디터가 구성한 기획에 맞춰 드랙 메이크업을 해나갔다. 오늘의 미션은 '아바타 메이크업 챌린지(Voice Over Makeup Challenge)-드랙 메이크업'. 베이스 메이크업은 함께 하고, 색조 메이크업부터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나나의 목소리만 듣고 해보는 거다. 대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고, 분장 스태프를 맡아 배우들 얼굴을 만들어갔던 나 아닌가. 자신 있다는 멘트를 던지고 붓을 잡았다. 나나의 멘트가 시작됐다.
"오늘은 오렌지 톤을 사용한 메이크업을 해보려고요. 베이스 메이크업부터 시작해요. 첫째, 눈썹! 얼굴을 완전 도화지처럼 만들 건데, 눈썹 처리가 중요해요."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발라 얼굴 바탕을 도화지처럼 완벽하게 지웠고, 그 위에 마음이 가는 대로 컬러를 선택해 그려나갔다. 좀 더 과감하게 마음을 열고 얼굴을 캔버스 삼아 컬러, 라인, 트렌드와 상관없이 메이크업을 해보니 정말 창작자가 된 듯했다. 나나 역시 이런 매력 때문에 계속 드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물이 늘 새로워요! 활동한 지 14년째지만 메이크업을 하는 과정이 매번 즐거워요. 안 써본 색상도 써보고 안 하던 방식으로 표현하다 보니 무궁무진하게 다른 얼굴을 그려낼 수 있더라고요. 얼굴이 하나의 도화지죠. 다른 분들도 그 재미에 드랙을 시작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팬도 많고요."
나나와 메이크업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났다. 공연 준비를 위해 분장 도구를 들었던, 기분 좋게 설레었던 무대 뒤 그 순간.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좋아하는 일, 그래서 시간을 들여 여러 사람과 준비해온 무대를 멋지게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그 시절의 느낌이 오버랩됐다. 물론 메이크업의 디테일은 확실히 떨어졌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드랙이란 지금의 내가 아닌, 표현하고 싶은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인데.
눈썹을 붙이고, 가발을 쓴 뒤 드레스까지 입었다. 드디어 드랙 메이크업 완성! 내가 봐도 완전히 다른 나였다. '가장 나답게!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게!'라는 나나의 가이드에 따라 그려가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게 됐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 그리고 그 문화의 전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역시 즐겁다. 다채로운 컬러로 꾸며진 내 얼굴만큼 말이다.
갱스터 인터뷰
김영롱과 나나영롱킴을 오가며 드랙 문화와 그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드랙을 처음 어떻게 경험하게 됐어요?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어요. 그때 공연을 하면서 뮤지컬 <헤드윅>의 장면 중 하나를 하게 됐죠. 갈라쇼처럼요. 그때 가발 쓰고 분장하는 드랙을 처음 해봤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평소 내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으로 캐릭터로 연기한다는 것, 그 자체가요. 그때부터 이 콘텐츠를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지 알아봤죠. 2007년, 2008년에는 지금의 SNS처럼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던 시절이니까 스무 살인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무작정 드랙을 하고 홍대 부근이나 강남 등에서 열리는 큰 파티나 페스티벌을 찾아가 기획자에게 "나 립싱크 쇼도 할 수 있으니 써봐라"라고 하는 거였죠. 그렇게 공연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리 요즘은 드랙 활동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14년 동안 드랙 퀸으로 활동해오고 있지만 근래 몇 년간의 변화가 가장 커요. 예전에는 클럽 등 작은 무대에서 공연 위주의 활동을 했는데 요즘은 많은 사람이 드랙 문화를 인정하고 알아봐주면서 다양한 미디어에서 연락이 와요. KBS에서 영상 인터뷰도 했다니까요.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요청도 많아졌고요. 예전에는 메이크업이 좋아서, 무대 공연이 좋아서 드랙을 했지만, 지금은 드랙을 통해 평소에 못 해봤던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접해볼 수 있어 더 신나게 활동 중이에요.
드랙 퀸의 모습이 여성을 희화화한다는 말도 있어요. 아직도 드랙을 '여장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드랙은 단순히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가 평소에 나타내고 싶었던 모습을 과감하게 도전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긴 가발을 쓰고 골반이나 엉덩이를 강조한 모습이 여성의 모습을 고정화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넓게 해주시면 그저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공연을 하다 보면 휘트니 휴스턴, 레이디 가가 등 톱 디바를 표현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가수가 지닌 글램한 느낌을 연출하다 보면 그렇게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드랙 퀸도 있지만 드랙 킹도 있어요. 남성이 드랙 활동을 하는 걸 '드랙 퀸'이라고 하고, 여성이 드랙 활동을 하는 걸 '드랙 킹'이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구분 짓는 것보다 '드랙 아티스트' 혹은 그냥 '드랙'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아요. 남녀의 경계 없이 다 같이 하나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드랙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뭐라고 하세요? 원래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근래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어머니가 알게 되셨어요. 제가 연극영화를 전공해 연기를 하고 공연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시고 제가 LGBTQ라는 건 모르셨죠. 작년에 '소상공인 뷰티 경진대회' 뷰티 어워즈 대상을 받았거든요. 그게 뉴스로 떴는데 어머니가 보셨나 봐요. 연락을 하셔서 "너 상 받았더라?"라고 하시며 자연스럽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지금은 "그래, 넌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지"라면서 서포트해주세요. 굉장히 든든한 존재예요. 제가 늘 하는 말인데, 제가 퀴어인 걸 알게 되더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 있거든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죠.
드랙 활동이 유명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아시게 된 거네요. 제 인스타그램 DM으로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문의가 많이 와요. "성 정체성이 이런데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숨겨야 할지, 또는 부모님께 언제 밝혀야 할지 모르겠다" 등 고민을 털어놓으시는데, 답은 없어요.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부모님마다 성격도 다르실 테니까요. 제 경험으로 보면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드랙이라는 걸 떠나 동성애자, 성소수자 김영롱으로서 말이에요. '나는 당당해! 나는 이런 사람인데 이걸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그걸로 끝이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차오르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때 밝히면 자신이 덜 상처받고, 덜 우울해지죠. 저는 워낙 활동적이고 밝은 아이여서 그랬는지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