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서도호의 개인전을 보러 한남동 리움갤러리에 갔다. 사람이 많아서 집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는 집을 만든다. 천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 집은 집의 옷 같다. 언젠가 사진으로 그가 만든 작품 ‘서울 집’을 보고, 그가 기억을 기록하는 고유한 방식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그가 만든 집은 그가 살았던 집이다. 집은 그가 집을 떠나보내는 형식이다. 그는 그렇게 집을 기록한다. 리움갤러리엔 그가 살았던, 만든 집들이 모여 있었다. 기억이 집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집 안을 지나갈 때, 집과 집 사이를 지나갈 때, 집과 전시장의 빈 공간을 지나갈 때 몸이 무거웠다.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가 시간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유년, 군대와 학부 시절, 미국 유학 시절이 집 속에 있다. 오후에 순식간에 건너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런던에서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 그가 살았던 서울의 집과 뉴욕의 집처럼 언젠가 그곳도 그가 기억하고 기록할 집이 될 것이다. <아레나>는 작년 가을부터 서도호의 한국 에이전트를 통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도호는 작년 12월부터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곳에서 미술관 주최로 ‘아티스트 토크’를 할 예정인데 그때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에이전트를 통해 전해왔다. 서도호의 ‘집’을 서도호의 ‘집’에서 이야기하는 건 옳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가나자와에 갔다.
서도호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다. 인터뷰할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미술관 복도를 걷는 짧은 시간 동안 그와 악수를 하기 위해,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다가왔다. 한 일본인 팬은 직접 수집한 서도호의 아카이브를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는 서서, 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와 수줍은 듯 핑크색 편지 봉투를 건넸다. 남자였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 서도호의 셔츠 주머니가 반짝였다. 편지 봉투가 행커치프처럼 꽂혀 있었다.
리움갤러리에서 개인전 열고 어떠셨어요? 제 친구는 이렇게 말했어요. “서도호 개인전이라고? 정말?” 리움갤러리 전시를 하기 전과 후의 감정 변화랄까 감회랄까 이런 게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오랜만에 개인전 하신 거니까요.
없을 수가 없죠. 리움갤러리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다행이에요. 리움갤러리 관계자 분들이 노심초사하셨을 거예요. 준비 과정이 길었거든요. 작품 설치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요. 2003년 아트선재에서 했던 개인전 이후로 대규모 전시는 처음인데, 그 사이 풍토가 바뀐 거 같아요. 대중이 미술에 관심이 많아진 거 같아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죠. 그리고 그동안 못 보여줬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작품을 새롭게 본 계기가 되었죠. 작품들을 한자리에 전시한 건 처음이었어요.
당신의 작품은 전시 공간에 따라, 설치 위치나 주변 상태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포섭한다고 할까요?
맞아요. 전문 용어로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거든요. 장소의 맥락을 중시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장소가 바뀌면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그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거 같아요.
여기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전시 공간은 어떠세요?
리움갤러리하고 완전히 다른 공간이죠. 완전히 다르다는 게 뭐냐면 리움갤러리는 크게 뻥 뚫린 하나의 공간과 블랙박스라고 하는 조그만 방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독립된 큰 방이 여러 개 있어요. 그 방들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요. 보통 미술관은 하나의 방이 다른 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는 독립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이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특수한 전시 공간이에요. 그리고 전시장 천장 전체가 조명이어서 따로 조명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요. 제 천 작업을 위해서는 최적의 전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죠. 방 하나에 작품이 하나씩 들어갔으니까. 방이 소위 말하는 화이트 큐브, 그냥 순수한 하얀 박스 형태니까 작품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리움갤러리 전시 보신 분들한테 이 전시를 보여드렸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어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똑같은 작품인데 공간에 따라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거든요. 실제로 오프닝 전시에 오셨던 한국 분들이 뉴욕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인지 몰라보셨어요. 리움갤러리 전시를 보셨던 분은 아마 같은 인상을 받으셨을 거예요.
이곳 공간을 보러 왔을 때, 여기를 이렇게 활용하면 되겠다, 이런 게 바로 떠올랐나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거죠. 이 미술관이 2005년엔가 문을 열었을 거예요. 당시에, 지금은 안 계시는데 큐레이터가 저를 초대해서 여러 방 중의 한 곳에 작품을 의뢰했어요. 그래서 공간을 보러 공사 중인 미술관에 왔었어요. 그때 이후로 이 전시 공간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죠. 이곳에서 개인전을 한다면 어떤 종류의 작품을 전시할까 하는 생각을요. 그래서 의외로 쉬웠죠. 몇 년 동안 생각을 했던 거니까.
리움갤러리 전시는 타이틀이 <집 속의 집>이었고 이번 전시는 <퍼펙트 홈>인데요, 두 타이틀 사이엔 어떤 인식의 변화가 있나요?
