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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국물을 찾아서 곰탕과 설렁탕

진한 삶의 내음

On October 02, 2013

서민들에게 ‘고깃국물’은 소박한 사치다. ‘고기’도 아니고 ‘고깃국물’을 바라는 삶은 어딘지 모르게 애달프다. 곰탕과 설렁탕에는 그러한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고깃국물의 원류, 곰탕

곰탕의 어원과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몽골인들이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여 먹는 ‘공탕’이 전해져 ‘곰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몽골이나 고구려와 같은 기마민족은 육식을 즐겨 했는데 살코기를 구워 먹고 남은 부위는 탕을 끓여 먹었다. ‘국과 밥’이 기본이 되는 우리 민족의 ‘탕반 식문화’를 생각해 보면 꼭 공탕이 아니더라도 곰탕과 비슷한 고깃국물을 먹은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문헌 <시의전서>에는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떼기, 꼬리, 양, 곤자소니와 전복, 해삼을 큰 솥에 넣어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며 이 음식을 ‘고음’이라 기록하였다. 고기를 ‘곤다’에서 ‘고음’이 되고 이것이 ‘곰탕’이 되었다는 말도 일리 있어 보인다. <규합총서>에는 ‘살찐 쇠꼬리를 뿌리의 살째 무르게 삶아 잘게 찢어 쇠약가리와 부아 삶은 것과 함께 기름장, 후추, 깨소금에 주물러 끓이는 쇠꼬리곰을 만들어 먹었다’는 ‘쇠꼬리곰탕’에 관한 기록이 있다. 꼭 서민이 아니더라도 고기는 그 자체로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기로 국물을 낸 곰탕은 임금의 수랏상과 사대부 집안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주소 서울 중구 명동1가 10-4
영업시간 07:00~17:00
문의 02-776-5656

