멥쌀로 가루를 내 시루에 켜켜이 쌓아 슴슴한 떡을 찌고 찹쌀을 절구에 쳐 쫄깃한 떡을 만들어 먹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식문화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기름과 꿀에 꽃 등으로 향을 내 만든 달콤한 과자를 차에 곁들여 먹는 문화가 크게 유행해 나라에서 이를 금할 정도였다.
데이비드 강 병과에서 병은 떡, 과는 한과라고 배웠습니다. 떡과 한과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정길자 기본적으로 떡은 곡물을 주재료로 합니다. 견과류와 각종 과일, 채소 등이 재료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맛을 내는 부재료이지요. 과자에서는 각종 곡물가루뿐 아니라 각종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꽃가루 등이 모두 주재료가 됩니다. 각종 뿌리를 달콤하게 졸인 정과나 꽃가루를 사용한 다식 등이 그 예입니다. 또한 한과는 단맛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때문에 떡은 식사 대용이 될 수 있지만 한과는 간식으로만 즐길 수 있지요. 물론 둘 다 다과상에 오르는 후식에 포함됩니다.
데이비드 강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떡과 과자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나요?
정길자 삼국시대 이전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증거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 중에 떡을 쪄 먹는 용도로 추정되는 시루가 있습니다. 신석기시대 유적에는 곡식을 가는 데 사용되었던 ‘갈판’이 발견되기도 했고요.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곡식을 갈아 가루를 내어 쪄 먹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삼국사기>에는 유리왕의 왕위 계승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왕이 될까 결정하는 데에 떡을 깨물어 그 떡에 찍힌 치아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왕이 되기로 하고 결국 유리의 치아가 더 많이 찍혀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떡이 일상생활에 보편화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강 전부터 궁중 음식이 일반 음식과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했습니다. 궁중 병과와 일반 병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정길자 답부터 말하면 메뉴 자체의 차이는 없습니다. 옛날 궁중에서는 큰 잔치를 하고 나면 음식을 들것에 실어 왕이나 중전의 친인척 집 등에 보내 다 같이 나눠 먹도록 하였습니다. 반대로 궁중에서 일하는 성인 이전의 ‘생각시’가 정식 궁녀인 ‘나인’이 될 때 본가에서 음식을 해 궁중으로 들여보내는 관례 등을 통해 궁중 밖의 음식이 궁중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러니 궁중 음식에만 있는 메뉴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단, 궁중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조리사들이 요리하는 것이 다릅니다. 아무리 사대부가라고 해도 아낙네는 살림을 하다 보면 음식만 전문적으로 하기는 힘든 데 반해 궁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이들이 철저한 분업 체제하에 평생 음식을 만드니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밖에요. 결국 전문가들의 ‘요리 비책’이 전수되며 쌓이게 됩니다. 떡과 과자도 마찬가지이고요.
데이비드 강 한국에 오니 ‘이것은 경상도 음식, 이것은 전라도 음식’ 등등 음식에 지역색이 강한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에도 남부 음식 등 지역별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한식은 그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어 지방별 향토 음식도 크게 발달한 것 같아요. 병과의 경우도 지역별 특징의 차이가 큰가요?
정길자 물론 지방별로 유명한 병과가 있습니다. 북한 평안도의 노티떡이나 제주도 오메기떡 등이 그 예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별 특색이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병과는 특히나 산업화가 일찍 일어난 분야라는 게 큰 이유입니다. 옛날에는 떡을 집에서 직접 해 먹었지만 산업화 이후 기계가 들어온 방앗간과 떡집이 동네 구석구석 생기면서 이제는 직접 떡을 해 먹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즐겨 찾는 병과의 종류나 맛도 일률적이 되었습니다. 또 예전에는 유통과 보관이 힘들어 그 지역에서만 나는 재료로 떡을 만들었다면 지금이야 해외의 식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니 재료의 한계도 없고요.
데이비드 강 전통 병과를 배우다 보니 떡과 한과에 중복되는 재료가 많았습니다. 특정 재료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정길자 떡의 장점 중 하나가 가루로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어떤 재료든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많이 쓰이는 팥고물이나 녹두고물 등을 소로 넣거나 겉에 묻혀도 되고 색을 내기 위해 반죽에 오미자 물이나 치자 물을 들일 수도 있지요. 옛날에야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만 사용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찾다 보니 재료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 강은 외국에서 오래 살아 우리 입맛과 서양의 입맛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입맛에 맞게 창의적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로 시도를 해보세요.