‘퍼펙트 홈’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리움에서도 전시를 했었어요. ‘집 속의 집’이라는 작품도 있고요. <집 속의 집>이라는 제목은 리움에서 썼으니까 그걸 또 쓸 순 없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퍼펙트 홈’을 반어적인 의미로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작가님의 ‘집’은 위태롭고 불안하잖아요.
‘퍼펙트 홈’을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퍼펙트’한 집이 뭐냐, 결국 그런 질문을 하며 여러 생각을 작품으로 만들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집 속의 집’이라는 작품이나 전시 제목은 ‘퍼펙트 홈’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미국에서 <퍼펙트 홈>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은 아닌데, 맞습니다. ‘집’이 완전하지 않고, ‘퍼펙트 홈’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반어적인 의미도 있죠. 어떠한 이상향,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나 노력? 이런 과정의 일부인 거 같아요.
전시를 하지 않을 때 저 집들을 어떻게 보관하세요?
다 접어둬요. 해체하면 천은 천대로 접히고, 그 안에 최소한의 구조물들이 있는데 그것도 해체해서 나무 상자 안에 넣어요.
선생님의 집을 접는 특별한 기술이 있나요? 모두 예민한 집들이잖아요.
제 작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아무래도 그 팀을 설치나 해체에 투입하죠. 그 친구들이 자기가 만든 거니까 제일 잘 알죠.
집도 그렇고, 예전에 했던 유니폼 작업이나 회화도 그렇고, 전부, 전부라고 하긴 그렇지만, 기억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 결과의 하나인 집들이 접혀 있는 걸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단순히 작품이 접혀 있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요.
그럼요. 작품이 접힌다는 것은 한곳에 영구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라서, 이동성,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간다는 개념이거든요. 제 천 작업은, 어릴 때 살던 서울의 집을 어떻게 하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가느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접어가지고 여행용 가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로 디자인했었죠. 그러니까 작품이 접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죠. 지금은 작품의 규모가 커져서 여행용 가방엔 안 들어가는데, 박스에 넣기 위해 작품을 접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크고, 영어로 얘기하면 ‘Ritual’하다고 할까? 일종의 의례죠. 그리고 잘 접어야 다음에 설치할 때 다림질을 적게 해요.
아, 다림질도 하나요? 옷 같아요.
그것 자체의 의미가 무척 커요.
저는 천으로 만든 집을 보면서 시간의 영속성을 느껴요. 지금은 떠나온 집이지만 그 집을, 정확하게는 어느 한때의 시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맞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거랑 비슷해요. 아무래도 천이라는 재료는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사실 영구적인 재료가 아니죠. 세상에 영구적인 재료가 어디 있어요. 언젠가는 사라지는 건데, 천이 생각보다 강해요. 신라시대 때 무덤 발굴하면, 제 작품에도 명주를 썼지만, 몇천 년 이상 됐는데도 옷들이 그대로 있거든요.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 같아요. 아무래도 천이라는 게 옷을 만드는 재료잖아요. 옷은 우리 몸을 감싸기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옷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한참 길어지겠지만, 사실 제 작품은 집을 위한 옷이에요. 재밌는 거 같아요. 그렇게 대입해본다면, 옷과 건축의 관계, 옷과 신체의 관계, 그런 부분이 제 작품에 얼기설기 겹쳐 있어요. 천에 대해서, 옷에 대해서, 건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 서상영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세요?
만나뵙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이야기하더라고요. 닮았다고.
형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만나보셨어요?
네. 몇 번.
닮은 거 같아요?
네. 너무 닮아서 오히려 관련 없는 사람 같아요. 형제는 그렇게까지 닮지는 않잖아요.
그래요. 언젠가 만나뵙고 싶어요. 뵈면 전달해주세요.
예전에 당신의 유니폼 작업을 보고 이 작가는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집 시리즈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했고요. 과거의 어떤 경험 때문에 그런 일련의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살면서 누구나 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있잖아요. 나한테 제일 큰 것 중 하나가 군대 갔던 거, 결혼한 거, 결혼하자마자 미국에 갔던 거예요.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작품도 핑계인 거 같아요. 적응을 하고 살아남기 위한 과정을 다 거치잖아요. 거기서 나온 시각적인 결과물이죠. 사실은 작품이란 게… 예술이 무엇인 거 같으세요? 그 질문을 만날 해요. 내가 왜 하지 예술을? 그러면서 어쨌든 간에 저는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거 같지 않아요. 어떤 형태로든 자기가 겪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고, 표현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마다 다 그게 있는 거 같아요. 저는 단지 그걸 미술로 하는 거예요.
