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이 존재하는 이유를 짚어보자면, 입는 자에겐 직업의식, 소속감, 기능적 측면에서 필요하겠고 상대방에겐 시각적 언어를 통한 대상의 이해, 거기서 파생되는 신뢰와 존중으로 서로를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일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요리사라면 형광빛이 돌 정도로 새하얗고 풀 먹인 듯 빳빳한 유니폼은 요리사와 손님 간의 관계를 신뢰로 엮어주는 매개체이자 전 세계에 통용되는 공통 언어다. 요리사의 희고 청결한 옷은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역으로는 손님을 안심시킬 가장 간편하고도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수단인 셈이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인물이 있다. 이건 청결과 불결의 영역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고정된 복장 언어를 비튼다는 것이다. 마커스 새뮤엘슨. 지금 뉴욕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스타 셰프다. 에티오피아 출신인 그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에서 별 3개 리뷰를 받은 가장 젊은 셰프다. 그리고 현재 ‘레드 루스터’라는 레스토랑을 비롯해 총 4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이자 <예스, 셰프>의 저자이고 자선가다. 또한 <베니티 페어>가 꼽은 베스트 드레서고 지난해 이든(Edun)의 캠페인 모델이기도 했다.
분명 마커스 새뮤엘슨은 스타일이 훌륭한 남자지만 셰프로서 그의 스타일은 생경하다. 이를테면 데님 셔츠에 작은 스카프, 이름을 새긴 주방용 신발, 스웨덴산 빈티지 바지, 에스닉한 에티오피아산 원단으로 만든 앞치마. 그는 고압적이고 강직하며 철저하게 정돈된 셰프 복장의 날 선 느낌을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흑인 카우보이처럼 거칠고 투박한 차림으로 일을 한다. 매번 조금씩 다른 테마로 옷을 차려입고 주방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만든 음식에 정당성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가 블로그에 남긴 글이 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레드 루스터의 음식, 나의 글 그리고 내가 입는 옷이 그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코트를 걸치든, 모조(Mozo)와 함께 작업한 주방용 구두를 신든, 짙은 푸른색의 리바이스 501을 입든,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옷이 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나는 그 옷에 표시를 남긴다. 내 옷은 대부분 식초나 돼지기름 얼룩이 가득하다.’ 에티오피아, 스웨덴, 네덜란드, 뉴욕을 거친 만큼 그의 스타일 또한 복합적이다. 각국에서 체득한 스타일적 노하우, 지역색 강한 몇 가지 장치들을 재료로 삼아 뉴요커다운 스타일을 세운다. 다양한 색과 패턴의 충돌, 베스트와 셔츠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미국적 실용주의의 공존에는 마치 1970년대 흑인들의 빈티지한 스타일을 상기시키는 복고 코드가 있다. 그는 주방에서뿐만 아니라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요리 쇼를 펼치거나 오바마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때도 일관성 있는 스타일을 고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패션보다는 스타일을 우선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는 옷은 본인과 그가 만든 음식을 대변한다. 그 역시 자신이 지닌 스타일의 강점을 명민하게 이용할 줄 안다. “진짜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거친 어부일 수도 있고 마사이족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런웨이에 오른 것들에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물론 데이비드 보위나 밥 말리를 스타일 아이콘으로 생각하지만, 단순히 스타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주 멋진 가수라는 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에는 직업적 성과가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겠지만, 남들과 다른 영역을 선점하기 위해선 또 다른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마커스 새뮤엘슨은 옷의 언어로 대중과 친절한 소통을 한다. 그의 음식, 그가 쓴 글, 인품, 그리고 그가 입는 옷 모두 마커스 새뮤엘슨식 스타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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