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거둔 놀라운 성공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 ‘K-팝’을 키워드로 삼는다. 하지만 내 생각엔 방향이 틀렸다. 이 노래의 말도 안 되는 성공은 오히려 미국 팝 산업의 변화에서 살피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 팝 산업은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2006년 이후 급변했다. 2010년 저스틴 비버의 데뷔는 유튜브가 이미 매머드급 플랫폼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강남 스타일’의 성공은 그 변화의 정도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일 것이다. 여기에 K-팝이 기여한 건 손톱만큼일 뿐이다. 일단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2위를 차지하기까지 걸린 3개월의 확산 경로를 보자.
여기서 트위터와 유튜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다. 그런데 ‘강남 스타일’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최초의 사건은 저스틴 비버였다.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가 <엑스팩터>와 <아메리칸 아이돌>로 21세기의 신인 카탈로그를 채우고 있을 때 스쿠터 브라운은 유튜브에서 어디와도 계약하지 않은 ‘신인’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그의 눈에 띈 저스틴 비버는 스쿠터 브라운의 레이블 스쿨보이 레코드와 계약했고, ‘협력’ 관계에 있던 유니버설 뮤직의 산하, 아일랜드 데프잼 뮤직 그룹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저스틴 비버의 싱글 ‘Baby’는 7억9천만 건으로 싸이 이전에 유튜브 조회 1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당시 2위는 약 6억1천만 건을 기록한 제니퍼 로페즈의 ‘On The Floor’였다. 주목할 부분은 두 곡 모두 아일랜드 데프잼 뮤직에서 제작한 싱글이라는 점이다. 최근 싸이도 이곳과 계약했다. 따라서 2012년 현재 스쿨보이 레코드-아일랜드-유니버설이 팝 산업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Call Me Maybe’로 ‘2012년의 스타’로 언급되는 칼리 래 젭슨 역시 스쿨보이 레코드의 소속이라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유튜브의 2012 트리뷰트 동영상의 배경음악은 ‘강남 스타일’과 ‘Call Me Maybe’였다).
싱글의 성공은 미디어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마이클 잭슨의 성공이 1960~1980년대 ‘대중음악과 매스미디어의 밀착’을 상징한다면, <타이타닉>과 <아메리칸 아이돌>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례일 것이다. 21세기에는 인터넷이, 특히 유튜브가 TV를 대신하거나 보완하며 폭발적인 영향력을 얻고 있다. 2005년에 설립된 유튜브는 애초에 UCC 동영상을 수집, 공유하는 사이트였다. 하지만 대부분 영상들이 방송, 음악, 영화 같은 기존 미디어를 복제한 것들이어서 2006년부터 EMI, 유니버설 등에 의해 수많은 경고와 소송에 시달렸는데, 그럼에도 1년 사이에 하루에 1억 명이 방문하는 사이트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은 비디오 저작권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2006년 말 워너뮤직, 유니버설, 소니BMG 같은 음악 레이블 외에 NBC, MGM, 라이온스 게이트, CBS, 폭스, 디즈니 같은 대다수의 미디어 그룹들과 제휴를 맺으며 저작권 분쟁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는 비아콤으로부터 MTV 동영상을 포함한 자사 콘텐츠 10만 개를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일본 저작권협회로부터 국제 소송을 받아 일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전부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소니뮤직 산하의 와인드업 레코드와 뮤직비디오 공급 계약을 맺으며 현재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9년에는 유니버설과 소니뮤직, 아부다비 미디어, E1엔터테인먼트가 공동으로 설립한 VEVO(초기에 협의를 진행하던 워너뮤직은 막판에 MTV 네트웍스와 손잡으며 VEVO와 경쟁 구도에 들어섰다)의 채널을 론칭하며 대규모의 고화질 뮤직비디오 스트리밍을 통해 핵심적인 음악 채널로 자리 잡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유튜브는 2009년 이후 뮤직비디오 유통 사이트로 재편되다시피 했는데, 특히 미국의 팝 산업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닐슨 뮤직360의 조사 결과인 ‘10대의 64%는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세상의 변화는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다. 저스틴 비버와 싸이의 팝 시장 점령,
그리고 스쿠터 브라운과 스쿨보이 레코드의 급격한 성장, 아이튠즈와 유튜브의 온라인 유통망 장악,
여기에 빌보드 차트의 변화와 같은 모든 것들은 팝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겨냥한다.
하지만 유튜브의 성장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이튠즈가 음악 산업을 재편한 2007년까지 음악 산업의 최강자는 ‘뜻밖에도’ 월마트와 스타벅스였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전국 체인망을 가진 대형 마트와 커피 체인점이 음악 산업에 개입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지만 동시에 ‘미국의 건전한 중산층 고객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나 그린 데이의 ‘부적절한’ 음반의 판매를 거부하거나 가사 수정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아이튠즈와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이런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의미가 크다.
이런 맥락에서 저스틴 비버, 제니퍼 로페즈, 칼리 래 젭슨, 싸이의 성공을 살필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서 ‘발굴’된 저스틴 비버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와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9에서 부른 ‘Baby’의 영상 클립이 다시 유튜브로 확산되며 조회 수 1위를 기록했다. 제니퍼 로페즈는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10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On The Floor’의 스페셜 라이브 무대를 꾸몄는데, 그 덕분에 유튜브 조회 수 2위를 기록했다. 칼리 래 젭슨의 ‘Call Me Maybe’는 셀레나 고메즈와 캐나다로 휴가를 떠난 저스틴 비버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 노래를 자신의 트위터에 언급한 뒤 갑자기 빌보드 아이튠즈 싱글 차트에 진입, 9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이 일들은 모두 최근 팝 시장의 토대가 급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남 스타일’의 성공은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이런 경향에 쐬기를 박은 사례인 셈이다.
한편 이런 흐름은 <빌보드 매거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매주 발표되는 35개 차트는 크게 싱글과 앨범 차트로 구분되는데, 싱글 차트는 싱글의 판매량과 방송 횟수를 기준으로 ‘빌보드 핫 100’과 ‘모던 록 트랙스’로 나뉜다. 반면 순수하게 앨범 판매량을 기준으로 삼는 앨범 차트는 2003년 7월부터 인터넷 다운로드를 반영했다(2004년에는 휴대전화 벨소리 차트를 개설했다). 그런데 최근 빌보드는 이제까지 ‘핫 100’에만 적용되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횟수를 장르별 순위 산정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유튜브의 동영상 플레이 횟수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아메리칸 아이돌>에 나온 음악들이나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음악만 차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쿠터 브라운은 홈페이지에 자신을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 외에 테크놀로지, 소셜 미디어, 팝 문화를 배우는 자세”를 가졌다고 소개한다.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큰 그의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요컨대 세상의 변화는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다. 저스틴 비버와 싸이의 팝 시장 점령, 그리고 스쿠터 브라운과 스쿨보이 레코드의 급격한 성장, 아이튠즈와 유튜브(그리고 아마존 MP3)의 온라인 유통망 장악, 여기에 빌보드 차트의 변화와 같은 모든 것들은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팝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겨냥한다. 이런 맥락에서 ‘강남 스타일’의 성공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K-팝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강남 스타일’은 이미 스쿠터 브라운이 트위터에 언급한 그 시점부터 미국 음악 산업의 흐름에 휘말릴 운명이었고, 그 속에서 거둔 이변적인 성공은 차라리 한 시대가 바뀌는 기점의 상징적 순간이다. 그러므로 ‘넥스트 싸이’는 오히려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메이저 팝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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