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상은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이며 증거이다. 인류애의, 상승에 대한 인간 의지의 구축물이다. 가지가지 상을 남발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상에 대한 경애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누군가 잘했다면 그에게 박수치는 게 옳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상의 가치를 남용해선 안 되며 상의 신성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연말이 되면 숱하게 시상식이 열린다. 어떤 상은 또한 어떤 수상자는 보는 이를 쓸쓸하게 한다.
일곱 번째 ‘A-Awards’를 준비하며 <아레나> 편집부가 느낀 부담은 상의 가치, 상의 신성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상이 관성의 결과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약 A-Awards가 매해 12월에 치르는 통과의례로 인식된다면 우리는 이 시상식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자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상자를 결정하는 데도 상의 가치와 신성은 무겁고 날카로운 기준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올해의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할 몇을 제외해야 했다. A-Awards는 남자들의 본이 될 남자, <아레나>식으로 말하자면 ‘Black Collar Workers’의 전형이자 파격인 남자를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올해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 잣대를 더 들이댔다. 첫 번째는 고전과 명작이 그러하듯, 누군가의 활약이 능히 시간을 견뎌왔고 앞으로의 시간을 견뎌낼 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올해의 소중한 이름들 몇을 더 긴 안목으로 바라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두 번째는 ‘그가’ A-Awards의 호명을 받지 못하더라도 불야성의 한가운데에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바람은… 우리는 소중한 것을 찾고 싶었다. 상찬의 중심에 있지 않지만 온전히 존재를 빛낸 이들을 A-Awards 시상식에 초대하고 싶었다. 더불어 그런 정신이 미래 A-Awards의 기준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일곱 번째 A-Awards의 박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18일 저녁, 여의도 콘래드호텔 그랜드볼룸은 패션 문화계 인사들, 수십 명의 기자들로 붐볐다. 가장 먼저 포토라인에 선 인물은 사회를 맡은 박은지 전 기상 캐스터였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너무 예뻤는데,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하도 많이 터트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지척에 있었으나 박은지를 제대로 본 건 그녀가 포토라인을 떠난 직후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그 순간 그 자리가 아니라 포털 사이트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이어서 배우 이병헌이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이병헌은 정시에 정확하게 왔다. 이병헌은 2010년에 이어 A-Awards를 무려 두 번 수상하는 영광의 남자가 되었다. 그것은 A-Awards의 안목을 새삼 확인하는 사건이어서 우리도 기뻤다. 이병헌은 중력을 가진 남자였다. 이병헌이 포토라인에 섰을 때 그랜드볼룸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향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왕이었다.
미술가 박찬경은 머뭇거리며 포토라인에 섰다. 그러나 긴장을 하지는 않았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는 짧은 순간, 사진이 사람의 내부를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박찬경을 형인 박찬욱 감독과 영화 <파란만장>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부분 황금곰상을 수상한 감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 A-Awards에서 미술가로서 상을 받았다. <아레나> 2012년 12월호에 그와 나눈 긴 대담이 실려 있다. 일독을 권한다.
영화감독 최동훈이 익숙하게 포토라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만든 영화 <도둑들>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중독성이 있었다. 천만 관객의 비밀은 아마 그 웃음에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한 신원호 PD가 포토라인에 섰다. 두 달 전 A-Awards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 그가 꺼낸 말은 “제가 왜요?”였다. “이유를 모르는 건 PD님뿐일 거예요”라고 대답했었다. 플래시가 터지자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가 그 자리에서 능숙하게 포즈를 취했다면… 실망했을 것 같다. 사견이지만 나는 그의 반골 기질이 좋다.
마지막으로 패션 디자이너 우명미가 포토라인에 섰다. 우명미는 여자다. 남성복을 만드는 여자다. 그녀가 만든 남성복은 세계적이다. 이제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를 우명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가장 글로벌한 성공을 거둔 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영미는 A-Awards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더불어 그녀가 구축한 남자 복식에 수여하는 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레나>는 이 시상이 무척 자랑스럽다. 포토라인에 선 그녀는 컸다.
2012년은 갔다. <아레나> 2012년 12월호에 실린 우영미의 수상 인터뷰에는 이런 답변이 있다. “뒤돌아봐야 아무 소용없다. 인생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니지 않나?” 회상은 여기까지다. 이제 페이지를 넘기면 2012년의 어느 겨울밤이 또렷하게 펼쳐진다. <아레나>는 이 선명한 기억을 기원으로 삼아 A-Awards의 미래를 찾을 셈이다. 모든 낮과 밤, 풍경과 사람과 인연이 모여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 2013년을 살아가야 한다.
A-Awards 카운트다운
리허설, 박지호 편집장의 인사, 가지런히 선 앱솔루트 보드카, 게스트의 명단을 확인하는 진행 요원들의 신중한 움직임까지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랜드볼룸 안의 커다란
A는 성적표에서 봤을 때만큼 반갑고 놀랍다.
A 학점 많이 받은 수상자
이병헌의 눈을 보라!
A-Awards를 두 번이나 수상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선거를 독려하는 개념 수상 소감으로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한 신원호 PD는 시상식 전날 말했다. “편하게 입고 가도 될까요?” 물론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상식 당일 신원호는 의심할 바 없는 ‘Black Collar Workers’였다.
우영미는 가지런함과 흐트러짐을 번갈아 걸었다. 정중하고 자유로웠다. 그녀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A-Awards를 수상하기를 바란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양손을 살짝 말아 쥔 최동훈은 비장의 카드를 들고 아직 꺼내놓지 않은 장수 같았다. 그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 미술가이며 교수님이기도 한 박찬경은 교탁 앞에선 선생님처럼 엄해 보였다. 이번엔 우리가 선생님의 점수를 매긴다. A다. 모든 수상자들이 A! A! A!
우리 이런 사람들이에요
수상자들은 상금 전액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 기부했다. 시네마테크는 예술 영화와 고전 영화 전용 극장이다.
1 영화감독 박찬욱과 사진가 김용호가 시상자로 참여했다. 박찬욱의 ‘풀어헤친 듯한’ 스타일과 김용호의 빈틈없는 옷차림이 대조를 이룬다. 2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과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광효는 시상자로 단상에 올라가 자신은 무려 일곱 번이나 A-Awards 시상식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개근이라니! 3 대한민국 1등 스타일리스트이자 <아레나>의 친구인 채한석과 리밍. 4 박은지가 여기 있다. 박은지와 사귀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5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 개근했기 때문에 단독 컷 하나 더! 6 박찬욱 감독. 그는 박찬경의 친형이다.
7 패션업계의 잘나가는 인사들. (왼쪽부터) 로크의 임준영 대표, 코네스 솔루션 강원식 대표, 유니페어 강재영 대표, 디자이너 김석원,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한태민 대표, 패션 컨설턴트 남훈.
A-Awards는 즐겁다
클래지콰이의 알렉스가 축가를 불렀다.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유혹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남자들의 적이다. 사회를 본 박은지는 순정만화 속의 소녀 같은 외모로 이따금 사람들의 시선을 수상자가 아닌 본인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누가 ‘미’에 죄를 묻겠는가!
신세계인터내셔널 정준호 부사장은 시상을 위해 단상에 올라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선 우영미 디자이너의 개척 정신을 본받고 싶다”는 감격스런 인사말을 전했다. 그에게 그랜드볼룸 천장에 달려 있는 A를 떼어 주고 싶었다. 바라보고 웃고 이야기하고 만찬을 즐기는 사이 시상식이 끝났다. 여유롭고 달콤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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