데이비드 강시판 떡이나 한과와 달리 궁중 병과에서는 단맛을 낼 때 설탕이나 시럽, 꿀보다도 조청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정길자 우리나라는 설탕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설탕 자체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집집마다 엿기름과 곡류를 고아 조청을 만들어 음식의 단맛을 냈습니다. 그렇게 만든 조청에 떡을 찍어 먹기도 하고 깨 등을 넣고 끓여 강정이나 엿을 만들어 즐기기도 했습니다. 한과 재료에 조청을 사용하면 반죽 깊숙이 조청이 스며들어 속까지 촉촉합니다. 설탕으로는 낼 수 없는 식감이지요. 또 곡류를 고아 만든 특유의 은은한 향이 좋습니다.
데이비드 강 떡과 한과는 모양도 앙증맞고 색도 알록달록해 보기만 해도 놀랍고 즐겁습니다. 한식의 미적 요소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오방색’의 개념이 병과에도 적용되는 것인가요?
정길자 궁중 음식에서 오방색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병과류입니다. 각종 물을 들여 알록달록 색을 내는 등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기 좋으니까요. 최근 웰빙 열풍을 타고 컬러 푸드가 유행합니다. 자연이 내는 다양한 색의 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의 오방색 개념이 앞서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방색을 골고루 먹어야 몸에 이롭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같은 인절미라도 거피팥, 붉은팥, 콩가루, 초록콩가루, 흑임자 다섯 가지 색의 재료로 다섯 가지 맛과 영양을 내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게 만듭니다.
데이비드 강 그래서 궁중 상차림에 병과가 서양의 ‘센터피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군요.
정길자 그렇습니다. 서양의 테이블을 장식하는 것이 꽃이라면 한국에서는 병과가 꽃의 역할을 합니다. 궁중 의례에서는 20여 종류의 각종 병과를 켜켜이 쌓아 올리는 ‘고임상’이 전체 상차림의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잔치가 끝날 때까지는 건드려서도 안 됐지요. 큰 잔치를 그야말로 잔치로 만드는 것이 병과입니다. 지금도 전통 혼례는 물론 돌상이나 회갑 잔치 등에서도 고임상 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강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고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는 전통 한과와 떡을 거의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사실 해외에 있으면 우리 떡과 과자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에요. 훌륭한 우리 병과를 해외에 더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정길자 세계화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한국에서조차도 특별한 날에 떡보다도 케이크를 찾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저만 해도 궁중 음식을 배우기 전 아주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케이크를 먹었다고 하면 우러러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궁중 음식을 배우고 우리 것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정말 귀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키우게 됐습니다. 일 년에 두 번, 큰 명절 때마다 고마운 주위 사람들에게 한과를 예쁘게 만들어 포장해 선물로 보내곤 하는데 받는 이들의 반응이 굉장합니다. 정말 귀한 것을 받았다며 좋아하고 외국인 중에는 그 맛에 반했다며 저를 찾아오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부탁을 받아 떡 시연회를 하거나 다과상을 맡은 적이 있는데 ‘맛있는 것 앞에 세계인은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준비해 둔 것이 어찌나 빨리 없어지는지 제가 더 놀랄 정도였습니다. 데이비드처럼 먼 타지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먼저 한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모습이 기특합니다. 이런 분들이 많이 성장해서 해외 곳곳으로 뻗어 나가면 자연스럽게 세계화는 이뤄지겠지요.
재미교포 데이비드 강(강민석)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수학과(Economics-Mathematics)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내 프랑스요리전문대학(FCI)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한식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 음식·문화·사회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 재단에 신청하게 됐다. 지난 7월에 한국에 온 그는 10개월 동안 한국에서 한식을 연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받아 한국의 전통 음식을 배우기도 하고 지방을 내려가 향토 음식을 직접 맛보는 등 한식에 관련된 모든 것을 경험할 예정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이자 궁중음식연구가인 정길자 선생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자 제 1대 조성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고(故) 한희순 상궁 밑에서 전통 궁중 음식을 사사받은 한국 전통 음식의 대모이자 제2대 기능보유자인 고(故) 황혜성 교수는 1971년 사비를 털어 궁중 음식 전수 기관인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을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황혜성 교수에게 직접 사사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정길자 선생이다. 정길자 선생은 한복려 선생과 함께 2007년 제3대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되었고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분화된 ‘사단법인 궁중병과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궁중 병과 역사의 산증인으로 현재 우리 전통 병과의 맥을 잇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멥쌀로 가루를 내 시루에 켜켜이 쌓아 슴슴한 떡을 찌고 찹쌀을 절구에 쳐 쫄깃한 떡을 만들어 먹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식문화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기름과 꿀에 꽃 등으로 향을 내 만든 달콤한 과자를 차에 곁들여 먹는 문화가 크게 유행해 나라에서 이를 금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