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햇살 담은 음식을 전하는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가 들려주는 허브 이야기. 매달 <에쎈> 독자들을 위해 허브 향 가득한 테이블을 차린다.
우리 집 앞마당의 루콜라
5년 전, 내 요리 수업을 듣는 한 친구에게 작은 신세를 지게 되어 답례로 루콜라 한 다발을 선물했다. 마침 그날 수업에서 나폴리풍의 얇은 피자를 만들었기에 친구는 ‘피자를 구워 루콜라를 듬뿍 얹어 내야지’ 하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걸려온 전화. “어제 받은 루콜라를 깨끗이 씻어 베란다에 놓아두었는데, 시어머님이 열무로 착각해 된장국에 넣고 끓여버렸지 뭐야.”
그녀는 거의 울 기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만 해도 루콜라는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격도 비쌌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아까운 마음보다 루콜라된장국의 맛이 어떨지 더 궁금했지만 말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앞마당에 꽃 이외의 식용 채소는 심지 않겠다던 마음을 접고 루콜라 씨앗을 심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루콜라 모종과 씨앗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꽃 시장을 다 뒤져도 민트, 로즈메리와 달리 루콜라 씨앗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루콜라 씨앗을 손에 넣었고 그해 봄 내 손에서는 원예 책이 떠날 날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키워낸 루콜라는 아직도 매년 봄마다 우리 집 앞마당에 싹을 틔운다. 하지만 역시나 키우는 것만으로 사용하는 양을 감당할 수 없기에 결국 앞마당의 루콜라는 마음의 위안일 뿐, 실질적으로는 요리교실의 재료를 조달해주는 채소가게 아저씨에게 의존하게 된다. 덕분에 5년 전에는 큰 종이에 ‘루콜라’라고 또박또박 써 보여줘도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던 아저씨에게도 이제 루콜라는 그냥 흔히 주문받는 채소 중 하나일 뿐이다.
이탈리아어로 ‘루콜라(rucola)’ 또는 ‘루케타(ruchetta)’로 불리며 프랑스어로는 ‘로케트(roquette)’, 영어로는 ‘로켓(rocket)’이나 ‘아루굴라(arugula)’라 불리는 루콜라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즐겨 먹던 허브다. 직접 수확한 채소와 허브를 활용한 요리로 유명한 미국의 요리사 앨리스 워터(Alice Water)는 루콜라를 허브가 아닌 ‘샐러드 채소’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은은한 깨 향을 내는 루콜라는 일반적으로 허브로 친다.
같은 루콜라라도 재배 방법이나 토양, 기후 등에 따라 알싸한 향이나 얼얼한 매운맛, 씁쓸함 등이 더해지는데 한국에서 재배되는 것은 특히 향과 매운맛이 강하다. 또 일반 루콜라 외에 ‘와일드 루콜라’를 팔기도 하는데 실은 이름만 같을 뿐 식물학적으로 다른 과에 속하는 종으로 유럽에서는 ‘셀바티코’라 부르는 것이다. 1년초인 루콜라와 달리 다년초인 셀바티코는 루콜라와 비슷한 깨 향과 함께 짜릿한 매운맛, 쌉쌀한 향을 지니고 있지만 루콜라보다 강한 잡초 같은 풍미를 낸다.
루콜라는 샐러드에 가장 흔히 사용되며 쇠고기카르파초에 파르메산치즈와 함께, 혹은 얇은 이탈리안 피자에 생햄과 함께 올리곤 한다. 루콜라나 셀바티코 모두 잎의 색이 짙을수록 맛이 강한데 이런 것은 살짝 볶아 파스타나 생선, 육류 요리에 곁들여도 좋다. 우리 집에서는 살짝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의외로 그 맛이 별미다. 꼭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기보다는 그 나라의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새로운 레서피를 개발하는 일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한국 식재료와 함께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바질페스토 대신 루콜라를 넣은 페스토를 만들어 빵에 발라 먹어도 좋다. 3월, 루콜라 모종을 심는 계절이다.
루콜라페스토
루콜라와 고사리나물샐러드
“고소하게 볶은 고사리와 쌉싸래하고 산뜻한 풍미를 내는 루콜라가 의외로 잘 어울려 모두가 놀라지요. 양념한 차돌박이를 구워 함께 곁들이면 반찬은 물론 와인 안주로도 좋아요.”
나카가와 히데코는 대사관 셰프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스페인 등 지중해 등지에서 살며 다양한 ‘맛’을 체득했다. 일본인이지만 한국의 매력에 빠져 귀화하고 지중해의 건강 요리를 기본으로 한 일본 가정식 등을 전하는 쿠킹 클래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셰프의 딸>, <지중해 요리> 등이 있다.
루콜라와 고사리나물샐러드
에쎈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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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루콜라 400g 드레싱 올리브유 3큰술, 레몬즙 2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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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나물
삶은 고사리 100g,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국간장 ½큰술씩, 깨소금·참기 름 1작은술씩, 식용유 적당량, 후춧가루 약간, 물 2~3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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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박이볶음
차돌박이 100g, 국간장 2작은술, 꿀·청주 1작은술씩, 참기름 ½작은술, 후춧 가루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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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콜라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드레싱 재료를 잘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
- 2
삶은 고사리는 억세고 단단한 줄기 부분은 제거하고 연한 부위만 모아 한 번 헹군 뒤 5cm 길이로 자른다.
- 3
고사리에 다진 파와 다진 마늘, 국간장, 후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간이 배도록 잠시 재워둔다.
-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념한 고사리를 넣어 볶다가 물 2~3큰술을 부어 뚜껑을 덮고 잠시 약한 불로 익힌다. 물이 거의 졸아들면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한 번 더 볶은 뒤 접시에 옮겨 한 김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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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박이에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조물조물 무쳐 달군 팬에 재빨리 볶은 뒤 바로 접시에 옮겨 한 김 식힌다.
루콜라페스토
에쎈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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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루콜라 100g, 호두 ⅓컵, 마늘 2쪽, 파르메산치즈 ¼컵,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½컵, 소금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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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콜라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해 손으로 큼직하게 뜯는다. 호두는 마른 팬에 살짝 볶는다. 파르메산치즈는 그레이터로 갈아 준비한다.
- 2
믹서에 루콜라, 마늘, 호두, 소금, 파르메산치즈, 올리브유를 넣어 곱게 간다.
지중해의 햇살 담은 음식을 전하는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가 들려주는 허브 이야기. 매달 <에쎈> 독자들을 위해 허브 향 가득한 테이블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