마땅히 이러한 맛, 하동관 곰탕

하동관의 곰탕 국물은 마치 고깃국물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제대로 된 고기를 삶은 국물이라면 이런 맛이어야 온당하다. 예측 가능하면서도 참 당연한 맛인데 그 자체로 온당한 고깃국물의 본질이, 아무런 수도 쓰지 않은 그 국물이 감동이다. ‘본질보다 흉내가 앞서는, 상징으로서의 음식’으로 가득 찬 요즘 세상에서 당연하다는 듯 오롯이 본질로만 찰랑거리는 한 그릇 앞에서 음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사골과 양지머리, 차돌박이와 양, 업치를 넣어 푹 끓인 국물에 소금으로만 간한 따뜻한 국물에서는 고기 내음이 스친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박한 맛에 층을 이룬 고깃기름이 입안에 맴돈다. 꿀꺽 삼키고 나서도 고기 향이 흐릿하게 다시 넘어온다. 양질의 고기를 넣어 삶은 국물, 그 맛이다. 화려한 맛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정직한 맛. 60년이 넘게 처음의 모양새를 그대로 지켜온 하동관의 곰탕의 모습을 보면 원래 이 집 음식은 반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놋그릇에 얌전히 담겨 나온 모양새가 그렇다. 뚝배기에 넣고 무작정 뜨겁게 펄펄 끓여 내놓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데운 놋그릇에 따뜻한 국물을 담아낸다. 곰탕 국물로 토렴한 밥은 알알이 코팅되어 하나하나 풀어진다. 60년 전과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조리법, 똑같은 그릇에 내놓는 이 집의 곰탕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왔던 철부지 꼬마에서 이제는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 어린 손주의 손을 이끌고 찾아온다. 대통령과 정재계 인사들이 단골로 찾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다 보니 이 집이 만들어낸 ‘곰탕 주문 은어’도 여럿이다. “여기 깍국이요~”라고 외치면 종업원이 깍두기 국물을 담은 주전자를 가지고 와 몸에 밴 동작으로 탕에 빨간 국물을 붓고 간다. 달걀을 풀어 먹기를 즐기는 이들은 주문할 때 ‘통닭’을 달라 하기도 한다. 두 명의 남자 손님이 와 한 명은 ‘특’을, 한 명은 ‘보통’을 주문하면 “여기 커플이요”라며 주방에 오더를 내는 종업원의 모습에서는 오랜 시간 쌓여온 노동의 해학마저 느껴진다. 40여 년 전 시아버지에게 가게를 물려받은 대표가 따로 주방장도 두지 않고 모든 음식을 책임지고 있다. 미리 준비해둔 수량이 다 팔리면 문을 닫기 때문에 오후 4~5시 이전에 가는 것이 좋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설렁탕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한국 근대문학 중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면은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인력거를 몰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 오늘의 운이 좋기를 바라는 애처로운 희망이 담겨 있는 음식, 마지막 가는 입에 한 숟갈이라도 넣어줘야 한이 풀릴 것 같은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배고픈 시절, 고깃국물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던 설렁탕은 한국 외식의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설렁탕의 유래도 곰탕과 같이 몽골 ‘공탕’의 몽골 발음인 ‘슐렝(sulen)’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간혹 곰탕이 진짜고 설렁탕은 그 아류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설렁탕은 곰탕과는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발전한 ‘서울 서민 음식’이다. 한국 최초의 요식업 허가업소 1호로 1904년 공평동에 문을 연 설렁탕집 ‘이문옥’만 봐도 그러하다. 100년 넘게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설농탕’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판매했다. 곰탕과 달리 사골을 20시간가량 푹 고아 뽀얀 국물을 내는 설렁탕의 특징 중 하나로 소면 사리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고깃국물을 더 푸짐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서민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 서민들의 음식으로 시작한 설렁탕은 우리나라 경제가 일어서며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외식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70년대에 와서 더욱 발달한다. 양지머리를 많이 넣는 곳, 도가니와 각종 내장을 많이 넣는 곳 등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손님을 끌어모으는 설렁탕집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대중이 가장 흔히 찾는 음식이다 보니 국내 대형 외식산업 발달의 빛과 어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설렁탕이기도 하다. 조미료에 길들여진 대중의 입맛에 맞춰 필요 이상의 조미료를 사용하기도 하고 ‘더 하얗고 뽀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으로 커피에 넣는 ‘프림’을 타 색을 내기도 한다. 본래 대중을 위한 음식이다 보니 대중의 기호에 맞춰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성 강한 설렁탕 맛집

설렁탕이 워낙 보편화된 외식 메뉴다 보니 자기만의 개성과 맛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는 ‘전통의 강자’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라는 역사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종로의 이문설농탕은 현대화된 설렁탕의 진한 국물과는 다르게 심심할 정도로 연한 국물에 머릿고기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서울역 뒤편인 ‘잠바위골’에 터를 잡아 ‘잠바위’, ‘잠바’, ‘잼배’가 된 ‘잼배옥’은 한국전쟁 등의 역사와 이사를 거쳐 지금의 서소문 쪽에 자리 잡았다. 각종 잡뼈와 고기, 내장이 다양하게 들어가 먹고 나면 입안이 끈적거릴 정도로 진하고 묵직한 국물이 특징인 곳으로 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해 호불호를 많이 탄다. 여의도 정계 인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춰 고급 부위인 양지머리를 듬뿍 넣어 끓인 ‘여의도 양지탕’은 스스로를 ‘양지탕’이라 칭해 콧대를 세우며 여의도 일대에서 30년 넘게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포에는 ‘마포양지 설렁탕’이 있는데 역시 30여 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곳으로 함께 내는 파김치와의 조화로 유명하다. 경복궁의 ‘백송’은 여타 오래된 설렁탕 맛집보다 상대적으로 진한 맛과 깔끔한 맛의 밸런스가 잘 맞는 국물과 양질의 고기 부위와 함께 들어가는 큼직한 도가니가 특징이다. 다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맛의 설렁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 강한 설렁탕 맛집

