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류승범의 이름을 입력한 뒤 엔터키를 누른다. 인물 정보라는 항목 아래로 이 젊은 배우에 관한 중요하기도 하고, 사소하기도 한 내용이 나열된다. 필모그래피, 키, 가족 사항 등등인데, 개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매력 포인트, 해맑은 미소. 누군가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것까지야 알 수 없겠지만 류승범을 직접 만나게 되면, 그 ‘해맑은 미소’의 실체는 똑똑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슬쩍 물어봐야겠다.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조명이 느긋하게 드리워진 하얀 스크린을 등지고 류승범이 자세를 취했다. 해맑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 위로 크고 작게 그려지는 미소는 활기가 있었고, 보기에 좋았다. 그는 능숙했고, 표정과 몸짓의 변화는 기민했다. 편한 자리에서 내키는 대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은 무척 괴로워요. 거의 발악하는 거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 셔터 앞에서 얼굴이 통째로 뒤집어질 만큼 크게 웃고,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과장된 표정을 짓고, 뛰고, 구르고, 춤을 추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촬영을 마친 뒤, 녹음기가 덩그렇게 놓여 있는 탁자 너머에서 막 담배에 불을 붙이는 류승범은 사진을 찍는 일이 결코 즐겁지 않다고 대답한다. “사진 촬영이 있을 때면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영화 촬영도 긴장이 되죠. 하지만 영화가 그나마 움직임을 담아내는 데 비해 사진은 말 그대로 순간 포착이잖아요. 능숙해 보인다고요? 어렵고 힘든데, 그저 방법을 차차 익혀가고 있는 것이죠.” 문득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첫 영화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류승범은 폭력배를 꿈꾸는 철없는 고등학생을,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었다. 본인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스크린 안에서 편하게도 까불어댔다. 이후 류승범이 연기하는 유쾌한 인물을 거듭 겪으면서, 사람들은 이 작게 찢어진 눈에 입매가 장난스러운 청년이, 현실에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어쩌면 류승범은 넉살 좋은 웃음 뒤로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옷을 좋아해요. 배우를 하기 전부터 그랬는데, 이 일을 시작하고 3, 4년까지는 거의 신경을 끊다시피 했어요. 영화 때문에 생각이 꽉 차 있어서 거기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거죠. 지금도 배우로서 여유를 얻었다기보다는 여가 시간을 누리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는 쪽에 가까울 거예요.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몰두하면 내 스스로 너무 힘이 드니까, 약간은 숨을 터줄 필요가 있었던 거죠.”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류승범·류승환 형제인데, 그 이유는 늘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할 줄 아는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감독이 보기에 그들 외에 ‘유쾌’와 ‘진지’를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인종은 어린이들뿐이란다. 배우 류승범은 해독이 쉽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것은 이 친구가 음침하게 속내를 감추고, 표정 없는 얼굴로 정답만 읊는 전략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인 계산 없이 아이처럼 편하게 말했다. 몇 초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유쾌함과 진지함을 불연속면 없이 넘나드는 류승범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새삼 아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유쾌함과 진지함, 그리고 솔직함은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어쩔 수 없이 지고 다니는 유명세를 생각할 때 참 의외의 것이었다. “제 기준에 이해를 못하는 게 하나 있어요.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감추려고 하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극장에 가더라도 모자 푹 눌러쓰고 다니시고. 이유는 알 것 같아요. 그걸 비난하려는 것도 절대 아니고요. 다만 왜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가 없고, 그게 안타까워요. 유명인이라고 해서 자신을 감추고,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안으로만 눌러 담다 보면 결국에는 너무 외로워지지 않을까요? 촬영 현장에서 고민이 많은 편이에요. 연기를 하다가 정말 뭘 모르겠다 싶으면 주위에 부끄러운 것도 없이 물어봐요. 얼마 전까지 촬영을 하면서도, 한두 신 출연하시는 조연 배우 분까지 붙들고 막 여쭤봤어요. ‘저기요, 제가 이런 판단이 안 서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황)정민이 형, 나 어떤 것 같아? 괜찮아?’ 벽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청하면 귀 기울여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류승범의 방식은 저돌적으로 느껴질 만큼 직설적이다. 그가 작품을 하나하나 경력에 포개어가자,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잡고 이 배우의 진짜 같은 느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류승범은 성실한 태도로 다양한 작품을 경험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고, 좀 더 도약할 계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간의 시간을 통해, 영화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얻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어요. 지금은 내가 만약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아요. 너무 집중하게 되니 오히려 떠나고 싶어지지 않냐고요! 아뇨, 사실 그런 여유도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의 연기에 굉장히 만족을 하거나,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 똑똑히 알게 되거나, 둘 중 하나라면 눈을 돌리게 될지 모르죠. 지금은 모든 면에서 물음표예요. 그래서 더 고민하고 생각하게 돼요. 내가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게 나 자신도 신기해요.”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영화 <사생결단>에서 류승범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약상을 연기했다. 강력반 형사로 등장하는 황정민과 지긋지긋하게 얽히는 거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는지 묻자, 그보다는 부산 사투리가 고민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연 분들이 거의 부산 출신이어서 제가 많이 귀찮게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곳 분들이 들으시면 제 대사가 거북스러울 거예요. 언어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 관객들이 나를 받아들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번 영화는 새로운 경험이었죠. 일단 짜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장르의 영화인 데다가 언어 문제로 제약도 있었으니까. 생각 끝에 대사 안에서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제가 항상 그렇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대사를 달달 외웠죠.” 류승범은 촬영 현장에서 바짝 긴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지고, 세트장을 떠난 뒤에는 완전히 자신을 풀어놓는다고 덧붙인다. 방치하면 굉장히 무분별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끊임없이 계획을 세운다는 그에게 막 영화를 마치고 난, 바로 지금의 계획을 물었다. 스스로를 털어놓는 것이라고, 류승범이 입을 뗀다. “작품을 끝냈으니 날 자유롭게 할 시간이 필요해요. 놀 때는 많이 놀아야죠. 그래야 또 연기하고 싶어지니까. 사실 저, 인터뷰가 아니면 연기 이야기 같은 것 안 해요. 심지어는 영화도 안 봐요. 즐기질 못하고 뜯어보게 되니까 피곤하거든요. 하루하루 즐겁게, 나를 만족시키면서 살기 위해 노력해요. 물론 영화배우라는 직업 자체의 특수성은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스물일곱 살 청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전혀 비상하거나 독특한 인간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생각과 태도가 신중한 류승범은 평범한 한편으로 비범해 보인다. 단어에 힘을 주어 대답하다 금세 농을 치는 모습에서는 유쾌함과 진지함이 어이없을 만큼 편하게 겹친다. 물론 세상에 모순은 드물지 않지만, 이 27세의 배우만큼 흥미로운 모순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 ‘해맑은 미소’ 운운하는 질문에 본인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을 피하며 해맑기는커녕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류승범의 진짜 매력은 미소 뒤편 어딘가에 감춰져 있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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