외람된 이야기지만 저는 당신이 훌륭한 미술가라고 판단하는데요. 그 이유가 본질적이고 단순한 개념을 확장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제 느낌이죠. 작품이 던지는 질문, 작품 그 자체, 이런 것은 단순한데 기억, 시간,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게 진짜 멋있어요.
그러니까 근본적인 질문들이 대부분 단순한 거 같아요. 예술이 뭐냐? 한 줄로 대답하라고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작가들이 많이 없을 거 같아요. 인생이 뭐냐? 되게 근본적인 질문이잖아요. 일단은 그런,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을 갖는 거겠죠? 그다음에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저는 시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잖아요. 미술 하는 사람 중에 제 얘기에 반대하실 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명쾌하고 투명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작품이 쉽다는 생각은 안 해요.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사실 어렵잖아요. 근데 어려운 질문이지만 어려운 답이 나와야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이런 습관이 언제 생겼냐면 미국에 유학 갔을 때예요. 아무래도 영어가 딸리니까. 서양 같은 경우는 동양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이 잘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것을 설명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림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해 비평하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내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데 한 학기가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과연 시각적으로 얼마만큼 명징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 같아요.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관객한테 전달하느냐. 지금 하고 있는 작품도 그 고민의 결과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훌륭한 작품들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죠.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요. 사실 이 질문은 고유한 ‘나’를 찾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건데, 누구에게나 자신은 ‘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나’라는 단어가 고유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 고민을 처음 미국 갔을 때 많이 했어요. 사실 집에 대한 생각도 서울에 있었을 때랑 외국에 있었을 때 차원이 달랐죠. 비평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유학을 통해 생겼던 거 같아요.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 말하자면 미국에 간 건 자의 반 타의 반이었고, 그 상황에 던져져서 빼도 박도 못하게 겪어야 하는 거였어요. 제가 작품을 만들면 제가 작품의 저자잖아요. 저는 저자이자 동시에 첫 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타자 입장에서 제 작품을 바라보는 거죠. ‘나’는 편의에 의해서 생긴 단어인 것 같기는 해요.
전시장에 음악을 틀어놓는다면 어떤 곡을 고르시겠어요? 음악을 틀어놓은 미술관은 없지만 음악을 틀어놓은 집은 있잖아요.
미술관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와요. 그래서 이건 좀 역설적인데 미술관이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이번 전시에는 진짜 아무 소리도 안 났으면 해요. 저도 개관 전에 혼자 전시를 볼 때와 개관한 후 사람들 속에서 볼 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아쉬워요.
사람들이 많으면 소란스러우니까 적게 오길 바라나요? 설마?
아니요. 아예 없어도 괜찮아요. 최소한 제가 와 있는 동안이라도. 아무도 없을 때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객들도 경험해보면 좋겠어요.
인터뷰하러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계속 사인 받으러 왔잖아요. 그런 인기를 감안하면 아무도 혼자 서도호 전시를 보는 경험을 못할 거 같아요. 어떤 분은 핑크색 연애편지까지 줬잖아요.
네, 그분은 손을 떠시더라고요.
집을 짓고 산다면 어떤 집을 원하세요?
집이 없었으면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집이 있으면 뭔가 많이 가져다놓아야 하고. 살아 있는 동안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원하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돈이 없어서 못하겠어요.
돈이 없지 않으실 거 같은데요.
그게, 작품이 팔려야….
세계적인 작가께서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유명한 작가가 돈이 많을 거라는 건… 그런 작가도 있는데 몇 안 돼요.
한국에 와서 살 생각 없으세요? 돈을 벌 기회는 더 많을 거 같은데요.
돈벌이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많죠. 근데 한국에 안 살아도 자주 왔다 갔다 하니까. 각 도시의 좋은 점만 취할 수 있죠.
욕심쟁이시다.
그런가요?
한 인터뷰에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신 거 읽었어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예전에 그린 그림 중에 집이 날아가는 거 본 적 있어요.
그런 그림 그리고 싶죠. 시간이 없어서 못 그리고 있거든요.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는 너무 많아요. 일단 시작하면 엉뚱한 게 막 나오거든요. 그림만이 가지는 독특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림만으로 전시도 하고 싶어요.
그 인터뷰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예전에는 선 하나를 그어도 생각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유로워진 거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림 그릴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랑 그림이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고, 조각이나 설치가 사실 더 재밌었죠. 그런데 그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았어요. 회화는 끝났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회화는 절대로 없어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조각이나 설치가 할 수 없는 게 있거든요. 그림의 기원을 아세요?
벽화?
맞아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멀리 떠나게 됐어요.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촛불에 비친 실루엣을 땅에 그린 게 드로잉의 시작이래요. 재밌죠?
그 말씀을 핑크색 연애편지를 앞에 두고 말씀하시니까 더 재미있네요.
하하하. 마침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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