설렁탕이 워낙 보편화된 외식 메뉴다 보니 자기만의 개성과 맛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는 ‘전통의 강자’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라는 역사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종로의 이문설농탕은 현대화된 설렁탕의 진한 국물과는 다르게 심심할 정도로 연한 국물에 머릿고기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서울역 뒤편인 ‘잠바위골’에 터를 잡아 ‘잠바위’, ‘잠바’, ‘잼배’가 된 ‘잼배옥’은 한국전쟁 등의 역사와 이사를 거쳐 지금의 서소문 쪽에 자리 잡았다. 각종 잡뼈와 고기, 내장이 다양하게 들어가 먹고 나면 입안이 끈적거릴 정도로 진하고 묵직한 국물이 특징인 곳으로 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해 호불호를 많이 탄다. 여의도 정계 인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춰 고급 부위인 양지머리를 듬뿍 넣어 끓인 ‘여의도 양지탕’은 스스로를 ‘양지탕’이라 칭해 콧대를 세우며 여의도 일대에서 30년 넘게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포에는 ‘마포양지 설렁탕’이 있는데 역시 30여 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곳으로 함께 내는 파김치와의 조화로 유명하다. 경복궁의 ‘백송’은 여타 오래된 설렁탕 맛집보다 상대적으로 진한 맛과 깔끔한 맛의 밸런스가 잘 맞는 국물과 양질의 고기 부위와 함께 들어가는 큼직한 도가니가 특징이다. 다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맛의 설렁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소 서울 중구 주교동 118-3
영업시간 06:00~21:00
문의 02-2265-0322

오래된 친구 같은 은근함, 문화옥 설렁탕

60년째 ‘우래옥’과 함께 주교동 골목의 안주인을 맡고 있는 ‘문화옥’은 여타 유명한 어느 설렁탕집보다도 유독 손님의 연령대가 높은 곳이다. 한국전쟁의 피난통에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탄불에 설렁탕을 끓여 팔던 것을 그 며느리가 40년 전 물려받아 한결같이 같은 맛을 이어오고 있다. 문화옥 설렁탕 국물은 맑은 듯 깊고 누린내 없이 은근한 것이 얌전하면서도 우직한 모양새다. ‘양지 설렁탕’이 유행한 30여 년 전을 거슬러 올라 60년 전부터 사골과 양지머리만으로 맛을 내 고기 잡내가 적고 국물이 맑다. 솥을 걸어 놓은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고 국물을 우려내 사골 국물 특유의 고소함도 느껴진다. 국물 위로 뜨는 기름을 부지런히 제거하기 때문에 다 먹고 나서도 입안에 기름기가 남지 않는다. 푸짐하게 들어 있는 소면은 고구마 녹말 함량이 높아 구수하고 부드럽다. 육수로 토렴해 따뜻하게 데워진 뚝배기에 설렁탕이 담겨 나오는데 뚝배기째 불 위에 올려 펄펄 끓이면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세심한 맛이다. 젓갈을 많이 쓰지 않고 서울식으로 담가 단맛과 시원한 맛이 두드러지는 깍두기와 김치도 설렁탕과 잘 어우러진다. 오래된 단골들은 마나, 혀, 우랑 등 재미있는 이름의 특수 부위를 주문하기도 한다. ‘마나’는 소의 지라 부위 ‘만화바탕’을 가리키며 ‘우랑’은 수소의 성기 부분으로 옛 어른들은 정력에 좋다 하여 귀한 취급을 했다. 오래된 설렁탕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위로 60년 된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한우 사골과 국산 육우 등 선별된 고기를 받아 쓰는 도축장뿐 아니라 소면을 받아 쓰는 소규모 제면소 등 몇 십여 년 동안 거래하던 곳을 바꾸지 않는 것도 한결같은 맛으로 오랜 단골손님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다. 이른 새벽부터 허한 속을 든든하게 달래 힘내고자 하는 손님이 많아 아침 6시부터 문을 연다.

서민들에게 ‘고깃국물’은 소박한 사치다. ‘고기’도 아니고 ‘고깃국물’을 바라는 삶은 어딘지 모르게 애달프다. 곰탕과 설렁탕에는 그러한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정문기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